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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by 이김정 Mar 05. 2025



회사 일을 하다보면 가끔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하는 것 어쩔 수 없이 성사시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되든 안되든 말이죠.


인테리어 일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개발하시설의 인테리어를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맡기면서 설계비용 30% DC 해오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동네미용실 첫방문 할인도 아니고.


게다가 그 디자이너가 zen 스타일로 세계적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디자이너 마츠다상이었으니 어불성설이지요.


"이김정! 당장 도쿄 가서 할인받고 와! 그거 못받으면 서울로 돌아올 생각말고!"


설마 농담이겠죠.


도쿄행 8시 50분 출발 대한항공 여객기에 을 실은 설계사들과 인테리어 시공과장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진짜 농담이겠죠."

"그 유명한 마츠다 디자이너에게 DC를 요구하다니, 잘못하면 계약 자체가 깨져요. 예전에 계약 깨져서 쫒겨난 분이 있다던데. 이김정 과장님 조심하셔야 될 것 같은데."

"위에서  막 시킨다고 하다간 낭패 봅니다. 진짜 본계약이 깨지면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선수끼리 왜 그러세요. 고민할 걸 고민해야지."


 말이.


그랬습니다.

반은 농담으로 들었고, 반은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것때문에 본계약이 문제가 돼선 안되니까요.

저도 까불거리고 다녀도 그 정도 이성과 지각 정돈 있습니다.


하지만 도쿄에 도착해 비즈니스호텔에 여장을 풀고 근처 경양식집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고는 디자이너 사무실로 가기 전,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살짝 팔랑귀처럼 흔들립니다.


"그래도 할인이 되는지는 확인해보는 게 맞지않겠어요. 확인도 안해본 걸 알면 윗사람이 자기 지시를 무시했다고 생각하지않겠냐고요."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인하는 자체는 어렵지않으니까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

그러자.


"이왕 말할 바에야, 제대로 어필해보는 건 어때요. 혹시 알아요. 진짜 할인해줄지."


에헤. 이 양반들이.


결국 말을 하다보니 처음으로 돌아왔네요.

할인해보자로.

쫌생이 샐러리맨들이 다 그렇죠.


어쨌든. 그것도 맞는 말.

그래, 그래.

뭐든 해보는 거지. 이 세상에 안되는 게 뭐가 있겠어요.


헌데 센다가야 소재의 뭔가 음산함이 감도는 블랙 앤배너의 사무실에 막상 도착하자 왠지 불길함부터 들었습니다.


어림반푼어치도 없겠다 하고요.


우릴 마중나온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녀석이 생긴 건 차치하고요.


유명 디자이너 마츠다상과 마주한 순간, 그런 직감이 광속으로 왔다는 겁니다.


마츠다상은 마치 에도 막부 시대에 쇼군이나 히로시마 성주로 태어났으어울렸을 우람하다못해 거대한 몸집에 장내를 아우르는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었죠.

뒤쪽 벽에 사무라이칼 하나 걸치면 폼날 정도로.


스모를 하시지, 왜 디자이너를 하실까.

했습니다.


어쨌든 저런 포스를 가진 분 한마디면 다들 쩔쩔매겠네 싶습니다.


거기다 자리에 앉아 숨을 가다듬고 찬찬히 외모를 살펴보니 또 그 위엄이 장난 아닙니다.

커다란 얼굴엔 분홍빛이 어려 싱싱한 혈기가 엿보이고요, 

사람좋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지만서도 실은 안에 숨기고있는 내공이 장난 아니게 느껴졌다는 거죠.

천룡언월도 같은 장대붓으로 일필휘지할 것 같은 폼입니다.

저 내공으로 아트를 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저처럼 아침 출근으로 만원 지하철에 부대끼고, 팀장님이 던져준 오더 쳐내기도 힘겹고, 한잔의 믹스커피로 스트레스를 달래며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에휴~" 

꾀죄죄한 샐러리맨과는 전혀 다른 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아트를 하시는 세계적 명성의 디자이너 작가 분 앞에서, 그리고 명작 반열에 발가락을 얹고있는 그의 마스터피스의 디자인 작품을 앞에 두고.


"첫방문인데, 아주시죠." 라고 할 수는 없는 거겠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티스트 모욕죄로 정말 계약 파기가 되지않을까 심히 우려되었던 니다.


그래도 뒷감당 두려워 말을 꺼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틈을 보기는 했습니다.

얘기는 꺼내봤지만 어림도 없었다고 보고라도 해야 하니까요.

근데 그마저도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문제였죠.


쪼르르 앉아있는 한국인 네명중 과연 누가.


설계사중 여자분이 하시면.

"이거 엄연한 차별..."

네. 네.


시공과장께서 하시면.

"저도 하고싶은데, 전 공사담당이라서..."


남은 설계사분이 하시면

"제가 해야죠. 당연히 힘없는 막내인 제가 하는 게 맞죠. 제가 다둥이 아빠거든요. 제 팔에 매달린 다둥이들을 생각하며..."

됐다. 됐어. 너 애국자해라. 내가 하고만다.


그걸 떠나, 엄연히 말한다면, 제가 이 설계팀의 pm이니 방울을 달면 저이겠지요.


노리다케 타입의 잔에 담아온 따끈한 우롱차를 마시며(공짜라서 이것부터 마시고) 틈을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시설 설명을 저희가 리마인드 해드리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디자인 설계의 컨셉을 어시스턴트 디자이너가 브리핑해주었고요.

그러는동안, 우리가 차를 마시고, 설명하고, 브리핑받는 동안, 마츠다상은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조용히 앉아있습니다. 

표현을 첨언하자면, 모두가 잠든 새벽 앞마당을 빗자루로 쓸듯이 눈을 지그시 뜨고 1인용 고급쇼파에 편하게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죠.


느긋하시군.

비꼬는 게 아닙니다.

그런 느긋함이 부러웠거든요.

 사람은 정말 다른 세상을 보고있구나 싶었고요.


나도 디자이너로 태어날 걸.

십초간 부러워합니다.


바로 어시스턴트의 컨셉 팔로우업이 이어집니다.

zen과 블루라군과 퍼시픽 발리의 하이브리드 조합이라는군요.

뭔 말인지 모르지만 그렇답니다.


저는 그러는 동안에도 기회를 호시탐탐 봅니다.

하지만 기회는 쉽지않습니다.

말 잘못 꺼냈다가 계약파기니까요.


어떤 타이밍에 말을 꺼낼지, 고심고심...


헌데 마침 마츠다상이 연락이 와서 자리를 비우는아닌가요.


오호. 이거지.


전 바로.

"헤이! 잘생긴 어시스턴트 말 끊어서 미안한데."

제가 이런데는 빠르죠.


".......?"


"컨셉은 알겠고, 30%만 깎아줘! 첫거래 기념으로. 우리 동네 미용실도, 아니 방금껀 통역하지말고."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시스턴트의 눈이 방울처럼 커지고, 방금 후지산이 폭발한 것 같은 정을 지었습니다.

아님, 새로 산 최신 아이폰을 방금 택시에서 잃어버린 표정이라고 할까요.

딱 3초동안만.


3초 지나자 다시 원래로 돌아왔고, 때마침 돌아온 마츠다상에게 귀속말을 했습니다.


잘 생긴 애들은 왜 이렇게 얍삽할까요.

고민좀 해보지. 바로 상사에게 토스하네요.


그래도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뭐라고 할까. 10%만 깎아줘도 대성공인데.

하고 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기다렸습니다.


어서 말해봐 마츠다상.

대신 화내진 말고.

낮에 먹은 일본식 함박스테이크가 맛이 없어서 내가 살짝 맛이 간 거라 생각해주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덜덜덜.

화나서 계약파기만은...


근데요.

속말을 들은 마츠다상은 표정 변화 일도 없고, 대꾸도 한마디 없는 것이 아닌가요.

혈색좋은 얼굴로 미소만 짓네요.

느긋하게.

뭐지 저 여유는.

원래 거장들은 평정심이 좋은건가요.

아님 엄청 화나서 어이가 없는 걸까요.

잘 모르겠네요.


대신 어시스턴트가 마이크를 잡습니.

노래방 책을 뒤적,  아니고.


돌아온 답이.


"계속 컨셉 설명드리겠습니다." 


엥? 계속 설명?할인 어쩌구는 아니고?

아무 일도 없이?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요.

제가 이상한가요?


- 야. 통역! 제대로 전하긴 했어? 깎아달라고.


- 응 했어. 어시스턴트도 마츠다상에게 얘기하던데. 이 사람들이 돈 깎아달라고 한다. 그렇게 말을 전하던데.


- 그래? 근데 왜 답이 안와. 우리 까인거야.


- 응, 까인 거 맞는 것 같아.


- 아놔.


톡 보냈는데 1이 사라지지않는 기분이랄까요.


그렇게 설계 회의는 아무 일도 없다는듯이 이어졌습니다.

갖고온 오너 오더사항까지 전달할 때도 할인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사태가 이러니, 이게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들 만의 룰인가 싶었습니다.

세계마다 저마다의 룰이 있으니까요.


아트 앞에선 세속적인 건 논하지않는다. 

그러니 나도 못들은 거로 하겠다.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에휴. 하는 수 없지요.


그래서 우리도 말도 안되는 의견을 내놓아 묵시된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살짝 무시당한 것 같은 찝찝함도 있지만, 약 파기 안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라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한국에 돌아가 그렇게 보고하면 되는 거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할인 얘기는 함구했습니다.


설계 회의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졌지만, 그럭저럭  순조롭게 끝났, 저녁식사를 위해 오모테산도 인근 고급 야키니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배가 고파서 야키니쿠 아니래도 뭐든 씹어먹을 태세였죠.


어쨌든 예약한 식당은 오모테산도, 아오야마라는 마치 서울로 치면 청담동이 아닐까 하는 고급스런 명품 스트리트 한켠에 숨은 고급 야키니쿠였습니다.


얼마나 기대 만땅이겠습니까.


일본이래야 신주쿠 가부키쵸니 시부야 횡단보도니 돈키호테니 에비수 맥주하우스만으로도 감탄하는,  그때 중산층 저희로선 눈이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역시 세계적 디자이너는 달라도 뭔가 다르구나 했습니다.

할인 얘기로 까인 거 여기서 보답받는구나 하고 찜찜한 뒤끝도 풀었고요.


사실 우리가 언감생심 언제 이런데 와서 먹어보겠습니까.

오늘은 허리띠 풀고 제대로 먹어보자며, 정말 기대만땅.


맞은편엔 쇼군 마츠다상, 옆엔 얍삽하게 잘생긴 어시스턴트.

우리 쪽은 배고픈 샐러리맨 네명이 쪼르르 앉았습니다.


자, 어서 주문하세요.

배 고파 뒈지겠네요.


헌데 맞은편에 앉아 메뉴판을  일본측에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까.


"오실 분이 한분 더 계시다. 그분이 올때까지 미안하지만 기다리자." 입니다.


엥?

누군데 이렇게 유명한 디자이너를 기다리게 한다는 거지.


언뜻 이해는 안갔습니다.

누군가 중요한 인물이긴 한가 본데.

대체 누구냐는 거죠.


덕분에 저쪽이나 우리나 메뉴판을 외울 정도로 보게됩니다.

일본어라서 뭔말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이랏샤이마세 종업원이 가져다준 우롱차를 한 세잔 마시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물배 채웠다는 얘기죠.


혹시 오시기로 한 분이 안와서 오늘은 여기서 헤어집시다 하진 않겠죠.

그랬다간 머리띠 두르고 전 드러누울 겁니다.

밥주기 전까진.


그러데 그때.

어시스턴트가 "오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게 아닙니까.


이야 드디어 먹는군요.

누가 오는지는 저에게 중요치...

헌데.

그러자. 

쇼군 디자이너가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닙니까.


엥?

뭐야?


거기다 어시스턴트는 버선발로 룸을 열고 바깥으로 튀어나가고요.


아니 일본 총리라도 오나.


사태가 그러니 저희도 얼떨결에 일어나 기립자세를 취했습니다.


일동 차렷!


보십시요.

세계적 유명 디자이너이신 쇼군 디자이너께서 저렇게 일어날 정도면 최소 총리라도 오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아님 유엔 산하 세계 디자이너 협회장이 오든지.


잠시후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리고. 

어시스턴트의 상기된 옆얼굴이 보이고. 

"이랏샤이마세." 하는 어시스턴트의 중저음 목소리(그 와중에 목소리를 까네요. 짜식)가 들리자. 

보이는 분은.


음.


여자?

왠 묘령의 중년 여자?

고급 양장 차림에 에르 뭐시기 백.


뉘신지?


쇼군 디자이너가 바로 소개합니다.


"사장님이시네."


사장님?


"그리고 내 사모님도 되고."


사모님.

엥.


소개받은 와이프이자 사장님이 앉으시자 모두 일동 착석.


착! 착!


앉자마자 사모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낮에 에이치군(잘생긴 어시스턴트)에게 얘길 들었는데, 30% 깎아달라며. 

첫거래이니 깎아줄게.

대신 앞으로 너네들 인테리어 있으면 우리와 잘해보자."


헉.

이렇게 쉽다고. 

이렇게 통이 크시다고.


"자. 간빠이 합시다."

사모님이, 아니 누님이 잔을 드십니다.


만세!

간빠이!

만만세!


우리 모두는 누님, 아니, 진짜 보스이신 분의 구호에 맞혀 술잔을 우렁차게 부딪힙니다.




나중에 술에 취해 우리 쇼군께서는 말합니다.


"난 디자인 밖에 몰라. 모든 건 우리 마누라가 다해. 난 그냥 얼굴 마담이지. 내가 쫌 포스있게 생겼잖아."


그렇군요. 얼굴 마담이군요.

.

아까 할인 얘기할때 모른 척한 게 아니라 정말 몰랐구만, 이 양반.


그럼 얍삽이 잘생긴 어시스턴트  너는?

.

그냥 얍삽이.


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마츠다형은 작품을 만들고.

우리 누님은 통 크게 경영하고.

얍삽이는 얍삽하게 살고.

저희 넷은 쪼르르 앉아 첫방문 할인도 받고.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사는 것도 이 세계의 모습이 아닐까요.


도쿄의 밤은 그렇게 별빛을 반짝이며 흘러갑니다.





# 여기서 디자이너 마츠다상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본명을 밝히는 것은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밑에 댓글로 쓰기는 했는데요. 후일담이라 여기에 덧붙여봅니다.

마츠다상과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실은 디자인도 사업이라서 거래선 관리하고 서브 디자이너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저 사모님이 그 방면에 귀재였습니다.

그래서 저 일이 있고, 세월이 흘러 마츠다상과 다시 일을 해보려했는데, 몸값이 몇배가 올랐네요.

깜짝 놀랐죠.


반대로 그 값을 불러도 사업이 된다는 셈이니 사모님 수완이 대단하신 겁니다.


우리 마츠다상께서는 오로지 디자인만 신경쓰시는 장인 그 자체라 이런 걸 할 여력이 없을 겁니다.

고로 사모님께서 남편의 명성을 올려놓은 셈인 거죠.


그때도 마츠다상이 부인을 볼때면 눈에서 하트가 뿅뿅하는 게 보였습니다.

부인도 그러시고요.


천생 궁합이 달리 없다고 할 때 저는 마츠다상과 그 부인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 뒤에 몇해동안 저를 잊지않고 멋진 연하장을 보내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저의 인생은 실패, 실수, 불운으로 점철된 인생인데, 몇안되는 성공담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즐겁게 글을 썼고,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게 아니니 믹스커피 한잔 시면서 유쾌하게 읽어주시면 그걸로 저는 좋습니다.


그러고보면 세상은 보기에 따라 유쾌하고 즐거운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같이 간 꾀죄죄한 한국인 샐러리맨 네명에게도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있으니 말이죠.

그건 또 나중에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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