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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함께 할 놀동, 준비되었나요?

팬덤과 브랜드 모두 성취감을 얻게 되는 협업 거리를 준비하자

by 박찬우

지지자들을 어느 정도 발굴하고 연결하였다면 이제는 학습거리, 떠들거리, 협업거리를 제공하여 팬으로 육성할 차례입니다. 본격적인 팬덤으로의 활동이 시작되는 거죠.


많은 기업들이 이 지점에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팬덤으로 육성에서 핵심인 협업거리를 처음부터 제대로 기획하지 않아 우왕좌왕하기 시작하는 거죠. 팬덤과 브랜드의 목표를 모두 달성할 협업거리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콘텐츠 제작은 이제 식상해


기업들이 가장 쉽게 팬덤으로 간주하기 쉬운 서포터즈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서포터즈 모집합니다!" 브랜드들이 가장 많이 쓰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모집 공고를 자세히 보면 어떤가요? "제품 체험 후 블로그 포스팅 필수", "SNS 업로드 의무", "월 2회 이상 콘텐츠 제작" 같은 조건들이 빼곡합니다.


솔직히 말해보겠습니다. 이건 서포터즈가 아니라 아르바이트생 모집입니다. 브랜드가 하기 싫은 콘텐츠 제작 업무를 팬들에게 떠넘기는 것이죠. 제품 하나 주고 (물론 활동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뷰 써줘", "홍보해 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협업일까요? 그들의 영향력만을 얻고자 함이라 하지만 팬덤이 일반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만 그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더 씁쓸한 건 이런 방식에 점점 사람들이 지쳐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신제품을 미리 써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청자가 몰렸지만, 이제는 "또 콘텐츠 만들라고 하겠지"라며 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브랜드들이 팬들을 "무료로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사람들"로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팬들의 열정과 창의성은 무시한 채, 그저 정해진 틀 안에서 홍보 도구로만 활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접근법으로는 절대 진정한 팬덤을 만들 수 없습니다.


또한 브랜드가 팬덤을 구축할 때 목표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콘텐츠 제작에만 의존하여 협업을 제공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팬덤을 운영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되곤 합니다. 브랜드의 입장에서도 콘텐츠 제작만으로는 팬덤의 유지 이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협업거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놀이와 노동 사이, 팬들의 진짜 욕구


그렇다면 팬들은 진짜 무엇을 원할까요? 여기서 팬덤의 '놀동'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놀동은 놀이와 노동의 합성어로, 겉보기에는 노동 같지만 본인에게는 놀이가 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프로듀스 101>을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연습생을 1등 시키려고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빨리 투표해!"라고 하는 모습은 옆에서 보면 미친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즐거운 놀이였죠. 이것이 팬덤이 이야기하는 놀동입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즐겨서 하는 놀이지만 팬덤 외부의 사람에게는 노동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놀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로듀스 101>에서 이러한 놀동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팬들의 놀동과 상관없이 나중에 이게 다 조작된 시나리오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팬덤이 크게 상처받았다는 점입니다.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놀아난 거구나"를 알게 된 것이죠. 이제 팬덤도 더욱 자신의 열정이 인정받고,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놀동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놀동의 제공, 협업 거리 설계


마찬가지로 이제 브랜드의 팬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콘텐츠 제작이 아닙니다. 브랜드는 이제 "콘텐츠 만들어줘"가 아니라 "함께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인드로 접근해야 합니다. 홍보 콘텐츠 제작 요청에서 더 나아가 공동의 협업 거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브랜드 팬을 궁극적으로 “브랜드의 주인공”, “창작자”, “커뮤니티 리더”로 부각시킬 수 있는 놀동들을 살펴보죠.


협업의 파트너로서의 놀동

브랜드는 팬들을 홍보 도구가 아닌 진정한 협업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합니다. 팬들의 아이디어를 귀담아듣고,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것이 브랜드 팬덤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입니다.


스크린샷 2025-08-03 173014.png 나나투어 with 세븐틴의 굿즈

<나나투어 with 세븐틴> 방송의 굿즈를 세븐틴 팬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제작한 것처럼, 팬덤의 의견을 담아 협업의 성과물을 만드는 놀동이 기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크래미' 활용 레시피북을 한성기업의 브랜드 팬덤인 한성 Club과 협업으로 제작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고요. 레고 팬의 아이디어를 팬덤의 응원을 기준으로 제품화하는 '레고 아이디어즈'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러한 협업의 파트너로서의 놀동을 기획할 때에는 결과물에서 팬덤이 성취감을 얻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장치들을 고민하여야 합니다.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놀동

협업의 파트너로서의 놀동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보죠. 팬덤과 더욱더 적극적으로 협업을 하는 방법입니다. 팬들을 진정한 협업 파트너로 만들고자 한다면 브랜드의 핵심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팬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를 설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는 팬들에게 '내가 이 브랜드의 일부'라는 강력한 소속감을 부여하고, 브랜드의 의사결정 과정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팬덤과 함께 만든 널핏의 널싱화 (https://nurfit.co.kr)

열악한 간호환경에서 조금이나마 업무환경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호사에게 최적화된 널싱화를 개발하는 컨설팅 과정에서 놀동을 기획하였습니다. 다양한 부서의 현직 간호사로 구성된 널핏의 팬덤 널핏플 OBGY를 구성하여 기획 개발 단계부터 문제점과 해결점을 함께 논의하여 제품을 개발하였었죠. ( https://nurfit.co.kr/board/obgyNews/list.html?board_no=8 ) 팬덤에게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놀동을 제공한 것입니다.


오디오북의 팬덤을 컨설팅할 때에도 팬덤의 놀동거리를 기획하기 위해 오디오북의 제작 프로세스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팬덤이 참여하여 결과를 만들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 있는지 찾아보았던 거죠. 성우에 의해 원고가 녹음이 되고 오디오북으로 출고가 되기 전, 원고대로 녹음이 잘 되었는지 검수의 과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직원들이 원고를 나누어 검수하고 있었죠. 이 작업을 오디오북의 팬덤에게 참여의 놀동으로 제공하고 오디오북이 완성되면 검수자로 참여 팬의 이름을 제작 정보에 포함하여 선망의 대상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설계하였답니다.


브랜드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차근차근 살펴보시면 팬들이 참여해서 더욱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를 놀동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검토해 보세요.


커뮤니티 구축과 참여의 놀동

팬덤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브랜드는 팬들이 스스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환경, 즉 '놀동'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세포라와 할리데이비슨은 팬들에게 '놀동'의 공간을 제공하여 그들이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함으로써, 단순한 고객 관계를 넘어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브랜드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SEPHORA Groups https://community.sephora.com/t5/grouphubs/page

세포라는 '뷰티 인사이더 커뮤니티'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 안에 '스킨케어', '메이크업' 등 특정 관심사별 '그룹스(Groups)'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할 수 있는 가상 '놀동'의 공간 역할을 하며, 브랜드는 이곳에서 팬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후기를 공유하도록 장려합니다.


팬들은 이 공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리더'가 되고, 브랜드는 직접 개입하기보다 플랫폼을 제공하고 관리함으로써 팬들이 직접 커뮤니티의 문화를 만들어가도록 지원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팬들은 세포라를 단순한 쇼핑 채널이 아닌, 자신의 뷰티 라이프를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우리'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할리데이비슨의 H.O.G https://www.harley-davidson.com/kr/ko/content/hog.html

할리데이비슨은 'H.O.G.'라는 공식적인 라이더 커뮤니티를 만들었지만, 그 운영은 철저히 지역 기반 '챕터(Chapter)' 회원들의 자율성에 맡겼습니다. 챕터는 팬들이 모여 활동하는 오프라인 '놀동'입니다.


할리데이비슨 본사는 H.O.G. 챕터 운영에 필요한 가이드라인과 혜택을 제공하지만, 챕터의 회장과 임원진은 회원들이 직접 선출합니다. 이 리더들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그룹 라이딩, 자선 모금 등 다양한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챕터 회원들은 스스로 모임의 규칙을 정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강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을 갖게 되며,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을 넘어 '할리데이비슨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됩니다.


이처럼 세포라와 할리데이비슨은 팬들에게 '놀동'을 제공하여 그들이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함으로써, 단순한 고객 관계를 넘어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브랜드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브랜드 팬덤의 협업거리로 브랜드 커뮤니티의 구축과 운영을 놀동으로 제공하는 것을 당장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의미와 재미를 부여하는 놀동을 기획하라


"그것이 재미가 있니? 의미가 있니?"라는 질문은 어떤 활동이나 경험이 즐거움을 주는지, 또는 가치나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표현입니다. 놀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동은 팬들에게 의미나 재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스크린샷 2025-08-03 215037.png 건담 글로벌 챌린지

2020년 12월 일본 요코하마 야마시타 부두에 18m 크기의 실물 건담 'RX-78F00'이 완성되어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건담은 무게 25톤에 24개의 관절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걷지는 못하지만 허리에 고정된 지지대(건담 독)를 활용해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등의 다양한 동작을 선보였습니다. 단숨에 건담팬들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의 지지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실 이 움직이는 건담은 1979년 첫 방송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40주년을 기념하여 추진된 건담 글로벌 챌린지(Gundam Global Challenge) 프로젝트의 결과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애니메이션 속 설정 크기인 18m의 건담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14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건담 팬, 움직이는 건담을 꿈꾸는 엔지니어와 전문가들로부터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단순한 로봇 기술 연구를 넘어, 학술,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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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코리아는 사회공헌활동(CSR)의 일환으로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이 최신 IT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고자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기술을 접할 수 있도록 소니의 사물인터넷 DIY 키트 '메시' 블록을 활용한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런 의미 있는 일에 서포터즈가 일선에 나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협업거리를 만들어 활용 중입니다.


결국 팬들이 원하는 놀동은 '의미'와 '재미'가 동시에 충족되는 활동입니다. 브랜드는 팬들이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놀이나 놀이터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단순히 '좋아요'나 '댓글'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활동 자체가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팬덤이 놀동을 통해 브랜드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들은 가장 강력한 브랜드의 지지자가 될 것입니다.


브랜드와 팬 모두 만족하는 협업거리를 제공하라


브랜드도 브랜드 팬덤과의 협업을 통해 얻는 효과가 미미하다면 지속적인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팬들에게 의미와 재미가 있는 놀동을 제공함과 동시에 브랜드도 마케팅효과나 부수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업거리를 계획해야 합니다. 즉, 브랜드 팬덤의 구축 시 목적과 연관 지어 충분히 브랜드도 성과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중요하면서도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룰루레몬의 제휴사와 크리에이터 프로그램

예를 들어, 브랜드팬덤 운영의 목적이 '매출 증가'라고 한다면 룰루레몬의 제휴사와 크리에이터 프로그램( https://shop.lululemon.com/story/affiliates-creators )을 벤치마킹하세요. 팬이 추천과 함께 진행하는 공동구매도 재미와 의미를 더한다면 놀동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팬덤 활동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팬들이 협업을 통해 얻은 경험과 성취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브랜드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얻거나,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등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는 '윈-윈(Win-Win)'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팬덤을 구축하려는 브랜드는 "무엇을 시킬까"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팬들의 열정을 활용하는 놀동을 통해 그들에게 의미와 재미를 부여하고, 이 활동이 브랜드의 비즈니스 목표와도 연결될 때, 비로소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팬덤이 탄생할 것입니다.


무엇을 함께해서 어떤 결과를 얻고 또 어떤 성취감을 각각 나누어야 할까... 팬덤을 시작하시기 전 부터 고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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