가난한 이가 자신이 가진 남루한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떼어줄 때 세상은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귀해봤자 남루한 그 재산을, 결코 업신여기거나 비웃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내 글을 열렬히 좋아해주시는 독자 한 분을 만났다. 카페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에세이를 쓰면 자신의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밝히게 되잖아요. 작가님은 자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게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으셨어요?"
부끄럽고 두렵기만 할까요.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덤의 흙을 또 한 삽 퍼내는 기분이다. 내가 살아온 날을, 밝고 보기 좋기만 한 건 절대 아니었던 얼룩진 날을 나를 애정해주시는 구독자에게 말하기 위해서 나는 미움받을 용기를 짜낸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것을, 괜히 이런 글을 써서 나란 사람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나는 비웃음을 얻겠구나 싶어 착잡하다.
버튼을 그러나, 언제나 누른다. 그럴 수 있는 건 내게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에 내 삶을 기부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다. 세상에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돈보다는 글을 주는 게 나로서는 더 마음 흡족하다. 돈이라는 재능보다 글이라는 재능을 더 많이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나는 글을 타인에게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공개한다.
성자 나셨네, 비꼬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무덤을 파고 있었으니. 그리고 내 경험의 가난을 알면 비꼬지 않을 테니.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내 글이 남루한 마음에 귀한 무언가로서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결정적 구호물품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쓸 때 나는 용감해진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데, 내가 받는 수모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세상이 나를 흉봐도 군중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유령일 뿐, 실존하여 남는 건 내 글을 읽고 무언가를 얻었을 한 사람의 독자다.
글을 기부한다, 아니 나의 경험을 기부한다. 경험에서 나온 생각을 기부한다. 그렇다고 내가, 내 과거라는 곳간이 풍족한 경험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정말이지, 가난한 사람이다. 좀 재미없게 살아온 탓에 내 삶의 경험이란 건 나이의 풍족함과 관계없이 비루하고 비루하다. 하지만 이 글의 맨 앞에서 밑밥을 깔아놓지 않았나. 남루한 재산이라도 그중 가장 귀한 것을 떼어 세상에 내어줄 때 그 남루함을 욕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 재산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내 지나온 경험이란 것도 가난한 재산처럼 보잘것없고 평범한 것이지만 그중 내가 아끼는 가장 귀한 모퉁이 한쪽을 떼어 누군가에게 준다는 건 비난받을 일이 절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가 이런 글을 썼다.
나를 낳은 내 과거는 인간 경험의 한 부분으로서 나 이외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거짓 없이 써서 남기는 내 노력은 자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인간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헛수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 나는 내 과거의 선악 모두를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할 생각이라네. (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에서)
글을 공개하려는 당신이 만일 나처럼 자기 무덤 파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래서 발행 버튼을 끝내 누르지 못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글을 기부하라고. 너의 수치는 사실 그렇게 가치 있는 게 아니다.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데 못생긴 티셔츠를 입고 있어 부끄럽다고 당신의 외투를 벗어주지 않겠는가. 주목받는 게 부끄러워서 인공호흡을 하지 않겠는가.
내 글이 누군가를 살린다는 발상 자체가 자기애에 빠진 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전에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소세키의 말처럼, 어떤 사람의 삶이든 그 화려함의 정도와 상관없이 다 나름의 가치와 소용이 있다고 여기기에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소재 삼아 거기서 길어 올린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서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카페에서 그 독자님에게 부탁했다. 당신도 꼭 글을 써서 공개해달라고, 내가 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내 책들을 읽었으니 그러니 너는 나를 알지만 나는 너를 모르지 않느냐고. 내 삶이 당신의 삶을 만나 일으킬 변화를 나는 아직 제공받지 못했으니 내게 당신의 귀한 삶 한 모퉁이를 떼어달라고.
이 글을 읽어주신 당신에게도 같은 부탁을 드리오며... 그럼 이만, 당신이 가진 삶을 용기 내어 기부해주시길 또 한 번 바라오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