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권위에 어느 정도나 순응하는 존재일까? 그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이 있은 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찰스 호플링은 권위와 복종에 대해 좀 더 심도있게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혼자 야간 근무중인 간호사에게 모르는 사람이 전화로 의사를 자칭하고 위험한 약물을 과도하게 투입할 것을 지시했을 때 얼마나 많은 간호사가 그 지시를 따를 것인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약통에 기재되어 있는 1회 최대 허용량의 두 배가 넘는 투입량과 의사의 전화지시는 모두 규정 위반이었지만, 실험 대상이 된 간호사 및 간호학교 학생 22명중 12명이 가짜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투여하려고 했다. 과거에 의사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돌아왔던 경험이 학습되어 있었던 점, 의사가 내린 지시니 당연히 안전할 것이라고 고민없이 믿었던 점, 그리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본인이 아닌 의사가 책임을 진다는 점 등이 간호사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실험으로 리더가 가진 권위에 대한 복종이 조직 문화가 되었을때, 그리고 이에 따라 통제와 지시에 순응하는 생활을 하게 될 때 리더의 잘못된 지시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따르게 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인간은 권위에 순응하면 뇌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영역'의 스위치가 꺼진다. 수많은 나치의 부역자들이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했던 것이 그들이 모두 악인이고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수많았던 끔찍한 일들은 악마의 이름이 아니라 복종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조직에서는 여전히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일방적인 평가체계와 보스에게 전적으로 주어지는 평가 권한 때문에 승진과 고과, 평가와 인정에서 손해보고 싶지 않은 구성원은 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이렇게 권위가 주는 맛에 중독된 리더들이 그 문화를 유지하면 직원들은 두뇌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영역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그렇게 좀비가 되고 리더의 지시에 맹종하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직원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권위적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리더가 존재한다.리더가 권위를 이용해 통제하고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 조직은 겉으로는 일사불란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사람도 항상 올바른 의사결정만을 할 수 없다. 리더가 잘못된 결정으로 조직을 위험에 빠뜨릴 때 이를 제어해줄 구성원이 없는 조직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리더는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하고 장애물을 치워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몇 년 뒤 다른 연구진이 동일한 실험을 약간의 조건을 바꾼 채 다시 진행했는데 이 때의 결과는 상당히 달랐다. 이번에는 18명중 16명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홀로 근무하는 상황이 아닌,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 의사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문화가 존재했다는 점, 그리고 간호사들이 높은 자존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이 있다.
인간은 살면서 한 번쯤 조직의 리더가 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속한 조직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두 실험의 결과에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