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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마케팅:불확실한 시대, 사람들은 누구를 믿을까?

개인을 넘어 '우리'와 소통하는 마케팅

by 박찬우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무엇인가?
이념? 혹은 개인의 신념?


영화 <워페어(2025)>의 한 장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정보분석가들은 연합군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독일군 병사들의 전투 의지를 분석하며 이 질문에 매달렸습니다. 결론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들을 지탱한 것은 나치즘 이데올로기나 선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투와 생사를 함께하며 형성된 '작고 친밀한 그룹' 내의 유대감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조국이나 총통이 아닌, 옆자리의 동료를 위해 싸우고 죽어갔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의 생존 본능을 압도한 것은 바로 그룹의 권위였죠.


제임스 M. 맥퍼슨(James M. McPherson)이 저술한 『대의와 동료를 위하여: 남북전쟁에서 병사들이 싸운 이유(For Cause and Comrades: Why Men Fought the Civil War)』는 북미 남북전쟁 병사들이 남긴 2만 5천여 통의 편지와 수백 개의 일지를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많은 병사들이 "이상적인 국가나 이념"보다는 동료 병사들과의 일상적 유대감, 그리고 "내 옆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감정에 의해 싸웠다고 진술했습니다.


오슬로 평화연구소(Peace Research Institute Oslo, PRIO)의 연구 논평 "존 엘스터 '병사들이 싸우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Jon Elster 'What Motivates Soldiers to Fight')'"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분석하면서, 병사들의 '싸울 의지(will to fight)'가 국가나 군사 자산보다 "동료에게 지는 것에 대한 수치"와 "동료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책임감" 등에 더 많이 근거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병기의 우열이 아니라, 병사들이 옆의 동료를 위해 끝까지 버틸 의지였습니다.


전쟁터의 이야기가 마케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사실 오늘날 소비자의 행동 원리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정보 과잉과 불확실성이라는 현대판 전쟁터에서, 소비자 역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기보다 그룹의 선택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탈진실 시대의 그룹 마케팅


그룹 마케팅은 개인이 아닌 특정 집단이나 커뮤니티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마케팅 전략입니다. 이는 공통된 관심사, 가치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타깃으로 하여 집단 내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과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전통적인 개인 중심 마케팅과 달리, 그룹 마케팅은 집단의 역학관계와 네트워크 효과를 전략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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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 시대는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인 확산이 있습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 주체가 다원화되면서 허위 정보, 가짜뉴스, 감정적 선동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전통적 권위나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자신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이것이 사실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신념과 일치하는가?' 또는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한 말인가?'를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룹 마케팅의 필요성은 세 가지 이유로 증대됩니다.


첫째, 정보 과잉과 가짜 뉴스의 범람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기업의 일방적인 메시지보다 자신이 속한 그룹 내 구성원들의 의견과 경험을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개인들은 자신과 유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쉽게 연결되어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셋째, 익명성과 정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그룹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개별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영향력 있는 그룹을 파악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룹 마케팅이 만드는 새로운 신뢰의 구조


그룹 마케팅이 탈진실 시대의 부정적 현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확증편향과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환경에서, 그룹 마케팅은 '진정성 있는 관계'와 '검증된 경험의 공유'를 통해 건강한 신뢰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룹 내에서 실제 사용자들의 직접 경험이 공유되고, 구성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차 검증하며, 투명한 대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단순한 감정적 선동이나 허위 정보는 자연스럽게 걸러집니다. 이는 그룹이 가진 '집단 지성'과 '사회적 검증'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룹 마케팅의 핵심은 조작이나 선동이 아니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관계 형성에 있습니다. 브랜드가 투명하게 소통하고, 실제 가치를 제공하며,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검증을 거칠 때, 그룹은 탈진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신뢰의 안전지대'가 됩니다. 이것이 그룹 마케팅이 단순한 전술을 넘어 시대적 필수 전략이 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그먼테이션'으로 소비자를 나이, 성별, 소득,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분류해 왔습니다. '20대 도시에 거주하는 완벽주의자', '성취 지향적 소비자' 같은 범주로 말이죠. 하지만 이는 마케터가 만들어낸 가상의 분류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분류된 사람들은 자신이 그 그룹에 속한다는 걸 모르고, 당연히 서로 소통하지도 않고, 함께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그룹'은 실제로 존재하는 커뮤니티입니다.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러닝 클럽, 특정 음악 장르를 좋아하는 팬들, 같은 브랜드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것들이죠. 이들은 나이나 소득이 달라도 공통된 관심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며, 함께 행동합니다.


이제 브랜드는 상상 속 소비자 집단이 아니라, 실제 사회적 네트워크 속의 '살아 있는 그룹'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이 '살아 있는 그룹'을 정확히 타깃으로 하여, 그들의 언어와 문화적 맥락에 맞는 맞춤형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신뢰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이방인이 아닌, '우리 중 한 명'으로서 대화하는 효과를 창출하여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메시지의 수용도를 높입니다.


탈진실 시대에 그룹 마케팅은 마케팅 효율성을 높이는 선택적 전략을 넘어, 브랜드의 '신뢰 자본(Trust Capital)'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마케팅의 전쟁터가 '주목'을 끄는 싸움에서 '신뢰'를 얻는 싸움으로 전환된 지금, 불특정 다수를 설득하기보다 작지만 강력한 그룹과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룹 마케팅의 실전 원칙


그룹 마케팅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특정 집단의 가치관과 연결되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깊은 유대감과 지지층을 형성하는 전략입니다. 이러한 그룹 마케팅을 실행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원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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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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