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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비오 May 19. 2020

베일에 싸인 하우스 메이트

세상에 완벽한 집은 없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오니 모든 게 좋았다. 무엇보다 지하철을 갈아탈 필요 없이 버스를 타고 한 번에 학교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 아주 좋았다. 같이 사는 친구들도 모두 착했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이사한 지 이틀이 지났는데 그 호세라는 친구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어떤 친구일지 정말 궁금했다. 이사한 지 삼 일째, 다음 날 일찍 수업이 있어서 일찍 잠들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 시간에 싸우나... 잠결에 들어서 어디에서 들려온 소리인지도 몰랐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바로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호세가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올라!" 반갑게 인사하니 무표정의 이 친구는 나지막이 "올라"라고 짧게 인사만 하고 계속해서 요리를 했다. '아... 낯을 가리는 친구구나' 내 방으로 돌아오니 페이스북 메신저가 울렸다. 바로 옆방에 있는 다비드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너 혹시 어젯밤에 시끄러운 소리 들었어?"

"오, 너도? 아... 꿈이 아니었구나. 누가 막 싸우던데."

"그거 어제 나였어. 호세랑 싸웠어."

"어, 왜?"

"나중에 쟤 나가면 이야기해줄게."


오늘도 평화로운 우리 집


밤중에 들었던 싸움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다비드와 호세였다. 베란다 쪽에서 소리가 들려서 나는 바깥쪽에서 다른 사람이 싸운 걸로 착각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둘의 사이는 처음부터 나빴다고 한다. 우리가 있는 집은 약 한 달 전에 다비드가 맨 처음 입주하면서 사람들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호세가 들어왔고 그다음에 리우가 들어왔다. 이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비드와 호세는 수차례 다퉜다고 한다.


"호세 쟤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다비드가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르며 말했다. '에이... 설마.' 호세에 대한 첫인상은 물론 좋지 않았지만, 그냥 수줍음이 많은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그 생각은 그날 밤 바로 바뀌었다. 밤 11시, 인스타그램이라는 새로운 어플을 추천받아서 계정을 만들고 있는데, 부엌에서 호세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다비드하고 같이 나가보니 호세가 리우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리우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데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는 것이 호세가 그렇게 화를 낸 이유였다.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전혀 못 들었는데, 호세는 귀가 참 밝은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참 예민한 친구구나.


내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면 호세는 항상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에게 말한다. "이봐 플라비오, 샤워하고 나올 땐 바닥 물기를 좀 닦으라고." 요리를 끝내고 방에 들어가서 식사하려고 하면 호세는 부엌으로 들어와서 하는 말. "플라비오, 프라이팬 설거지 좀 해. 나 써야 돼." 그럼 나는 요리를 한 후에 설거지를 먼저 깨끗이 해놓고 밥을 먹었다. 한국인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면 먼저 호세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집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괜히 친구들을 불렀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집에 있으면서 호세 눈치를 보는 일이 늘었고, 그런 사람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하긴 했으나 웬만하면 트러블을 일으키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냥 매사에 예민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기분도 맞춰주고, 아무리 예민하게 굴어도 그냥 넘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호세가 나에게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거는 경우도 있었다. 리우나 다비드한테는 전혀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저 이 친구가 우리하고 잘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랐다. 


매일 밤 들려오는 귀신의 울음소리


그런데 이 친구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밤 12시만 되면 거실에서 흐느끼며 우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일 밤 우리가 다 들을 만큼 흐느껴 울었다. 그 와중에 리우가 부엌에서 소리를 내면 호세는 폭발했다. 이것이 악순환이 되어 결국 리우는 집을 떠났다. 정말 착한 친구였는데... 안타까웠다. 그 시점에 다비드가 한 말이 떠올랐다. "호세 쟤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호세는 단순히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 상담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집주인 아저씨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여태까지 다비드와 리우가 호세와 심하게 다툰 것부터 리우가 집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 밤만 되면 온 집에 울려 퍼지는 호세의 울음소리. 집주인 아저씨는 알겠다고 하며 호세와 대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호세가 집을 파손하거나 월세를 미납하는 등의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호세를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호세는 낮에 보통 방 안에 조용히 있거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우리하고 이야기만 안 할 뿐이지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 밤만 되면 사람이 예민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우리한테 폭력을 가하거나, 집안 물건을 훼손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일단은 그렇게 호세가 스스로 나가길 바라면서 우리끼리 버텨나가기로 했다. 


힘든 시간에 의지를 많이 한 친구, 다비드.


호세가 집 안에서 예민하게 구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눈치 보는 건 누구보다 잘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보다는 이 친구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집안에 감도는 게 싫었다. 다비드와 호세가 다투는 일도 점점 잦아졌고, 한 번은 다비드가 본인이 나가고 싶다고까지 했다. 나는 어떻게든 뜯어말렸고, 가끔 바에 가서 한 잔씩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곤 했다. 그렇게 약 한 달 정도 더 지나 포르투갈 여행에서 돌아오니 다비드가 즐거운 표정으로 맞아줬다. 

"기쁜 소식 하나. 호세가... 드디어 나갔다!!!"


우리 호세 어디갔니?


"뭐...?"

호세가 집주인 아저씨한테 연락해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다비드도 고향에서 그날 돌아왔는데 집주인한테서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믿지 못한 우리는 베란다 쪽으로 가서 호세의 방 창문을 들여다봤다. 창문을 열고 외쳤다. "호세! 나와 봐 호세! 선물 사 왔어!"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순간 우리는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진짜 내 집처럼 살아도 되겠구나.'


다비드하고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꽤 됐지만, 몇 년 전까지 가끔 연락할 때 우스갯소리로 호세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호세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 '힘든 시간'을 추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것 또한 이제는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무서웠지만, 호세로 인해 왠지 앞으로 어떤 하우스 메이트를 만나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들게 됐다. 유학 생활에 있어서 마음에 쏙 들고, 제대로 된 집을 구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보통 그것 또한 운이라고 하는데, 나와 다비드는 그 약 2개월의 시간 동안 참고 견디면서 그 운을 쟁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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