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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리코 Sep 16. 2024

뭐야, 너 왜 맛있어? Pan Con Tomate

스페인의 대표적인 아침 식사 메뉴로 빤 꼰 또마떼(Pan Con Tomate)가 있다. 요리 이름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한국어로 '토마토와 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 최대 관광 도시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주(州)'의 대표 음식인 빤 꼰 또마떼에 대해 알아보자.


★ 음식 이름: 빤 꼰 또마떼(Pan Con Tomate)

★ 한줄평: 평범한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낸 맛의 심포니

★ 조리 방식: 곱게 간 토마토, 마늘, 올리브유, 소금을 빵 위에 발라 먹음. 하몽, 앤초비 등 추가 가능

★ 가격대: 보통 2유로~6유로 사이(도시, 마을 별로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대부분 맛이 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먹어본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 1군데만 추천한다.

  1. El rincón de Patones(파토네스) / C. del Arroyo, 16, 28189 Patones, Madrid


빤 꼰 또마떼는 조리 과정이 복잡하지 않아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기본 재료는 토마토, 올리브 오일, 마늘, 소금이다. 간단한 조리법을 얘기하면, 먼저 작은 접시에 신선하고 잘 익은 토마토를 간다. 그리고 올리브유, 소금을 쳐서 갈린 토마토와 섞으면 소스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스를 빵에 발라 먹으면 끝이다.

토마토 소스를 빵에 적당히 슥슥 바르면 끝!

여기까지 읽으면, 빤 꼰 또마떼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평범한 음식 같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음식의 맛은 비범하다. 먹기 전에는 뻔한 맛인 것 같은데, 한입 베어 불면 '너 왜 맛있어?'라는 말이 나온다. 재료도 평범하고 누구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요리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인데, 어떻게 맛은 평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빤 꼰 또마떼를 '초등학교 오케스트라'와 같은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의 강요 아래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다. 연말에 친구들과 작은 합주회를 열기 위해 꾸준히 연습을 했다. 혼자 내 파트를 연습할 때는 '내가 하는 거지만 참 듣기 싫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강당에 모여 합주를 할 때면 나의 바이올린, 친구들의 플루트, 클라리넷, 첼로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조금 어설프지만 썩 괜찮은 한 곡으로 완성됐다. 평범한 놈들이 모여서 그래도 뭔가 하나 만들어 낸 것이다.


빤 꼰 또마떼도 그렇다. 빵, 토마토, 올리브유, 소금, 마늘과 같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재료들로 화려한 맛의 심포니를 연주하는 음식이다. 단, 재료 하나하나가 충실하게 그 역할을 수행해야 맛있는 빤 꼰 또마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빤 꼰 또마떼의 주인공은 토마토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적, 미각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토마토이기 때문이다. 토마토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육즙이 많고 속살이 부드러운 품종의 토마토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번거롭지만 껍질을 벗기고 갈아내야 맛과 식감을 모두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음식에서 토마토보다 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빤 꼰 또마떼는 빵에서부터 영감을 받았다. 옛날 카탈루냐 농부들은 먹다 남은 빵들을 아까워했다. 이들이 자주 먹던 빵은 Pan de Payes라고 불리는 투박하게 생긴 빵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빵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대량으로 구워냈다. 그러나 보존 방법이 마땅치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빵들이 딱딱해져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먹는 것에 진심인 스페인 사람들은 이 딱딱해진 빵을 재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촉촉함과 풍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딱딱한 빵에 토마토를 문질러 촉촉하게 만들어 먹는 것을 고안해 냈다. 이것이 빤 꼰 또마떼의 기원이다.

카탈루냐 농부들이 즐겨 먹던 Pan de Payes. 빵이 투박하다 못해 무섭다. @ 사진 출처: Wikipedia

스페인의 빤 꼰 또마떼에 사용되는 빵들은 특별하다. 빵의 겉면은 딱딱하고 바삭하여 소스에 절여져도 빵이 흐물 해 지지 않게 잡아준다. 그리고 토마토소스에 적셔진 속은 촉촉하면서도 적당히 찰기가 돌아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베어 먹기가 아주 편하다. 겉바속쫄(빵 겉은 바삭하고, 속을 쫄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들 바게트 안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은 빵을 먹다 보면 겉과 속이 딱딱해서 먹기 불편하고, 빵과 속재료들이 따로 노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질긴 빵을 입으로 잘라내다가 속재료를 옷에 흘리기라도 하면, 다시는 이런 종류의 빵을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스페인 사람들은 토마토소스와 궁합이 잘 맞는 최적의 빵을 사용하여, 소비자의 편의성과 맛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빤 꼰 또마떼에서 중요한 올리브유와 소금 얘기도 안 할 수 없다. 스페인과 다른 나라의 빤 꼰 또마떼 맛을 구별하는 키포인트가 바로 올리브유가 아닐까 싶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올리브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로, 현지에서 신선한 올리브유는 향과 풍미가 매혹적이다. 소금은 또 어떠한가. 좀 괜찮은 식당에 가면 품질 좋은 이비자 굵은소금을 곁들인 빤 꼰 또마떼 소스가 나온다. 이비자에는 클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비자 소금은 지중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들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많아서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하몽과 함께 먹는 반 꼰 또마떼 @사진 출처: flickr

빤 꼰 또마떼는 여러 가지 음식과 함께 곁들여 먹기도 한다. 스페인에서 빤 꼰 또마떼를 먹을 때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마늘을 직접 갈아먹는 것이다. 식당에 따라 깐 마늘 1~2개가 따로 나오는 곳이 있다. 소비자가 깐 마늘을 빵 위에 직접 문지르고 토마토소스를 올려 먹으면 은은한 마늘향이 나는 빤 꼰 또마떼가 완성된다. 마늘이 없으면 종업원에게 마늘을 달라고 요청하면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대표 음식인 하몽을 빤 꼰 또마떼에 곁들여 먹는 경우도 흔하다. 스페인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Jamón(하몽)만 시켜도 작은 빤 꼰 또마떼를 같이 주는 경우가 있다. 식당에서 이렇게 주는 건 같이 조합해서 먹으라는 뜻이다. 하몽의 비릿하지만 짭조름한 맛이 올리브유, 토마토로 대표되는 지중해의 맛을 만나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최근에 마드리드 근교의 아주 작은 도시인 Patones de arriba라는 곳에 갔는데, 아주 특별한 Pan con Tomate를 먹었다. El rincón de Patones라는 식당이었는데, 일반적인 토마토소스와 곁들어 고소하고 크리미 한 알 수 없는 주황색 소스가 같이 발라져 있었다. 이 소스가 무엇인지 그때 물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스페인 카탈루냐 주의 전통 소스인 로메스코 소스일 것으로 추측된다. 로메스코 소스는 구운 피망, 토마토, 견과류, 마늘 등을 넣어 만든 매콤하면서도 걸쭉한 소스이다. 신선하고 가벼운 맛의 Pan con tomate에 진하고 고소한 풍미를 내뿜는 로메스코 소스를 같이 먹으니 흥미로운 맛이었다.

빤 꼰 또마떼가 로메스코 소스와 만나 재밌는 맛을 만들어냈다.

빤 꼰 또마떼는 대부분 아침에 먹는다. 겉보기에도 약간 부실해 보여, 가벼운 아침 식사로 제격이다. 스페인의 신선한 재료로 만든 빤 꼰 또마떼는 시원한 지중해의 맛을 담고 있다. 화려한 기교나 귀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은 투박한 음식이지만, 평범한 재료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 빤 꼰 또마떼는 보통의 아침 식사를 잊지 못할 미식 경험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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