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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에 고분고분하시면 모든 게 다 잘 돼요

by 이김정 Mar 22. 2025



이 세계를 예측하는 게 가능할까요.


점이나 사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일기예보처럼 미래를 계산하고 예측하는 것처럼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죠.

이해할 수 없는 것,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였습니다.


그래서 학생시절 공부도 그랬고, 사회 나와서 업무도, 어떤 일이 제 앞에 벌어질 때도 그런 기조로 접근했습니다.


오만하네.


어쩌면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럴지도 모르고요.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요. 이해를 구한다면, 제겐 그게 그러한  아니었습니다.

오만이란 감정적인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죠.

이런 타입은 가령, 매우 로지컬적인 거고, 불확실성의 반대적인 래셔널너티적인 것중 하나라고 생각했죠.


영어를 썼네요. 

있어보여서 써봤습니다.

모르는 단어니까 묻지 마세요.


아무튼.

근데 제 아내는 저와는 반대편입니다.

사주, 타로를 믿고.

문제가 닥치면 그냥 감으로 갑니다.

제가 논리적으로 계산해서 말하면 손사래 치며.


됐고. 그냥 감이 중요해.

합니다.


네.


그와 관련된 미스테리한 이야기 하나를 해보겠습니다.


그럼 얘기 들어갑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했던 때 일입니다.

이사 어떠세요.

사라면 언뜻 번거로운 것부터 생각하실텐데요.

이사하기까 과정도 그렇고, 사람에 따라서 이사 뒤 낯선 환경에 놓이는 것도 꽤나 힘든 일이죠.


근데 저희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어요.


왜냐면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저희는 이사를 다섯번이나 했으니까요.

올해 또 할 예정이고요.

이사 못해 죽은 귀신 있냐고요.

네, 그럴지도.


여튼 저희에겐 택배를 보내고 다시 받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자, 세상 쉬운 일이 이사였죠.


그런 그런 익숙한 이사를 하고나서 뜻밖에도 저를 괴롭히는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수도권의 신도시였던 그 동네를 이사를 한 후 얼마 안있어 알게 됐는데요.

문제가 좀 있었어요.


다름 아니라 바로 신호등이었습니다.

신호등이 왜, 하실텐데 한번 들어보세요.


그 신호등은 어디서나 보는 신호등입니다.

평범하죠.

근데 게 왜 문제가 됐을까요.


이제부터 문제의 신호등을 만나볼까요.


새로 이사 간 집을 나와 좌회전을 하고 앞으로 한참 갑니다.

오랫동안 달립니다.

근데 뭔가 점점 이상해지죠.


어?


합니다.


왜냐.

일반적으로 이 정도 멀리 가면 신호등이 나오겠네 하는 곳에 신호등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한참을 가도요.

왤까.

거꾸로 횡단보도가 없다는 얘기겠죠.


이유가 뭘까요.

이곳은 말이 신도시이지, 조금만 벗어나면 허허벌판입니다.

논도 있고, 밭도 나오고, 과수원도 나오고, 경운기가 탈탈탈 지나가고, 소가 하품을 하며 쳐다봅니다.


예전 신도시는 벌판을 택지 개발하는 식이었거든요. 지금이야 주변들이 같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하간 그런 곳이니, 도로 옆으로 비닐하우스며, 밭, 그리고 얕은 구릉들이 펼쳐져 있는 게 당연한 거.

민가랄 만한 것도 거의 보이지않았습니다.

시골의 고즈넉한 도로를 달리는 것 같죠.

아니 시골입니다.


도로가로 봄엔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지며, 가을엔 낙엽이 센치하게 우수수 떨어지면은, 그 정취가 저만한 곳이 없었죠.


마드모아젤. 뽕네프. 마담

(뭔말인지 역시 모르니 묻지 마세요)


어쨌든 가도 가도 신호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적이 없는 곳이니 그랬다는 거죠.


게다가 그 시절엔 도로에 차도 별로 없었습니다.

가봐야 맛집 몇개고, 이 지역은 특성상 저 멀리 고속화 도로가 따로 놓여져있어서 굳이 이 도로를 탈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한적한 도로의 정취를 만끽하며, 콧노래를 부르면서, 옆창을 내려 한팔을 걸치고 다른 손은 핸들을 잡고 유유히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한참 달리다보면.

코너를 돌아들즈음.

뜬금없이, 갑자기.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그 신호등을 만나는 겁니다.


마치 불시 단속을 벌이는 교통경찰처럼 말이죠.


선생님, 위반하셨습니다.


그래서  "헉! 신호등이다."  하고 깜짝 놀라게 마련입니다.

방심하다 허를 찔렸다고 할까요.


근데 이게 제가 말한 문제인 걸까요.

신호등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빨강 신호등이였죠.


그런 식으로 깜짝 놀라 마주칠 때면 이상하게도 늘 빨강 신호바뀐다는 겁니다.


별 거 아닌데.

빨강신호가 어째서, 라고 하시겠죠.

맞아요. 그건 문제가 아니죠.

그런 건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문제는 다른 겁니다.

바로 빨강신호로 바뀌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지나갈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타이밍.

이건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걸떡지근한 타이밍에 바뀐다는 것입니다.


좀더 설명해보자면, 방금까지 노랑 신호였는데요.

정지선을 지날즈음 여지없이 딸깍 하고 빨강신호로 바뀌는 거죠.

정말 정지선을 지날 때입니다.

이사를 간 뒤로 거기를 지나면 늘 그랬습니다.

예외도 없고, 별첨도 없고, 어펜딕스도 없었습니다.


항상 그런 타이밍에 걸리는 거죠.

신기하죠.

누가 저를 뒤에서 빤히 보고있는 느낌입니다.

"이김정이 지나간다. 빨강으로 어서 바꿔."


살짝 소름도 끼치네요.


에이 그런 건 말이야. 조금더 밟아봐, 그럼 돼. 

하실텐데요.

맞아요. 속도를 좀더 내보면 어렵더라도 어쨌든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산 넘어 산.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신호등에 과속 신호위반 단속 카메라께서 짜잔 하고 걸려있었던 거죠.


신호만 있는 게 아니라 과속도 있는 더블 역세권입니다.

그래서 속도를 내는 것도 어지간하면 곤란한 겁니다.


그것도 문제없지.

집에서 나와 중간에라도 속도를 내면 되지않을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 생각을 안한 건 아닙니다.

그치만 그것도 여의치않았죠.


우선 집 근처는 학교 주변입니다.

네. 30킬로이하라는 거죠.

 뒤로는 당연 50킬로로 바뀌기는 하는데요.

도로 중간에 단속 카메라가 하나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겁니다.

아마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단속하려는 것처럼 놓여있는 거죠.


뒤도 막고, 앞도 막고. 입니다.

장기로 치면 외퉁수죠.


"어허. 이 양반. 장기 두다 어디 갔나. 벤소 갔나."


모르겠고, 

시골이라 횡단보도에 아무도 없을테니 그냥 지나가버려. 뭘 망설여. 선수끼리.

하고 말하실지도 모릅니다.


말씀이 맞습니다.

한적한 시골 횡단보도에 누가 다닐까요.

강아지 한마리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얼룩말 가족이 지나가면 모를까.


그래서 그냥 지나갈까도 싶었습니다.

양심은 트렁크에 싣고요.

근데요.


그건 절대 안됩니다.

여기엔 진짜 문제가 또 있었거든요.

이러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것.


그게 뭐냐 하면.

지형적인 문제입니다.


신호등이 있는 곳이 사거리인데요.

바로 앞 횡단보도의 정지선에서 맞은편 횡단보도까지 너무 멀다는 겁니다.

너어어어무.


일반적인 사거리라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어어어엉말로 넓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체감적으로 서울과 부산 정도 떨어진 것처럼 멀다는 거죠.

인간적으로 그냥 운동장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까요.

심심해서.

아닙니다.

가로 지르는 측면 도로가 그만큼 넓다는 얘기겠죠.

그럼 측면 도로는 저렇게 넓게 되었을까요.

이런 시골 도로에서.

무슨 이유로.

뭔땀시.


저도 모릅니다.

단지 추측컨대는.

우측의 측면 도로 옆으로 세들듯이 군부대 진입로가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걸 포함하려니 기형적으로 넓어진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전차라도 지나가려고. 비행기라도. 또는 항공모함?


그냥 제 추측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저 사거리를 지나가려면 시쳇말로 1박2일은 걸려야 한다는 겁니다.


한번은 이사하고 얼마 뒤였죠.

차를 몰고가는데 예의 그 신호등을 만났습니다.

역시 노랑불 켜있었죠.

눈을 부릅뜨고.

건널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그 와중에 이 신호등이란 놈이 말하는 거.


"에이. 이봐. 지금 노랑불이잖아. 그냥 건너. 쉽잖아."

라고요.


동석한 옆좌석의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고.


그래, 지나가자. 뭔일이야 있겠어.


대신 과속 카메라가 있으니, 악셀을 막 밟을 수는 없고요. 

어떻게 되겠지 하고 그냥 정지선을 지나갑니다.


쒸이이잉!


한참 달립니다.


근데 놈의 신호등이 가차없이 빨강불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 어차피 바뀔줄은 알았다.

그럼 문제는 제 차가 얼마나 지나갔냐는 건데.


두리번.


그 사거리의 절반도 채 지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주구장창 달렸는데도요.

당연히.

그 다음은.


찰칵!


후레쉬 터지고.


!


"여보 방금 뭐야. 어떤 놈이 우릴 찍었어. 이거 몰카야."

두리번 두리번.


아줌마.

아니.


신호 위반 카메라 올시다.

아무도 우릴 몰래 찍진 않아.

우리가 뭐라고.


그래도 위반이 맞는지 알아봤습니다.

호락호락 넘어가진 않으니까요.

이 우주의 탄생보다 방금 단속카메라에 찍혔는지가 더 궁금한거.

과태료 안내 앱도 깔고, 주위에도 수소문해서 물어보고, 지인 건너 교통과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신호위반 파워블러거도 찾아보고 조사했는데.


사거리 중간을 넘지못하면 카메라에 찍히는 구조였습니다.


결론은.

걸렸습니다.


아내는 난리 치고.

돈은 돈대로. 아, 그 생돈을 내고.

그걸 안내면 라면이 몇갠데, 양배추가 몇개고(아내는 샐러드 마니아라서), 상추를 한밭떼기를 사고도 남고.

난리가 났습니다.


네. 어쨌든.

그렇게 넓디넓은 사거리를 간직하신 신호등님을 저는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와서 좌회전을 하고 한갓진 길을 달려왔을 뿐인데 말이죠.


거기다가 꼭 제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말이죠. 

신호를 바꾸시는 신호등인 거죠.

전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신호등이 괘씸해졌습니다.


실은 고백하는 건데요.

그전에 혼자 운전할때도 걸린 적이 있었거든요.

한번.

아니 딱 두번.

아내 몰래 과태료를 냈고요.

에휴.


이전에 단 한번도 신호위반 한 적 없는 무결점 모범 운전자인데 말이죠.


왜 여기선.


그래서 저는 끓어올랐습니다.

분개했습니다.

제가 이사왔다고 차별하는 건가. 텃세부리는 건가, 싶고요.

이 낯선 동네에서 홀대받는 기분이었죠.

속 모르는 아내는 제게 운전을 못하는 거 인정하고 마음을 어쩌고 뭐라 하시고.


듣다보면 이것도 그맘때즈음의 부부간 기싸움 일환이라고 지는 것 같아 혼자 안에서 부글부글 하는 겁니다.


게다가 이런 마음까지도 다시 듭니다.

돌고돌아  하필 저냐는 거죠

저같이 세금 잘 내고, 공중도덕 잘 지키는, 어린 시절 모범상도 받아본 착한 저를.

단지 그맘때 걸리는 게 있다면, 아내 말을 지지리도 안듣는 남편이라는 것 뿐이지만.

그거야 결혼하고 누구나 생기는 투닥투닥 기싸움 아닌가요.


어쨌든.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절치부심했습니다.


머리를 짜봅니다. 제가 어떤 문제를 만날 때처럼 말이죠. 서두에 말한 것처럼.

예측 불가능한 건 없다.

그래서 바로 계산해내는 거였습니다.

뭐를?


거리 곱하기 속력은 시간이다.

죄송합니다.

식이 틀렸네요.


거리를 속력으로 나누면 시간이다.

아이작 뉴턴께서 제게 남긴 운동 물리학 유산을 말하는 겁니다.


바로 저 신호등이 초록에서 빨강으로 바뀌는 시간을 역추적 계산해보자 였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칼에는 칼.


근처 신호등 체계를 조사해서 놈의 주기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정지선과 맞은편 횡단보도 거리를 포함하고 사거리를 다시 이분할해서 미니멈 속력을 역으로 산출해보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렇게 계산한 결론은.

집에서 좌회전을 하고, 30킬로 구간을 천천히 지나고,

50킬로 구간에서 40킬로 이하로 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



그럼 초록불 상태에서 지나갈 수 있는 거란 것이었습니다.


빙고!


하하하.

놈의 신호등을 드디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왠지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자. 그러고 얼마뒤였습니다.

결전의 날.

전 당연히.


그 도로를 달렸죠.


이론 뒤 실전입니다.

참고로 전 실전에 강하죠.


"여보."

잠시 뒤 동석한 아내 목소리입니다.

목소리를 주단으로 깔듯 까시면서.

눈은 가늘게 뜨시고.


마나님 또 잔소리시네요.

"왜 이리 천천히 가."

운전 어쩌구는 생략하고.


저도 지지 않습니다.

그래 기싸움 해보자.

"다 계획이 있어."


"무슨 계획?"


"계산했거든."


옆으로 아내가 제 얼굴을 빤히 보는 게 옆눈으로 느껴집니다.


"여보."

"응?"

"당신이 계산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은데. 그냥 감으로 가.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

"그건 모르는 소리. 두고 보시라구. 내 계산이 어떨지."


한참 실랑이 합니다.

감이 맞네. 계산이 맞네.


러다 얼마뒤.


"여보."

"왜 또. 운전에 집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건 알겠고. 계산이 뭔지 모르겠지만, 뒤에서 빵빵거리는 거 안들려."


어?


빵빵! 빵빵!


아놔.


제가 천천히 가긴 했죠.

35킬로로.

그래도 말이죠.

아니 언놈이 가던 길 그냥 갈 것이지, 제 차 뒤에 바싹 붙어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졸졸 따라오네요.

할 일이 그렇게 없나.


나원참.


옆에서는 일자 눈을 흘기지, 뒤에선 빵빵거리지.

어휴. 어쩔 수 없이 속력을 내야 했습니다.


부르릉.


맥시멈 50킬로로.

래 50킬로 도로지만서도.


그러고 얼마 안가자 저 멀리 그놈의 신호등이.

저주받을 신호등이 낯짝을 보이네요.


이놈!


신호는 노랑불.

역시나.


그치만 정지할 수 없습니다

바싹 뒤에 붙은 차와 추돌할 수 있는 거죠.

생명이 우선입니다.


쟤는 왜 따라붙어서 난리야.


전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정지선을 지납니다.


찰칵!


"여보! 당신 왜!"

아내는 황당해 합니다.

벌써 두번째니까요.


제 입장에선 네번째고.


으으으.

그러게. 왜!

저는 지나갔을까요.

여기를.


룸미러로 보니 뒤에 바싹 붙어 따라오던 차는 정지선 앞에 딱 멈춰있네요.

얄밉게도.


에이 치졸한 .

간사한놈.

전생에 간신배였을 놈.

간신배 너 다 해먹어라!


전 계획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운전 못한다고 뭣모르고 잔소리하는 아내 코도 납작 꺾어줘야했기도 하고요.

아내는 신호등 어쩌구 과태료 어쩌구 양배추 어쩌구 난리가 아닌거죠.


아무튼 제 계획을 수정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집에서 나와 회전을 하고, 아얘 갓길에서 멈춰서자.

시간을 벌자. 아주 많이.

바꿨습니다.


쉽게 말해 초록 신호등에 지나갈 생각보다, 놈이 빨강으로 바뀌고나서 그 후에 도착하자로 계획을 바꾼 거죠.


안전 모드입니다.

달리 말하면 후퇴 맞죠.

그치만 일보후퇴는 이보 전진이다.

그런 거죠.


대신 그것을 위한 시간을 다시 계산했습니다.

탁탁탁.

연필을 귀에 꽂고, 팔을 걷어부치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누가 보면 화성가는 로켓 설계하는 줄 알겠네요)


계산 끝에.

25초란 시간 계산이 나옵니다.

어떤 시간이냐 하면, 갓길에 정지하는 시간.


그렇게 하여.

어느 비 오는 날, 저는 혼자 차를 몰고 그걸 실험했습니다.

아내에겐 다이소 간다고 하고.


다이소에 잽싸게 들러 휴대폰 충전기 하나를 산 후에 빗속에서 전 그 실험을 했습니다.

안개까지 동반한 비가 제 마음을 적시네요.

우수에 젖네요.

주위에 수증기 비냄새가 흠뻑 납니다.

소가 저를 보며 웃고요.


그렇지만 실험에 매진하자 하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빗속에서 정지한 수상한 자동차.

잠시후 출발한다.

안개비 속 저 멀리 사거리로 사라진다.


실험 끝에 결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놈은 이미 빨강으로 바뀌어있었고, 전 그 앞에 여염집 규수처럼 사뿐히 멈춰섰습니다.


"으아아아."



마치 쇼생크 탈출처럼 빗속에서 두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옆좌석 충전기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니가 잔소리하는 아내보다 낫다.


그리고 중요한 건 가 신호등을 이겼다 입니다.


이게 뭐라고.


그치만 제겐 기쁨 그 자체였거든요.


이제 아무 걱정없는 거죠.

마음을 탁 놓고 저 도로를 달려도 됩니다.

아니, 중간에 잠깐  멈춰서고요.

아내 코도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그 뒤로부터 얼마뒤였죠.

아내가 그 도로 너머 맛집을 가자고 하는 게 아닙니까.


흠 그러셔.

듣던중 반가운 소리일세.


전 회심의 미소를 지었죠.


"뭐 좋은 일 있어?"

"아니. 아니. 흐흐. 보면 알아."


나중에 알게 되겠죠.

제가 위대하다는 것을요.

제가 아내를 이길 차례가 왔습니다.


흐흐.


부부 간에는 이런 기싸움의 선점이 필요하죠.

운전에 있어 우리 남자들이 위대하다는 걸 보여줄 때죠.

우린 전조차 운동 물리학으로 접근한다는 걸 알면 여자들은 뒤로 넘어갈 겁니다.


크크크.


근데.

여기서.

아내왈.


"여보! 이번엔 내가 운전할 거야. 아니 거기만 가면 몇번씩 신호위반 하고. 안되겠어. 키 줘봐."


운전을 한다고. 당신이.


안되는데. 이게 다 계산이 돼있는건데.


저기요.


게다가 전 운전을 아내에게 맡기지 않거든요.

불안하기도 하고. 못믿고. 불신하고. 그리고 운전은 제가 더 잘 하고.

훨얼씬 요.


그치만.

저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미소를 짓습니다.


흐흐흐.


누구나 다 경험을 해야 아는 게 있는 거니까요.


그래 당신이 운전을 해봐.


쉽게 말해.


당신도 당해보라고.

흐흐흐.


이번에 본인도 경험하고 저를 좀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겠지요.

인생이 다 그런거죠. 뭐. 쉬운 거 없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제 계산도 믿게 된다면, 그동안 실추된 저도 다시 명예 회복하는 거고.

기선 제압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돌 하나에 새 두마리.

이 참에 아내에게 제가 얼마나 과학적인지도 보여주고.


크크크.


"여보. 한번 운전해봐. 그러고나면 내 계산을 믿을걸."

"무슨 계산?"

"다 그런 게 있어. 운동물리학이라고. 어서 달려보세요. 조오티. 이 세상에 전만큼 좋은 게 어딨겠어. 운전하기 딱 조은 날씨네."


그리고.

갑니다.


집을 나와서 좌회전을 합니다.

크크크.

왜 이렇게 웃기죠.


아내가 운전을 해서 한참 달립니다.

그리고.

저 앞에 예의 그놈의 신호등이 보입니다.


안녕 오랜만이야.


전 옆좌석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이나 합니다.

실실 웃으면서.


으구 내가 그렇게 말했건만. 끌끌.

울 마나님은 제 말을 안들어요.

이제 카메라 찍힐 일만 남았네 그려.

이번엔 제대로 한번 찍어봐라.

브이자라도 해줄까.

손하트 그려줄까.

히히.


드디어 신호등이 가까워집니다.


제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되죠.

신나고.

히히.


삼십미터.

이십미터.

십미터.


코 앞입니다.


손에 땀이 쥐어집니다.


흐흐흐.


이제 올만큼 왔고.

신호등 불을 어디 보실까나.


우리 이쁜 신호등아.

얼굴좀 함 보자.

빨강이...


근데 초록.

아직 초록불?


엥.


노랑불이 아닌감.


요샌 초록에서 빨강으로 바로 바뀌나.


위를 계속 쳐다봅니다.


신호등은 계속 초록불.


빨리 바껴야지. 뭐해 이 자식아!

너 일 안해!

신호등 멱살을 잡습니다.

너 월급루팡이야.


너때문에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이 양반아 일 안하고 뭐하냐고.

우리 와이프가 지금 지나가잖아.

어서 빨강불로 바꾸라고!!


와이프 사진도 찍고.


여전히 그러나 초록불.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네번째 초록!


점점점.


"여보!"


어?


"다 왔어. 근데 하늘은 왜 자꾸 쳐다봐."

맛집입니다.

어느새.


그게 글쎄.

그럴리가 없는데.

왜.

자꾸 하늘이 쳐다보고 싶을까요.


"에구. 당신은 저길 그렇게 못넘어와서. 감으로 이래 운전하면 될걸. 그러게 와이프 말만 잘들어봐. 그럼 하늘에서 떡이 나올꺼야."


떡?

하늘에서.




그날 맛집을 갔다와서 다이소 간다고 하고.


"여보. 요새 다이소 자주 가네. 다이소랑 바람났어."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니고.


저는 다시 혼자 그 신호등을 씩씩대며 지나봅니다.


신호등이 혹시 페미니즘에 투철한 여자 투사인가 싶어서요.

그래서 여자편을 둔다고 해설라무네.

초록이었던 건지 해서.

남자는 빨강이고.


그랬더니.


저도

초록불.


엥.


정말 초록불이지 뭡니까.

이게 왠 일이지요.


왜 그러냐고요!




수소문 해보니.

신호등 체계는.

가끔씩 바뀐다고 합니다.


헉.


그렇군요.


근데요.

이상하게도 말이죠.

그 시점부터 저는 나이가 아닌, 아내에게 꺾이는 분수령을 맞아서.

그 뒤로 아내 말이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기로 했던 것 같습...

아마.

그랬던 거였던 것 같습니다.

왠일인지 그랬습니다.


고분고분.


그러니 그놈의 신호등도 잘 통과하고, 일도 잘 풀렸던 것 같기도 하고, 가내외 만사가 화목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이 글의 제목처럼 말이죠.


원인이라면 정말 이때 미친듯 신호등에 집착하던 저라는 무언가가 맥없이 분질러져서 일것 같기도 하고요.

그건 아마 아무도 모르는 거겠죠.


그렇지않을까요.


그러니 이 사건이 아내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것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여러분께서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대신 인정하기 싫지만, 잘 풀리긴 했죠, 뭐.


그래도 다시 한번 거리 나누기 속력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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