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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는 왜 그 많은 레고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제공하였는가?

by 박찬우

"요즘 소셜미디어에는 ‘300명의 찐팬을 모으면 성공한다’ 라거나 ‘50명의 슈퍼팬을 모으면 성공한다’는 류의 이야기로 떠돌고 있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찐팬 몇 명을 모으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스노우볼 팬더밍』을 출간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벤트를 발견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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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팬 이론에 대해 아무 말하는 이벤트', 이름 그대로 찐팬 이론에 대해 아무 말을 이어가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도 참여해서 열심히 의견을 밝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나누었던 여러 의견 중에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N차 관람 열풍’을 이끌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이 어렵게 어렵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이유는?"


'찐팬 몇 명 만들면 성공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팬을 보유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왜 간신히 손익분기를 넘겼는지 설명해 보라는 질문이었죠. 합리적 의심입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질문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 것은 '춘천 레고랜드'였습니다.


춘천 레고랜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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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레고랜드는 개장 초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글로벌 테마파크'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연간 200만 명의 방문객을 목표로 했습니다. 강원도와 레고랜드 운영사 모두 막대한 경제 효과를 예고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2024년 레고랜드 입장객 수는 49만 4,618명으로 2023년 보다 13만 8,253명이 줄었고, 감소율은 21.8%로 춘천시내 주요 관광지 중 가장 컸다고 합니다. 이는 연간 200만 명 이상 방문해 6,000억 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란 강원도의 기대치를 크게 밑돈 것이죠. 더 큰 문제는 개장 3년이 넘도록 단 1원의 수익도 거둬들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 점입니다. 결국 춘천 레고랜드는 10년 넘게 강원도가 그려왔던 장밋빛 청사진이 사라지고, 파산 위기에 몰린 시행사의 '빚잔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위기의 상황입니다.


여기에 유튜브나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 상의 춘천 레고랜드 후기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실제 방문 고객의 불만 섞인 후기나 레고랜드의 초라한 실적, 레고랜드의 실패요인을 분석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고객들의 반응도 좋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춘천 레고랜드의 이야기를 살펴보다 보니 잊고 있었던 박찬욱 감독 팬과 <헤어질 결심>과 연관한 질문이 다시 떠 오르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레고는 박찬욱 감독만큼이나 팬덤이 강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동일한 질문이 가능한 상황이거든요.


팬덤이 만든 기적, 파산 위기에서 글로벌 1위로


여기서 잠깐 브랜드 팬덤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레고의 이야기를 살펴보죠. 레고는 1990년대 블록 특허권 만료로 인한 중국 모조품 등장과 주 고객층인 아이들의 관심이 디지털 기기로 이동하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2004년 파산 위기를 맞았고, 2017년에는 YouTube와 터치 기기 보급으로 매출이 8% 이상 감소하며 또다시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레고는 팬덤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전략을 통해 경쟁사 Mattel 대비 20% 수준이었던 매출에서 압도적인 글로벌 1위 토이 기업으로 등극했습니다.

ff4423a9b1ed4.jpeg 스타워즈 팬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협업상품

레고의 팬덤 전략은 기존 고객층을 넘어 새로운 팬덤을 적극적으로 유입시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디즈니, 해리포터, 마블 등 영화 속 캐릭터부터 닌텐도, 나사, 보잉, 이케아, 아디다스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해당 영역의 팬들을 레고의 고객으로 흡수했습니다. 특히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타디움과 같은 스포츠 분야 콜라보를 통해 AFOL(Adult Fan of Lego)을 공략한 결과, 2030 세대는 물론 40~60대가 뽑은 기업 평판 순위에서도 Top3에 들어갈 정도로 폭넓은 연령층의 팬덤을 확보했습니다.

Lego Ambassador Network(LAN)

레고는 단순히 팬덤을 유입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여 팬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LEGO Certified Professional(레고 공인 작가) 제도를 통해 팬들의 창작 활동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전 세계 350여 개의 Lego Ambassador Network(LAN)를 운영하여 각 지역의 팬 커뮤니티를 활성화했습니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신규 매장 오픈이나 현지화 전략을 세울 때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https://ideas.lego.com/

가장 혁신적인 것은 팬덤을 신제품 개발에 직접 참여시키는 <LEGO IDEAS> 프로그램입니다. 전 세계 누구든지 레고 제작 도구인 Studio 소프트웨어를 통해 신제품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으며, 1만 명의 지지를 받으면 공식 심사를 통해 상용화 여부가 결정됩니다. 출시되는 경우 총판매액의 1%를 로열티로 크리에이터에게 지급합니다. 이를 통해 180만 명이 넘는 가입자와 수만 개의 아이디어를 확보했으며, <Minecraft>, <BTS>, <The Office> 등 40여 개 제품이 실제로 출시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레고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팬덤 확보를 위해 아날로그 완구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했습니다. 닌텐도와의 파트너십으로 탄생한 <슈퍼마리오> 테마는 컬러 센서를 통해 현실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며 "Most successful theme"로 흥행하고 있습니다. AR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과 Snap과의 협력을 통한 가상 레고 조립 경험 제공, 그리고 에픽게임즈에 20억 달러를 투자하여 메타버스 공간 구축에 나서는 등 팬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놀이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레고는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2021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하며 '장난감 업계의 애플'로 재평가받았습니다. 레고의 성공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팬덤이라는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할 때 전통 기업도 디지털 시대에 재도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레고가,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왜 춘천 레고랜드는 이렇게도 고전 중일까요?


그 많은 레고 팬들은 왜 춘천 레고랜드를 외면할까?


답은 간단합니다. 레고랜드가 정작 레고 팬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춘천 레고랜드는 2세부터 12세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습니다. 대부분의 어트랙션이 자극적이지 않고, 본격적인 롤러코스터조차 뒤집어지는 부분이 전혀 없죠. 이는 레고의 핵심 팬덤인 성인 팬들을 완전히 배제한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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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AFOL(Adult Fan of Lego)은 약 100만 명 규모이며, 이들은 레고 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합니다. 2021년 코엑스에서 열린 ‘브릭코리아 컨벤션’의 방문객은 평일 낮에도 대부분 성인이었고 어린이는 소수라는 관찰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레고 팬들은 대부분 20-40대 성인인데 이들이 즐길 만한 콘텐츠가 전무한 거죠. 실제로 한국 레고 커뮤니티에서는 "어린이만을 위한 곳", "성인이 가기엔 민망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레고 팬들의 진짜 관심사를 생각해 보면 답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진성 레고팬들은 수십만 원짜리 크리에이터 시리즈나 테크닉 시리즈를 사서 몇 시간, 심지어 며칠에 걸쳐 조립하는 것을 즐깁니다. 밀레니엄 팰컨이나 타지마할 같은 고난도 세트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 자신만의 MOC(My Own Creation)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자부심이 이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죠. 하지만 춘천 레고랜드에서는 이런 경험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완성된 레고 작품을 구경하고, 유치원생 수준의 간단한 조립 체험만 할 뿐입니다.


더 큰 문제는 팬들의 창작 욕구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레고가 성공한 핵심 전략인 팬 참여형 프로그램이 아예 없습니다. 해외 레고랜드에서는 정기적으로 팬들의 MOC 작품 전시회를 열고, 빌딩 챌린지 대회를 개최하며, 심지어 레고 마스터 빌더들과의 만남까지 제공합니다. 팬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전시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공간도 없죠. 그저 미리 만들어진 전시물을 구경하고 간단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는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만 구경하고 나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팬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레어 세트나 한정판 피규어를 구매할 수 있는 독점 매장, 전문가급 빌더들의 테크닉을 배울 수 있는 워크숍,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고 다른 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또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해외 한정 세트나 부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간절히 원하죠. 하지만 춘천 레고랜드는 이런 니즈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레고랜드의 성공 사례들은 모두 팬덤을 단순 관람객 → 창작자 → 참여자 → 전시자로 확장시켜 놀이공원을 팬덤 경험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춘천 레고랜드는 이런 “팬덤 참여 구조” 자체가 부재했기에 팬덤과 단절된 채 일반 놀이공원으로만 소비된 것이죠.


가성비도 형편없습니다. 성인 6만 5천 원, 아이 5만 5천 원으로 가족이 가면 12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지만, 하루 종일 머물 만한 콘텐츠가 부족합니다. 이 돈이면 크리에이터 3-in-1 시리즈 세트 하나를 살 수 있고, 며칠간 조립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죠. 주차비까지 별도로 받으니 실질적인 비용은 더 올라갑니다. 진짜 레고 팬이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레고 세트를 사서 집에서 조립하는 게 훨씬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실제로 레고 커뮤니티에서는 "레고랜드 갈 돈으로 신상 세트 사는 게 낫다"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결국 춘천 레고랜드는 '레고'라는 브랜드는 빌려왔지만, 정작 레고의 정신과 철학은 전혀 담지 못한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레고의 핵심 가치인 창조성, 학습, 재미, 품질을 추구하는 대신, 단순한 놀이공원으로 전락해 버린 거죠.


“팬덤은 브랜드를 좋아하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이 항상 모든 상품을 사게 만드는 건 아니다.”


브랜드가 팬덤을 잘 활용하려면, 팬들이 진짜 좋아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팬심이 소비로 이어집니다. 레고랜드 춘천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도 같은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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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도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국제적으로 극찬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관객 수 227만 명으로 기대에 못 미쳤죠. 개봉 전 업계 예상치는 500만 명이었는데, 절반에도 못 미친 결과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미 '올드보이', '아가씨' 등으로 열렬한 팬층을 보유한 감독입니다. 그의 팬들은 스타일리시한 폭력 미학, 독특한 색감과 구도, 예측 불가능한 반전, 그리고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기대합니다. 복수 3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아가씨'에서는 탐미적인 영상미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죠. 팬들에게 박찬욱은 '안전하지 않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기존 팬들이 기대했던 강렬하고 자극적인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 절제되고 우아한 멜로드라마였습니다. 폭력적인 장면은 거의 없고, 대신 시선의 교차와 미묘한 감정 변화에 집중했죠. 팬들은 박찬욱표 스릴러를 기대했지만, 정작 나온 건 섬세한 감정 드라마였던 거예요. 마치 매운 떡볶이를 기대하고 갔는데 담백한 우동이 나온 격이었습니다.


실제로 영화 커뮤니티에서는 "박찬욱 감독 맞나?", "너무 밋밋하다", "기대와 다르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나 연출력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었지만, '박찬욱다움'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죠. 이럴 때 팬들은 '응원'하고픈 마음은 있지만 ‘추천’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반면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처럼 선입견 없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는 레고랜드와 정확히 같은 문제입니다. 브랜드의 기존 정체성과 팬들의 기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든 결과입니다. 레고 팬들은 창작의 자유, 무한한 가능성, 상상력의 구현을 기대했는데, 정작 주어진 건 정해진 틀 안에서의 수동적 체험이었죠. 박찬욱 팬들이 자극적인 스릴러를 기대했듯, 레고 팬들은 능동적인 창작 경험을 원했던 겁니다.


더 흥미로운 건, 두 사례 모두 '해외에서는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칸에서 호평받았고, 레고랜드도 해외에서는 대부분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거든요. 이는 각 지역 팬덤의 특성과 기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박찬욱 팬들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고, 한국의 레고 팬들은 더 깊이 있는 창작 경험을 원했던 거죠.


물론 작품의 질은 훌륭했지만, 팬들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거예요. 이는 창작자나 기업이 자신의 비전에만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수요자인 팬들의 목소리를 놓쳤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브랜드 파워만으로는 팬들의 실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죠. 결국 팬덤은 일방적인 충성이 아니라, 브랜드와 팬 사이의 상호 이해와 소통에 기반한 관계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팬들을 수동적 관람객에서 능동적 창작자로 : 팬덤은 협업의 파트너


결국 핵심은 팬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춘천 레고랜드는 팬들을 단순한 '관람객'으로만 취급했습니다. 미리 만들어진 전시물을 구경하고, 정해진 놀이기구를 타는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본 거죠. 마치 박물관에서 "만지지 마세요" 팻말 앞에 서있는 관람객처럼 말이에요. 이는 레고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인 "놀이를 통한 학습"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접근법입니다.


반면 글로벌 레고는 팬들을 '공동 창작자'로 대우합니다. LEGO IDEAS 프로그램을 보면, 21세와 22세 대학생이 제안한 BTS 다이너마이트 세트가 실제 출시되었고, 41세 직장인이 제안한 더 오피스 세트도 상품화되었죠. 심지어 홍콩 출신 25세 의대 박사가 제안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세트까지 나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진짜로 팬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그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레고 공인 작가 제도, 팬 커뮤니티 운영 등을 통해 팬들이 직접 브랜드 발전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팬들의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이 되고, 그들의 작품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시스템을 만든 거죠.


이런 차이는 수익 모델에서도 드러납니다. 춘천 레고랜드는 일회성 입장료에 의존하는 반면, 글로벌 레고는 팬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평생 고객을 만들어냅니다. 한 번 레고 팬이 되면 새로운 세트가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녀에게 레고를 물려주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거죠.


이제는 팬덤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주어진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팬들과의 협업의 접점을 기획해야 합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발전에 직접 기여하고 싶어 하고, 그들의 창작 욕구를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BTS 팬들이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팬아트, 팬픽션, 자체 프로젝트까지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아미들은 BTS의 자선 활동에 동참하고, 멤버들의 생일에 맞춰 전 세계적으로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팬덤의 모습입니다.


요즘의 팬덤 문화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마블 팬들은 MCU 이론을 세우고 예측하며, 닌텐도 팬들은 게임 MOD를 만들고, 스타벅스 마니아들은 숨겨진 메뉴를 개발해서 공유합니다. 모든 성공한 브랜드 뒤에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팬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반면 실패하는 브랜드들은 팬들을 단순한 '지갑'으로만 여기죠.


춘천 레고랜드가 진정한 성공을 원한다면, 이제라도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팬들이 직접 레고 작품을 만들고 전시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스페이스', 매월 새로운 빌딩 챌린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레고 마스터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워크숍이 필요해요. 또한 한국 팬들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글로벌 레고 본사에 제안할 수 있는 '코리아 IDEAS'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합니다. 성인 마니아들을 위한 고급 콘텐츠로는 리미티드 에디션 세트의 선행 체험, 유명 건축물의 레고 버전 제작 과정 참여, 심지어 자신만의 커스텀 미니피규어를 만드는 서비스까지 가능하겠죠.


더 나아가 지역 특색을 살린 콘텐츠도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춘천의 닭갈비를 레고로 만드는 체험, 강원도 명소를 레고로 재현하는 프로젝트, 한국 전통 건축물의 레고 버전 등 말이에요. 이런 콘텐츠들은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큰 어필이 될 수 있습니다.


팬들을 단순한 고객이 아닌,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의 파트너로 대우할 때 비로소 진정한 팬덤의 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레고랜드는 일회성 방문지가 아닌, 계속 돌아오고 싶은 '성지'가 될 수 있겠죠.


결국 레고랜드의 실패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라도, 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요. 더 나아가 이는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고객을 단순한 소비자로 보는 순간, 그들은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한 파트너로 대우한다면, 그들은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최근 춘천 레고랜드가 새 단장을 하고 본격적으로 재도약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국내 레고 팬, 레고 마니아들의 성지가 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이제 저는 한동안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질문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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