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수많은 음식들 중에 가장 먼저 무엇을 소개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스페인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스페인 사람들과 외국인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고른 음식이 바로 Tortilla(또르띠야)다. 참고로 멕시코 음식인 타코나 부리또에 싸 먹는 옥수수 반죽인 '또르띠야'와 이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스페인의 또르띠야는 스페니쉬 오믈렛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다. 먼저 또르띠야에 대한 간략한 정보부터 살펴보자.
★ 오늘의 음식: Tortilla(또르띠야)
★ 한줄평: 크리미 한 계란 노른자가 비리지도 않고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 주요 재료: 계란, 감자, 양파 +@(식당/가정 마음대로 소세지, 생선, 각종 야채 등 추가)
★ 가격대: 보통 1조각에 2~5유로 사이
★ 추천 식당/주소:
1. Casa Dani(마드리드) / Cl. de Ayala, 28, Salamanca, 28001 Madrid
2. Cañadio(산탄데르) / C. Gómez Oreña, 15, 39003 Santander, Cantabria
이 음식은 간단하면서도 포만감이 들고, 맛과 영양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처음 스페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또르띠야를 먹어봤을 때는 그냥 감자가 들어간 계란 부침개를 먹는 느낌이었다. 맛도 없고 퍽퍽해서 이게 왜 스페인 대표 요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페인 밖에서 먹는 또르띠야는 대부분이 가짜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또르띠야 중독자이다. 1주일에 또르띠야를 1번 이상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스페인 내에서도 또르띠야는 아무 데서나 먹으면 맛이 없다. 구글 리뷰에 스페인 사람들이 사진과 함께 남긴 코멘트를 잘 읽어보고, 또르띠야를 잘하는 집에서 먹으면 혼자 2조각도 거뜬히 먹을 수 있다. 참고로 또르띠야 1조각을 먹으려면 Pincho de Tortilla(핀초 데 또르띠야)를 주문해야 한다. 서빙하는 사람이 되묻긴 하겠지만, 그냥 Tortilla를 시키면 작은 피자 1판 사이즈만 한 또르띠야가 나올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또르띠야의 맛을 결정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식감이다. 스페인에서 또르띠야에 관한 가장 뜨거운 논쟁이 계란을 완숙으로 익혀 단단하게 먹느냐, 반숙으로 익혀 촉촉하게 먹느냐이다. 프라이팬에 또르띠야를 완전히 익히면 계란과 감자가 바싹 익게 되어 퍽퍽한 식감을 보인다. 반대로, 완전히 익힌 감자를 넣고 계란을 적당히 익히면 크리미 한 식감의 반숙 또르띠야가 완성된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식감도 다 다르다. 내 기준으로는 반숙으로 된 또르띠야가 훨씬 더 맛있지만, 한국인 지인은 덜 익은 계란의 비린맛을 싫어해서 바싹 익힌 완숙 또르띠야를 더 좋아한다.
지난해 또르띠야 완숙/반숙 논란에 대해 현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탕수육 부먹이냐 찍먹이냐 정도의 논쟁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슐랭 셰프, 음식 연구가 등 여러 전문가가 나와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재밌었다. 작년 또르띠야 완숙파 vs 반숙파 논쟁은 'Casa Dani'라는 식당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2019년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열린 '제2회 스페인 전국 또르띠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Casa Dani는 마드리드 Mercado de la Paz 시장 한편에 위치하고 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던 식당이 전국 최고의 또르띠야 맛집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시장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 식당은 모든 식재료를 식당이 위치한 시장에서 조달하여 신선한 재료를 통해 맛있게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1월, Casa Dani 또르띠야에서 발생한 식중독 사건이 스페인 전역을 흔들어 놓았다. 살모넬라균에 의해 발생한 식중독으로 최소 100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이때, 스페인 언론과 대중은 '또르띠야는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한다!'라는 완숙 옹호자들의 의견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사건 발생 후 Casa Dani는 즉각 문을 닫았고, 보건 당국과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 협력했다. 피해를 입은 고객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논란을 빠르게 종식시켰고,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3년 4월에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나의 또르띠야 단골집이었던 Casa Dani가 3개월 동안 문을 닫는 바람에 마드리드의 다른 식당들에서 또르띠야를 먹어보았지만, 이 집 또르띠야만 한 것이 없었다. 요즘엔 식중독 사건 이후 Casa Dani가 조금 더 위생적으로 또르띠야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오히려 맘 놓고 많이 먹어도 될 것만 같은 안도감이 든다.
Casa Dani 또르띠야는 반숙 버전이다. 반숙인데도 달걀 비린내가 나지 않고 짭조름한 맛이 특징인데, 아마도 짠맛을 내는 특별한 육수를 사용하는 것 같다. 나는 요리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이지만, 단순히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것 같은 느낌은 확실히 아니다. 참고로 이곳 또르띠야에는 캐러멜라이즈드 된 양파가 들어간다.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달달한 양파가 들어간 이곳의 또르띠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다. 양파가 또르띠야에 들어가는지 마는지도 반숙/완숙 논란처럼 핵심 논쟁거리이다. 그래서 Casa Dani 뿐만 아니고 다른 식당들에서 Tortilla를 주문하면 양파를 넣을 건지 말건지 물어볼 때도 종종 있다. 단짠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에는 아마도 캐러멜라이즈드 된 양파가 들어간 또르띠야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짐작해 본다.
또르띠야는 아침, 점심, 저녁 언제 어디서나 스페인 사람들과 관광객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소울푸드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침 식사로 또르띠야를 먹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른 아침, 낯선 스페인의 도시를 천천히 산책하고 나서 또르띠야와 바게트 한 조각에 곁들여 Cafe con leche(밀크커피)를 먹어보라. 그 여행지가 어디든 간에 기분 좋은 하루를 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