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에서 관점으로, 떠오름의 기록
왜 이 순간, 이게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와이프와 함께 목적 없이 걷는 산책을 즐깁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거리, 공원을 걷다 보면 무언가가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곤 내뱉는 혼잣말입니다.
어느 날 오후, 동네 골목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섰습니다. 곱창 가게 유리창에 붙은 공지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가끔 볼 법한 영업정지 공지였지만, 그날 유독 그 문장이 제 머릿속에 꽂혔습니다. '병맛'이란 의미는 이렇게 전달되는구나. '웃프다'의 느낌을 설면할 수 없었는데, 이 사장님의 공지 덕분에 제 머리에 떠올랐죠.
또 한 번은 돈가스를 먹으러 합정의 한 가게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한쪽 벽에 걸린 화장실 안내 사진이 눈길을 끌어 다가가 보았습니다. 'Ding!' 순간, UX에 대한 생각과 다른 아이디어가 연결되어 떠올랐습니다.
책을 읽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심지어 장을 보다가도 불현듯 '이거다!' 싶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슈퍼마켓 진열대 앞에서 경쟁 브랜드들의 포지셔닝 차이를 발견하거나, 드라마 속 PPL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아든 방식에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들은 계획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가, 제 감각의 어떤 지점이 건드려질 때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마치 잔잔한 물 위로 떠오르는 기포처럼, 예고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흥미로운 건, 이렇게 떠오른 순간들이 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하필 저 카피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까?"
"저 브랜드는 왜 하필 저런 색을 선택했을까?"
"이 장면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 걸까?"
직관적 호기심이 분석으로 이어지고, 분석은 다시 더 깊은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는 노트를 펼치고 있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고,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진 생각들이 하나의 관점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제가 일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마케터이자 브랜드 전략가로서, 저는 늘 세상을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의심하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려 합니다. 그래야 남들이 보지 못한 틈새를, 아무도 짚지 않은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써온 브런치북 시리즈들은, 사실 이런 '떠오름'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는 것을요. 완성된 프레임워크 뒤에는, 그걸 만들어낸 수없이 많은 관찰과 직관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자체를, 그 '떠오름'의 과정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요?
이 연재 <떠오르다>는 그래서 시작됩니다.
거창한 담론도, 완벽한 체계도 아닙니다. 그저 요즘 제가 꽂힌 것들에 대한 솔직한 기록입니다. 낯선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의외의 뉴스가 될 수도 있고, 새롭게 공부하는 분야에서의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볍게 지나칠 법한 일상의 장면일 수도 있고, 때로는 조금 진지한 사회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저를 멈추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멈춤의 순간에 제가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마케터의 시선으로 포착하되, 딱딱한 분석보다는 생생한 관찰을 담을 겁니다. 행간을 읽되,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겁니다. 인사이트로 끝맺되, 정답을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이 연재는 어쩌면 제게도 일종의 실험입니다. 완결된 결론으로 향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를 보여주는 글쓰기. 날것의 호기심과 직관이 어떻게 관점으로 익어가는지, 그 여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우리는 도파민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콘텐츠, 자극적인 헤드라인,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트렌드들. 그 속도와 자극에 익숙해지다 보면, 정작 진짜 중요한 것들은 그냥 흘려보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멈추려 합니다. 내 발걸음을, 내 스크롤을, 내 생각을 멈추게 만든 것들에 주목하려 합니다. 그게 비록 작고 사소해 보일지라도, 분명 거기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께도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제 글을 읽다가, 혹은 글에서 소개된 어떤 것을 보다가, 혹은 전혀 다른 일상의 장면에서 문득 "아, 이거!"라는 순간이 떠오르기를.
그리고 그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를.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왜 이게 나를 멈추게 했는지 생각해 보기를. 그 작은 호기심이 어쩌면 여러분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예리한 인사이트로, 때로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시작합니다.
요즘 저를 사로잡은 '진짜' 이야기들.
흩어진 영감들이 날카로운 관점이 되어가는 과정.
함께 떠올라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