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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y 05. 2022

철쭉


3, 4주 되었나, 철쭉을 사온 지가. 개나리 진달래는 내 어릴 때 지천으로 봐온 터라 나는 이 꽃을 돈주고 사는 것이 영 마땅찮았다. 우리집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곳의 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개나리가 사람의 관심은 전혀 관심없다는 듯이 해마다 흐드러지게 폈다 졌고, 개나리 필 무렵 동네 뒷산 진달래는 또 얼마나 폈던지. 진달래와 철쭉은 다른 꽃임에도 분위기가 비슷해서 그걸 굳이 사다 심어야겠다는 애들 엄마의 말에 시큰둥할 수 밖에.


빅토리아 농원은 우리 집 근처에서는 가장 큰 농장이다. 수백종의 나무와 꽃을 늘어놓은 농장이 축구장보다 더 크다. 슈퍼에서 물건 고르듯이 이 운동장같은 농장을 리어카를 밀고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꽃나무를 골라 계산대로 싣고 가면 된다. 어릴 때 리어카를 몰고 다닌 경험이 그나마 좀 도움이 되었는데, 아마 그런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은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테다. 꽃나무를 골라놓으면 지게차가 와서 차에까지 실어다 준다는 것을 그 뒤에 알았다.


제법 큼지막한 화분에 꽃봉오리가 송글송글 맺혀있는 철쭉 11그루를 샀다. 뭔 나무를 그리 많이 사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꾹 참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말 안해도 그 말이 얼굴에 다 써 있다는 것을. 이 나무는 집안에 들어갈 것들이 아니라 집 밖에 심어져야할 것들이고, 집 밖의 일이니 땅파고 심고 물주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러니 내 얼굴에 쌍심지가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화분에서 땅으로 바로 옮겨 심으면 지금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몸살을 할 것 같아서 우선 꽃이 폈다 지고난 후에 심기로 했다. 10개의 화분은 애들 엄마의 지휘에 따라 앞마당에 위치를 잡았는데 그 과정이 또 만만치 않았다. 하나를 놓으면 옆에 것을 옮겨라 하고, 옆에 것 옮기면 또 그 옆에 것이 이상하다 그러고, 하여튼 나는 아무말 않고 시키는 대로 화분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내눈에는 그 위치가 그위치 같았는데...


나머지 한개는 뒷마당에 갖다 놓았다. 뒷마당에 열개, 앞마당에 한개였으면 어쩔뻔 했나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 길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하나씩 피고 있는 그 철쭉을 보는 것은 꽤 괜찮은 경험이다. 매일 피는 모습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개나리는 다 져서 잎만 푸른데 내가 심어야할 철쭉은 화분에서 지금 피고 있다. 잘 사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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