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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Jul 09. 2023

싱거운 꿈 얘기

어릴 땐 욕심이 많았다.


방 밖이 아닌, 집 밖으로 신발을 신고 나가야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는 낡은 집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매번 곰국을 끓이는 큰 솥에 물을 끓여 온 가족이 씻을 물을 옮겼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밤이면, '물이 식기 전에 씻고 오라'는 아빠의 재촉에 못 이겨 질겅질겅 발을 이끌곤 했었다.


귓불 밑으로 서늘하게 파고들던 깜깜한 겨울 공기.

서너 개쯤 계단을 내려가, 다시 일곱 걸음 남짓한 정원을 지난다. 삐걱- 하며 쇳소리가 울리는 샤워실의 문을 열고, 똑딱! 하는 아날로그의 소리가 툭 튀어나오는 동그란 스위치로 전구의 불을 켠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1-2분?

매일밤, 난 그 짧은 순간이 못 견디게 무서웠다. 계단 근처 빛을 모두 삼켜버린 것 같은 깜깜한 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바람소리도 요란했고, 그 바람 끝이 유난스럽게도 내 품속을 파고들어 손 끝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래서 매일 언니와 함께 씻으러 가자고 졸랐다. 언니가 유난히 귀찮아하는 날도 어김없이 문 앞에서 언니가 나오기만을 징징거렸다.

"아~ 언니야! 가자! 같이 좀 가자-"

맘씨 좋은 언니는 못 이기듯 하던 일을 멈추고, 매번 함께 나서 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연년생이었던 언니와 함께면 그 무섭던 정원의 스산한 나무들도, 밤공기도 그저 수다거리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제야 밤하늘 별도 보이고, 찬 공기에 서린 입김도 놀라웠다. 잎이 유난히 크고 바스락 거리던 말라빠진 무화과나무 잎도 제대로 보였다. 무언가 툭 튀어나오기엔 한없이 아담한 정원이었다.


아빠는 매일 밤 펄펄 끓는 곰솥을 계단 아래로 비스듬하게 난 천장 아래에 두었다. 그러면 그 좁은 하얀 페인트 벽위로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혔고, 불을 켜면 노란 전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난 녀석들이 별처럼 빛난다고 생각했었다. 언니와 깔깔 거리며, 재잘거리며 그 빛이 별처럼 예쁘다고 떠들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렇게도 할 말이 많았을까?

고작 십 대 초입이었던 언니와 나는 하루종일 붙어 다니며 많은 걸 공유했다. 어쩌면 엄마 아빠에게도 쑥스러워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언니에게는 털어놓았었다.

예를 들면, 내가 만든 해괴한 노벨상 노래 같은 것들 말이다.

"노- 벨! 상! 두! 개! 우리의 희망!"


공기가 베일 듯이 춥던 겨울, 오로지 샤워실 안쪽으로만 매일 아담한 우리 세상이 열렸었다.

그 안은 밝고 따뜻했고 우린 좀 웃겼다.

아빠가 끓여둔 곰솥의 뜨거운 수증기로 꽉 채워진 좁은 벽에 싸구려 전구가 만들어낸 노란 별들이 뜨던 밤-

해괴한 율동에 맞춰 부르던 그 노래가 필름의 한 장면처럼 잊히지 않는다.


난 정확히 노벨상에 어떤 항목이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노벨상을 두 개나 받아 (그 당시의 기준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게 토란토란한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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