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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Nov 20. 2021

어느 가을의 아침

밤새 비가 왔다. 가을비다. 오늘 낮에도 하루종일 온단다. 다행히 바람은 세차지 않았다. 가을이 더디게 왔다가 빨리 가나 해도 그게 또 그렇지 않아서 추웠다 더웠다 하며 저 할일은 다하고 간다. 그럼에도 성급한 나뭇잎들이 제법 있는데 떨어지기에는 너무 싱싱한 그 잎들이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어 길바닥에 찰싹 붙어 있다.


이렇게 비구름이 짙은 날의 아침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얼른 일어나서 물을 끓인다. 나는 아직도 나만의 커피 제조법을 찾기 위해 실험중인데 그것은 두잔의 커피에 딱 맞는 커피와 물의 비율을 찾는 것이다. 아침 기온이 점점 날카로워질 수록 커피의 유혹은 짙어지지만 특히 이렇게 차가운 빗소리가 지붕을 때리는 날 아침은 그렇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들이키는 커피라니.


집앞에 사다놓은 국화는 시린 기온은 아랑곳 없이 더 싱싱해졌다. 그런데 화분 몇개는 영 시들시들한 것이 아닌가. 지난 주말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국화에 물좀 주라는 타박을 들었던 터였다. 나는 물때문이 아니라 날이 추워져서 그런 거라고 아는 체를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무려 한시간여동안 화분 17개에 물을 넉넉하게 주었는데, 놀랍게도 이 국화가 저녁 무렵에 시들시들하던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출근길에 밤새 비를 흠뻑 들이마신 국화를 보았다. 이미 시들어버린 꽃잎이 있는가 했더니 이제야 꽃봉오리를 밀어올리는 것도 있다. 정처없이 떨어지던 나뭇잎 몇개가 국화위에 자리 잡았는데 나는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 잎이 제자리를 찾기가도록 도와 주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물을 튀기며 아침길을 서두르는 자동차들이 떨어진 낙엽을 사정없이 짓이기고 사라지는 어느 가을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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