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이웃 나라 포르투갈
학기가 시작되었고, 집 문제도 깔끔히 해결됐다. 이제 다른 걱정 없이 스페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하고 배우는 일만 남았다. 대학교 강의는 따라가기 전혀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진도를 놓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수업 녹음도 하고 녹음한 것을 들으며 복습도 했지만, 시간만 오래 걸리고 큰 효과가 없었다. 무엇보다 몇 시간 짜리 수업 녹음 파일을 듣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필기한 내용과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유인물을 바탕으로 공부했다. 중요한 부분을 위주로 복습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자 수업의 큰 틀을 따라가는 선에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활절 성주간 : 작은 봄 방학
3월 말 부활절 성주간이 되자, 약 2주간의 작은 방학이 시작됐다. 이때를 이용하여 대학교 동기와 함께 포르투갈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포르투갈은 예전부터 정말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나는 어렸을 때 브라질에서 살았기 때문에 포르투갈어를 조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 포르투갈어 실력이 어느 정도 저하됐는지(?) 알아보고 싶었고, 또 포르투갈에서 쓰는 포르투갈어를 과연 내가 이해할 수 있을 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포르투갈이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무척 궁금했다.
약 일주일 일정으로 포르투갈로 떠났다. 부활절 주간인데도 불구하고 비행기 표 값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이게 바로 유럽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저가 항공편이 많아서 저렴한 가격으로 주변 나라에 쉽게 갈 수 있다. 먼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향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가깝지만 먼 나라?
익숙한 포르투갈어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게다가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스페인어만 알아도 포르투갈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 대화하는 건 별개 문제지만...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약 8년 만에 포르투갈어를 하려고 보니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난감했지만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에는 성공했다. 신기한 건, 호텔 직원이 영어는 잘하는데 스페인어는 전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붙어 있는 나라인데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페인 내에서도 포르투갈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공부했던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만 해도 언어학으로는 스페인 최고 대학 중에 하나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어 학과 하나 없었다. 포르투갈어 수업은 교양 강의 몇 개만 있었을 뿐... 주변 국가의 언어인 중국어와 일본어를 많이 배우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포르투갈어로 이야기하니, 호텔 직원이 갑자기 물어봤다. "너 마카오 사람이니?" 아시아인이 포르투갈어를 하니 마카오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그걸 보고 같이 간 내 동기 녀석이 두고두고 나를 놀렸다.
리스본 거리를 거닐다
짐을 풀고 리스본 거리로 나왔다. 호씨우 광장(Praça do Rossio)을 중심으로 둘러보니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미로 같은 좁은 길들이 보였다. 오래된 건물들은 유럽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리스본은 여느 유럽보다 더욱 고풍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낡은 건물들이 많이 보였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건물과 거리 사진을 찍고 그 유명한 리스본 28번 트램을 먼저 탔다. 28번 트램은 리스본에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는 트램인데, 주요 관광 명소를 다니기 때문이다. 먼저 트램으로 리스본 시내를 둘러보고, 벨렘(Belém) 지구로 향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 기념비, 벨렘 탑에서 사진을 찍고, 타주(Tajo) 강을 구경했다. 그리고 우리가 벨렘 지구에 온 진짜 이유, 벨렘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갔다. 유명 맛집이라서 그런지 줄이 길게 서 있었다. 한 20분쯤 기다렸다가 사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냥 맛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산타 주스타(Santa Justa) 엘리베이터 주변에 있는 한 슈하스카리아(Churrascaria : 브라질식 고기 뷔페)에서 브라질 향수를 느끼며 고기를 먹고, 야경을 보러 전망대로 향했다. 우리는 그라싸 전망대(Miradouro da Graça)에서 경치를 만끽했다. 리스본의 야경을 보며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사진으로 이 경치를 제대로 다 못 담는다는 게 정말 아쉽다." 이 야경을 또 보기 위해 리스본에 더 자주 오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가 본 곳에서 정을 느끼다. 신트라(Sintra)
다음 날 우리는 리스본 근교 도시 신트라로 향했다. 기차로 약 한 시간쯤 걸려서 도착한 신트라는 페나 궁전(Palácio da Pena)으로 유명한 곳이다. 번역하면 궁전이지만 성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산 위에 높게 솟아 있다. 페나 궁전에 가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도 되지만,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페나 공원을 산책하며 올라가기로 했다. 오르막길이라 올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 그 즘에 막 데뷔한 버스커 버스커 노래를 들으며 올라갔다. '아이고 힘들다' 이쯤 되면 거의 다 왔겠지. 고개를 들었는데, 눈 앞에 동화 속 궁전이 서 있었다. 18세기 대지진으로 무너진 수도원 폐허에 건축한 페나 궁전은 알록달록한 색과 무어, 고딕, 마누엘,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담고 있다. 페나 궁전 입구에 게양되어 있는 포르투갈 국기가 '너는 동화 속이 아니라 나의 나라 포르투갈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페나 궁전의 진짜 매력은 페나 궁전에서 내려다보는 신트라 주변 경치다. 타주(Tajo) 강이 보이는 건 물론이거니와 주변 공원의 경치 역시 매우 아름답다. 탁 트인 경치를 보고 있자면, 감동이 밀려온다.
페나 궁전에서 나와서 다시 페나 공원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한 자동차가 오는 게 보였다. "한번 태워달라고 해볼까?" 우리는 차에 손짓했다. 뭐, 안 태워줘도 그만, 태워주면 땡큐 아닌가. 차가 멈췄다. 현지인 아주머니였다. 우리한테 영어로 "밑으로 내려가니?"라고 했다. 내가 포르투갈어로 "네, 좀 태워줄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눈이 동그래지면서 타라고 손짓했다. 포르투갈에서 포르투갈 현지인 차도 타보다니. 낯선 동양인 둘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차에 태운 아주머니께 정말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기차역까지 오는 길에 신트라에 대 설명해 주셨고, 그 시간에 리스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기차가 몇 시에 출발하는지까지도 직접 전화를 걸어 알려주셨다. 우리를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포르투갈 정말 아름다운 나라니까 또 와. 반가웠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일도 아니지만, 그때 느꼈다. 이 곳에도 정이라는 게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