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대표 해산물 재료인 Chipirón(치삐론)은 스페인어로 '작은 오징어'를 의미한다. 이 귀여운 작은 오징어는 스페인에서 간단한 음식부터 정교한 음식까지 폭넓게 활용되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참고로 Chipirón(치삐론)은 미니 오징어 1개를 뜻하는 단수 명사이고, Chipirones(치삐로네스)는 '미니 오징어들'을 뜻하는 복수 명사이다. 식당에는 4마리 이상의 미니 오징어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보통 식당 메뉴판에는 모두 Chipirones(치삐로네스)라고 적혀있다. 한국인이라면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는 이 미니 오징어 '치삐로네스' 요리에 대해 알아보자.
★ 주요 메뉴: Chipirones a la plancha(치삐로네스 아 라 쁠라차/미니 오징어 구이), Chipirones fritos(치삐로네스 프리또스/미니 오징어 튀김)
★ 한줄평: 작지만 치명적인 맛을 뽐내는 귀여운 녀석
★ 조리 방식: 그릴, 튀김, 오븐 구이, 먹물 요리 등
★ 가격대: 보통 12유로~20유로 사이
★ 추천 식당/주소:
1. LA MARUCA(마드리드) / C. de Velázquez, 54, Salamanca, 28001 Madrid
2. Café Bar Bilbao(빌바오) / Pl. Nueva, 6, Ibaiondo, 48005 Bilbao
치삐로네스는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활용되는 식재료이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도 식재료로 활용하지만, 그중에서도 스페인에서 미니 오징어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칸타브리아 등 스페인 북부 지역에 위치한 주(州)에서 특히 소비가 많이 되는 식재료이다. 이 지역은 바다 옆에 위치하여 어업이 발달해 있고, 언제든 신선한 오징어를 수확하여 바로 요리를 할 수 있다. 자연스레 이곳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싱싱한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를 즐겨 먹었고, 치삐론도 그중 하나였다. 요즘엔 스페인 전국 어디서든 맛있는 치삐로네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미니 오징어의 크기는 일반적인 오징어와 주꾸미 사이의 크기 정도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봤을 땐 8cm~10cm 사이 정도다. 식감은 보통 오징어 보다 훨씬 부드럽고, 일반 오징어처럼 질기지 않아 어린이나 치아가 좋지 않은 노인들도 잘 드실 수 있다. 식감이 부드러운 대신, 오징어 특유의 쫄깃하고 씹는 맛은 조금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미니 오징어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조리 시 칼로 썰지 않고 통째로 요리를 한다. 만약 손질을 한다면 몸통과 다리를 분해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미니 오징어 특유의 육즙과 바다향이 음식에 그대로 보존되어, 신선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녀석은 일반 오징어와 비교했을 때 짠맛이 덜하고 오히려 단맛이 약간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미니 오징어로 어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까? 대표적인 요리로 Chipirones a la plancha(치삐로네스 아 라 쁠라차/미니 오징어 구이), Chipirones fritos(치삐로네스 프리또스/미니 오징어 튀김)을 소개하고 싶다. 미니 오징어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도 있지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맛있는 요리를 소개하겠다.
음식을 대충 보면 알겠지만, 이걸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이게 귀여운 미니 오징어 치삐로네스의 매력이다. 과거 FC바르셀로나 축구팀을 지휘했던 바비 롭슨 감독은 브라질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에 대해 '호나우두가 전술이다'라고 말했다. 에이스 호나우두만 있으면, 축구 전술이고 뭐고 필요 없을 정도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치삐로네스도 그렇다. 작고 귀여운 이 녀석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공들여 요리하지 않고 슥슥 굽거나 튀기기만 해도 맛있는 음식이 탄생한다. 화려한 요리 기교 보다 원재료의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인 것이다.
첫 번째 음식은 치삐로네스 아 라 플란차는 '미니 오징어 구이'다. 내장, 연골, 먹주머니를 제거한 Chipirones를 뜨거운 그릴에 올려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을 뿌려 굽는다. 마늘을 구운 올리브 오일에 구워서 마늘 향도 살짝 나기 때문에 한국인 입맛에 제격이다. 미니 오징어의 신선한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뜨거운 그릴 팬에 조리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겉은 뜨겁게 익어 아주 살짝 질기면서도, 속은 탱탱하여 재밌는 식감을 만들어 낸다.
식당마다 미니 오징어 구이와 곁들여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낸다. 기본적으로 레몬, 파슬리를 다져서 만든 소스, 빵 등이 같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 중 하나인 마드리드의 'La Maruca' 식당은 미니 오징어 구이에 오징어 먹물로 만든 면을 곁들여 고급스러운 요리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 음식은 미니 오징어 튀김, 치삐로네스 프리토스다. 이 음식은 우리가 아는 한국의 오징어 튀김과 유사하지만, 밀가루를 얇게 묻혀 튀기는 것이 포인트다. 보통 스페인 음식은 한국인이 느끼기에 조금 짤 수 있다. 이 미니 오징어 튀김도 짠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좋다. 왜냐하면 시원한 맥주와 곁들여 먹으면 환상의 콜라보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갓 튀겨서 나온 뜨거운 미니 오징어 튀김에 레몬을 살짝 뿌리고, 알리올리(Alioli) 소스와 곁들여 먹으면 정말 맛있다. 알리올리는 마늘과 올리브유, 계란 노른자 등으로 만드는 소스, 마요네즈에 마늘을 섞은 고소한 맛이 난다. 만약 알리올리 소스가 없으면 종업원에게 요청하면 바로 가져다줄 것이다.
한편, 스페인에는 일반적인 크기의 오징어 튀김 요리도 있다. 메뉴판에 영어가 없는 경우에는 오징어링 튀김인 깔라마레스 아 라 로마나(Calamares a la Romana), 오징어를 길게 썰어서 튀기는 라바스 데 깔라마르(Rabas de Calamar) 2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오징어링 튀김 깔라마레스 아 라 로마나는 두껍고 바삭하게 하여, 쫄깃쫄깃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징어링 튀김 모양과 똑같고, 식당마다 맛은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 짜게 튀기지 않아서 한국인에게 좀 더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라바스는 튀김옷이 얇아 오징어 고유의 맛이 더 부각된다. 그리고 모양 특성상 먹기도 편하다. 나는 라바스 데 깔라마르를 먹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미니 오징어는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고 맛도 좋아서, 매력만점 식재료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외국에 오면, 육식,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기 쉬운데, 싱싱한 스페인 해산물 오징어를 꼭 맛보길 바란다. 만약 바닷가 근처인 스페인 북부 혹은 남부 도시를 여행한다면, 미니 오징어 요리를 꼭 먹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갓 잡아 올린 미니 오징어 요리는 싱싱하고 해산물 특유의 풍미가 강해 치삐로네스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