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베리코 Sep 19. 2024

스페인 역사와 문화를 한 입에, Albóndigas

스페인에는 외국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음식들이 많다. 마드리드에 거주하고 있는 지금, 내 생각에 호불호가 없으면서도 스페인 전역에서 사랑받는 요리 하나가 바로 알본디가스(Albóndigas)인 것 같다. 고기를 작은 공 모양으로 동그랗게 뭉쳐서 만든 이 요리는 어찌 보면 단순한 요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은 고기 덩어리 속에서 스페인의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를 느낄 있다. 알본디가스에 대해 알아보자. 


★ 음식 이름: 알본디가스(Albóndigas)

★ 한줄평: 알고 먹으면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작은 고기 덩어리

★ 조리 방식: 곱게 간 고기를 양파, 마늘, 빵가루, 달걀 등을 넣고 미트볼을 만든 후 올리브유에 굽는다.

★ 가격대: 보통 2유로~5유로 사이(도시, 마을 별로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1. Los Manueles Restaurante Catedral(그라나다) / C. Cárcel Baja, 1, Centro, 18001 Granada

  2. Bar La Riviera(그라나다) / C. Cetti Meriem, 7, Centro, 18010 Granada


알본디가스의 맛은 약간 흐리멍텅한 미트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알본디가스에서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소스이다. 소스는 기본적으로 토마토소스이며, 소금, 후추, 설탕 등을 넣고 푹 끓인다. 가게마다 육수, 화이트 와인 등을 넣어 조금씩 변형을 가한다. 맛있는 알본디가스와 맛없는 알본디가스의 차이는 소스가 미트볼과 따로 노는지 여부이다. 약한 불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끓여야 고기가 소스를 잘 흡수할 것이다. 잘 만들어진 소스에 알본디가스와 궁합이 잘 맞는 바게트 빵을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알본디가스의 맛은 여느 미트볼과 유사할 수 있지만, 이 음식의 기원에는 특별한 스페인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내가 스페인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 교수님께서 '스페인어 단어 중 알(al-)로 시작하는 것은 아랍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Alhambra) 궁전, 스페인의 여러 도시의 관광지인 이슬람식 요새 또는 왕궁을 지칭하는 단어 알카사르(Alcázar)를 예로 들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음식인 알본디가스 단어도 아랍어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무지했던 신입생이었던 나는 '서유럽 국가인 스페인에 왠 아랍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얘기가 길어지면 지루해질 수 있으니, 아주 짧게 설명하겠다. 711년,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가 침공하여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이후, 약 800년 간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지배를 받았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에 거주하던 무어인들이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그렇게 스페인 땅에는 유럽인들과 아랍인들이 오랜 시간 같이 생활하면서 이질적인 두 문화가 융합되어 발전했다.


스페인어 '알본디가스(Albóndigas)'는 아랍어로 '헤이즐넛'을 뜻하는 '알분두크(Al-bunduq)'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동그랗고 작은 물체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뜻에 걸맞게, 스페인 미트볼 알본디가스도 작고 동그란 형태를 보여준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먹은 Albóndigas. 토마토소스 맛이 일품이었다.

단순 음식의 이름을 넘어, 알본디가스는 아랍권에서 스페인으로 전해진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음식 조리법이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옛날 스페인에서도 유사한 음식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식 기원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이 711년부터 약 800년 동안 아랍 통치받은 것을 생각하면, 많은 아랍식 음식과 요리법이 스페인으로 전파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492년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이미 수백 년 간 깊게 뿌리 박힌 아랍 식문화까지 없애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페인 역사와 문화를 흔히 '혼종의 역사'라고 한다. 과거 로마, 아랍 지배를 거쳐 신대륙 발견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해산물과 야채가 들어간 '짬뽕' 같은 문화인 것이다. 알본디가스도 혼종의 문화가 반영되어, 스페인 고유의 조리 방식으로 발전했다. 아랍권에서 온 알본디가스는 본래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양고기를 뭉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스페인의 알본디가스는 사람들의 입맛이 반영되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넣거나 두 개를 혼합하여 뭉치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만드는 사람 취향에 따라 닭고기, 생선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알본디가스는 스페인 어디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나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그라나다, 세비야 등)을 여행할 때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지역은 아랍인들이 마지막까지 통치한 곳으로, 오랜 시간 아랍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 지역 식당들은 아랍인들이 좋아하는 향신료인 사프란을 사용하여 풍미가 강한 알본디가스를 요리하는 곳이 많다. 종종 해산물을 활용한 알본디가스도 만들어 색다른 버전도 맛볼 수 있다. 그라나다 지역은 맥주나 음료만 시켜도 타파스(무료)로 알본디가스를 주는 경우도 많으니, 이를 활용해 먹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맥주를 시키면 알본디가스가 공짜!

알본디가스는 만들기 간편하면서도 정성 들여 소스를 끓여야 맛있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많이 요리하는 소울푸드 중 하나이다. 특히,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만들어 주는 이미지를 가진 음식이다. 투박하고 소박한 외관, 많은 양의 고기, 눅진한 토마토소스는 할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한국으로 치면,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먹는 갈비찜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다.


이처럼 무심코 한 입 베어 문 알본디가스가 뿜어내는 육즙과 풍미 사이사이에는 스페인의 역동적인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스페인산 레드 와인(Vino Tinto) 한잔, 혹은 시원한 맥주와 알본디가스를 같이 먹어보라. 소박한 비주얼과는 다르게 깊고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4화 뭐야, 너 왜 맛있어? Pan Con Toma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