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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코드; 2. 참여와 놀이의 코드

덕후의 경험을 원하는 대중을 겨냥하라

by 박찬우



2025년 10월 15일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스케줄 매장 앞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행사를 위해 새벽 3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3대 버거로 불리는 '인 앤 아웃'이 단 4시간만 문을 여는 팝업스토어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주저 없이 모여든 것이었습니다. 오픈 전 대기 인원은 이미 500명을 넘어섰고, 준비된 500인분의 버거는 예상대로 조기 품절되었습니다.


햄버거 하나 때문에 6시간을 기다린다니, 일반인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덕후들 사이에서는 6시간 정도면 그다지 대단한 기다림도 아니라 여겨집니다. (이런 현상은 7화 <팬들과 함께 할 놀동, 준비되었나요?>에서 놀이와 노동의 합성어 '놀동'으로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 놀동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이제 이전 칼럼에서 소개해 드렸던 덕후를 마케팅 과정에 직접 참여시키거나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덕후 마케팅'과 비교하여 '덕후 코드'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그 차이점과 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덕후 코드, 그들만의 놀이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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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피카디리 극장 앞, 많은 사람들이 밤샘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조조선착순 관객에게 증정하는 <람보 2> 티셔츠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처럼 인터넷 예매나 인터넷 구매가 활발하지 않던 예전에는 이런 밤샘 줄 서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차이는 당시에는 한밤중의 노숙을 유도한 극장의 프로모션을 비판하는 시각이 컸다는 것입니다. 실제 <람보 2>의 티셔츠 프로모션도 비난에 못 이겨 잠시 중단되기도 했었죠.


매장이 오픈하기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 문화는 원래 보고 싶은 영화, 기다리던 앨범, 한정수량의 굿즈를 구입하기 위한 덕후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오덕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덕후'로 넘어오면서 긍정적 시각으로 변해가듯, 이러한 '밤샘 기다림 문화'도 '오픈런'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판 운동화나 피규어, 제품을 구입하는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팝업스토어, 콜라보 제품, 한정판 굿즈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덕후 코드는 특정 분야에 깊이 몰입한 덕후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행동 양식과 문화적 패턴을 말합니다. 덕후들이 그들의 덕질을 위해 즐겨하는 놀이나 그들만의 놀동 문화를 지칭합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 갖고 싶은 제품을 가장 먼저 구매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을 새우는 '오픈런', 같은 영화를 여러 포맷으로 반복 관람하는 'N차 관람', 영화의 세세한 내용을 퀴즈로 푸는 '영퀴놀이'와 같이 소비 과정 자체를 하나의 놀이이자 참여의 장으로 만드는 문화적 규칙입니다.


대중은 덕후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덕후의 경험을 원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오타쿠 장르의 문법을 제거하고 대중적 감수성으로 접근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데뷔작인 <별의 목소리>에서 설정한 세카이계의 연장선상에서 오타쿠 장르의 문법을 기반으로 만든 <너의 이름은>이 100억 엔이 넘는 초대박 흥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도 아니고 오타쿠 장르의 애니메이션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니,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일본에서 여러 관점의 연구가 있었고 그 결과, 오타쿠에게 익숙한 장르적 문법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예전처럼 오타쿠 코드를 활용해 오타쿠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오타쿠 코드를 이용해서 대중을 상대로 하니 성과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대중의 속성이 있음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대중은 덕후가 될 수 없고
대중은 덕후가 되길 원하지 않으며
단지 대중은 덕후의 경험을 원한다.


대중은 스스로 덕후가 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이들이 경험하는 특별한 몰입감과 소속감, 그리고 성취감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입니다.


스크린샷 2025-10-28 054120.png 판매가 22만 엔인 건다리움 합금모델 RX-78-2 건담

200만 원짜리 손바닥만 한(12.5Cm) 건담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덕후들처럼 매일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출시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해외 직구까지 하면서 덕질할 시간과 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중은 덕후가 될 수 없고, 또 되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덕후의 경험을 원합니다. "나도 덕후야, 이 정도는 햐여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경험 말입니다. 인 앤 아웃 오픈런에 성공해서 인증샷을 올리거나, 영화를 N차 관람해서 "나 이 영화 세 번 봤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 이런 것들이 바로 대중이 원하는 덕후의 경험입니다.


즉 대중은 덕후처럼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이런 놀이에 참여해 보는 것”을 소비하고 싶어 합니다.


소셜 미디어와 독특하고 공유 가능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의 부상은 이러한 '덕후적 행동'을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브랜드의 과제는 모든 대중을 덕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강렬하고 참여적인 경험의 패턴을 차용하여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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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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