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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이제 중도는 없다

새로운 시장 규칙에서 브랜드가 생존하는 법

by 박찬우

2023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격화되자 스타벅스 노조는 소셜미디어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스타벅스 본사는 당황했습니다. 이 게시물이 회사의 공식 입장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본사는 노조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회사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송이 예상치 못한 폭풍을 불러왔습니다. 소비자들은 "스타벅스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직원들을 탄압하고 고소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순식간에 '스타벅스 = 친이스라엘'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불매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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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타벅스 공식 홈페이지 https://about.starbucks.com

스타벅스는 필사적으로 해명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정부나 군대에도 자금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중립입니다", "심지어 2003년에 이스라엘에서 이미 철수했고 현재 매장도 없습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진짜로 중립을 지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해명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2024년 1분기부터 스타벅스는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 하락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매출이 급감했고, 가맹점 운영사인 알샤야 그룹은 2,000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불매운동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2025년 8월 보도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급감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중립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극화된 세상에서 중립은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한쪽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해명은 무력했고, 재정적 타격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중도는 없습니다.


'우리' 아니면 '적' : 세상이 둘로 쪼개지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세계는 단순한 정책적 대립을 넘어선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글로벌 자문사 윌리스(Willis)가 2025년 6월 발표한 정치 위험 지수(Political Risk Index)는 전 세계의 '정서적 양극화' 평균이 역사적 최고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는 합리적 토론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이제 유권자들은 상대방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 '집단' 자체를 정서적으로 혐오하고 신뢰하지 않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더 이상 특정한 한 국가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2025년 유럽은 중도 정당의 몰락과 극단주의의 부상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인플레이션과 이민 문제 해결에 실패한 중도 연립정부에 대한 환멸이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극우 정당인 자유당(FPO)의 헤르베르트 키클 대표에게 공식적으로 정부 구성을 요청했습니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의 중도 좌파 연립정부는 끊임없는 내분과 정책 불협화음으로 대중의 신뢰를 상실했으며, 조기 선거가 임박한 상황입니다. 이 정치적 공백을 파고든 것은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입니다. AfD는 현재 제2야당의 지위를 공고히 하며 독일 주류 정치의 일원이 되고 있습니다.


2024년 미국 대선은 이 현상이 더 이상 '정책 대결'이 아님을 명확히 증명했습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2024년 2월 여론조사는 이 분열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미국 유권자는 "세상은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서로를 포용해야 한다"(45%)는 세계관과, "우리의 삶은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법 이민자들에게 위협받고 있으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42%)는 세계관으로 완벽히 양분되었습니다.


이는 2025년의 양극화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정책 논쟁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전쟁임을 시사합니다. 시장 자체가 '세계관'을 기준으로 분열된 이상, 브랜드 역시 이 정체성 전쟁에서 자신의 위치를 강요받게 됩니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나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가'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았는가: 양극화의 근본적 원인


양극화의 원인으로 흔히 소셜 미디어의 '필터 버블'이나 '에코 체임버'가 지목되지만, 데이터는 더 복잡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스탠퍼드대학과 브라운대학이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발표한 공동 연구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인의 정치 양극화 지수를 분석했는데, 결과는 통념과 정반대였습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사용률이 가장 낮은 75세 이상 노년층에서 양극화가 0.38포인트 상승한 반면, 가장 사용률이 높은 18~39세 젊은 층은 0.05포인트만 상승했습니다. 연구진은 "디지털 미디어가 조금 역할은 했겠지만,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큰 변화의 주범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연구진이 지목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 불평등입니다. 연구의 공저자 매슈 젠츠코는 "소득 불평등 확대와 같은 구조적인 요인"을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이는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정치적 분노의 자양분이 됩니다. 노동 시장의 불평등, 과도한 학벌 사회, 부족한 사회 안전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두 번째 핵심 원인은 케이블 텔레비전과 라디오 토크쇼 같은 비디지털 미디어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자의 40%가 폭스 뉴스에서 뉴스를 얻은 반면,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는 3%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 당파 미디어는 특히 노년층을 타깃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이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양극화의 '시작점'은 그보다 더 깊은 사회경제적, 문화적 토대(불평등, 비디지털 당파 미디어 등)에 있습니다. 이는 양극화가 일시적 기술적 유행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토대에 깊이 뿌리 박힌 뉴 노멀임을 의미합니다.


브랜드가 맞게 된 새로운 위기


Unilever, Nestlé, P&G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쟁에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러시아 내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는 명확한 입장 부재로 글로벌 보이콧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세 브랜드 모두 "인도주의적 생필품 공급"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침묵하거나 절반만 행동하는 것은 어느 쪽에도 신뢰를 주지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을 '전쟁 스폰서' 목록에 공식 등록했고, 전 세계 소비자들이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Boycott 해시태그가 수백만 회 공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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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2022년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멸공' 해시태그를 달았다가 폭력 선동으로 게시물이 삭제되었습니다. 그는 "멸공은 북한을 향한 것이며 중국과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계열사 주가 하락, 소비자 불매운동 조짐, 이마트 노조의 비판에 직면하며 결국 사과문을 게재해야 했습니다.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여파가 수만 명의 신세계, 이마트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미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당부했습니다. 신세계그룹 주가는 전월 대비 11.12% 감소했고, 이후에도 정 부회장이 '멸공'을 연상시키는 게시물을 반복적으로 올리며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극단적 양극화는 기업과 브랜드에게 전례 없는 도전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중도,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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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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