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yohyun Hwang
Nov 21. 2021
운동회날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운동장위 긴 줄에 꿰어 팔랑거리는 만국기, 달리기 라인 바깥쪽으로 경계삼아 쳐놓은 새끼줄, 그 옆으로 좁은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을 꽉 채운 천막들. 청군을 좋아했는지 백군을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아련한데, 청이건 백이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좋았다.
그 들뜬 분위기가 좋았고, 목청 높여 소리지르는 응원이 좋았고, 기껏 3등도 할까말까하는 달리기 출발선의 긴장이 좋았고, 이어달리기의 그 극적인 순간이 좋았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뭔가 자랑이고 싶었고, 그래서 이를 악물고 뛸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아침 하늘이 너무 맑고 고왔다. 마술사가 장막을 확 잡아당기는 순간처럼 갑자기 천지에 가을이 가득한데, 아마도 가을비에 먼지가 씻겨나가고 그 위에 선명한 이침햇살이 비쳤기 때문이리라. 가슴 떨리는 이 신선한 아침에 왜 뜬금없이 운동회를 소환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고향을 떠났고, 이제 나는 아이들의 고향이 되어버렸는데, 이불보따리 싸메고 떠나는 내 등뒤로 '청운의 꿈'으로 격려하시던 아버지는 진작에 고인이 되셨고, 언제나 자랑하고 싶었던 엄마는 화면 너머에서 '잘 살아라'는 한마디 뿐.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자랑일까. 운동회날처럼 엄마 앞에서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