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yohyun Hwang
Oct 18. 2021
도둑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낮인지, 모두 잠든 밤인지 그건 알 수 없다. 이 도둑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데, 다른 것은 전혀 손도 대지 않고 오직 한가지만 훔쳐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절도범인지 짐작가는 바가 있다. 물론 도둑의 사정을 알고 있어서 신고하지는 않았다.
가을을 가을답게 하는 것은 건조하게 차가운 공기와 하루가 다르게 색이 바뀌어가는 나뭇잎이겠으나, 혹은 더 파란 하늘. 역시 가을은 국화와 코스모스가 있어야 제격이다.
코스모스의 여리여리한 꽃잎과 꽃대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을스러운데 군집으로 피어 바람에 흔들릴때 우리는 가을을 피해갈 수가 없다.
코스모스가 들판의 가을이라면 국화는 정원의 가을이다. 새봄부터 싹을 틔워 한여름 비바람를 견딘 후에야 비로소 꽃이 피는 국화는 날이 차가와질 수록 색이 선명해지는 가을 정원의 여왕이다.
농장에서 국화 화분을 여남은개 사 왔다.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인데 농장에서 가져올 때는 꽃이 피지 않아서 화분에 표시된 것으로 구분하였으나 이제 꽃이 활짝 펴서 보기 좋다.
어제 이른 아침, 달리기하러 집을 나서는 길에 집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국화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다른 색은 화분 가득 꽃이 피었는데 노란색 꽃만 마치 버짐 피듯 꽃이 덤성덤성한 것이다. 이상하네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신기하게도 꽃봉오리가 싹둑싹둑 잘려나간 것이 아닌가.
나는 도둑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모처럼의 특식이었겠지. 도둑을 막기위해 울타리를 칠 생각은 없다. 저도 양심은 있어서 그나마 몇개는 남겨놓았고, 다른 것은 손도 대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