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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리코 Sep 23. 2024

귀여운 고추 튀김, Pimiento de Padrón

스페인의 유명한 타파스들은 고기, 튀김류들이 주를 이룬다. 가끔 스페인에서 저녁 늦게 타파스를 즐기다 보면 몸에 야채를 주입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스페인에서 지내면서 맛있는 야채 타파스가 무엇이 있나 알아보던 중, 삐미엔또 데 빠드론(Pimiento de Padrón)이라는 귀엽고 작은 고추튀김을 알게 되었다. 조금 볼 품 없이 생겼지만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타파스 메뉴인 삐미엔또 데 빠드론(이하 빠드론 고추)에 대해 알아보자.


★ 음식 이름: 삐미엔또 데 빠드론(Pimiento de Padrón)

★ 한줄평: 마냥 귀엽게 보이지만 엄격한 품질 관리와 일정한 맛을 보장하는 효자 타파스

★ 조리 방식: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빠드론 고추를 볶으면서 튀긴 후, 굵은소금을 쳐서 먹는다.

★ 가격대: 보통 4유로~10유로 사이(식당 레벨, 양에 따라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 대부분 타파스 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맛 차이가 별로 없음

  1. Vinitus Gran Via Madrid(마드리드) / Gran Vía, 4, Centro, 28013 Madrid

  2. Ciutat Comtal(바르셀로나) / Rambla de Catalunya, 18, Eixample, 08007 Barcelona


빠드론 고추는 약 5cm 정도로 짧고 통통하게 생긴 채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 짧고 굵은 꽈리고추처럼 보이지만, 피망, 파프리카의 맛도 난다. 사실 나는 이게 정확히 고추인지, 피망인지, 파프리카인지 정확히 구분을 하지 못하겠다. EU 원산지 보호를 받는 빠드론 고추는 'Capsicum annuum L종' 열매이다. 즉 고추 계열의 채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 글에서는 육안으로 보이는 대로 '고추'라고 부르겠다.


Pimiento de Padrón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의 작은 마을인 'Padrón 지역 고추'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나주 배, 횡성 한우 정도로 지역 이름과 특산물이 결합되어 이름이 붙어진 것이다. 이 귀엽고 작은 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17세기 스페인 수도사들이 멕시코 타바스코 주에서 씨앗을 들여와 빠드론시 에르본에 위치한 '에르본 수녀원'으로 전해지면서부터 재배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빠드론 시를 넘어 다른 곳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느 지역 특산품처럼, 빠드론 지역의 빠드론 고추가 제일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초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이 고추는 너무 매워서 스페인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에르본 수녀원과 지역 농부들은 덜 매운맛으로 재배하기 위해 품종을 개량하였다. 빠드론 지역 농부들은 품질 관리를 상당히 엄격하게 한다. 씨앗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덜 매운맛의 고추를 얻기 위해 미성숙 시기의 초록색 고추를 수확한다. 고추에 있는 캡사이신 화합물을 조절하기 위해선 온도, 습도, 토양 등 환경적 조건과 수확시기가 중요하다. 온도가 높거나 가뭄이 심하면 매운 고추가 나올 확률이 증가한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은 날씨가 선선하고 비도 많이 오기 때문에 덜 매운 고추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

'EU 원산지 보호 명칭'에 등록된 빠드론 고추. 스페인과 유럽을 넘어 대표 지역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엄격하게 품질 관리를 한다고 한들 고추의 맛을 100% 균일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이 고추를 먹을 때 매운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빠드론 고추는 그릴에 구운 담백한 야채 맛이 핵심인데, 매운맛을 보이는 고추에 걸리게 되면 확실히 빠드론 고추만의 매력이 떨어진다. 빠드론이 위치한 갈리시아 지역에는 '빠드론 고추는 어떤 것은 맵고 어떤 것은 맵지 않다'라는 속담 비슷한 문장이 있다. 이는 종종 겪게 되는 매운 빠드론 고추를 먹는 일처럼, 인생은 불확실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이 빠드론 고추로 다양한 요리로 먹지만, 보통 수분을 제거한 빠드론 고추를 올리브유에 튀기듯 구운 후에 굵은소금을 쳐서 먹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굽기의 강도이다. 고기도 아닌데 야채 굽기가 뭐가 중요하냐고 얘기할 수 있겠다. 내가 먹어본 맛있는 빠드론 고추 튀김은 껍질이 살짝 팬에 눌은 자국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고추 속 내용물이 빠져나오지 않은, 딱 그 정도의 굽기다. 기름도 완전히 쫙 빼고, 빠드론 고추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울리는 굵은소금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이 맛의 핵심이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귀여운 빠드론 고추 튀김

빠드론 고추 튀김을 단독으로 타파스 메뉴로 즐길 때는 손으로 먹어야 한다. 우리나라 고추가 그렇듯, 고추 꼭지를 잡고 한입으로 통째로 먹는 것이 좋다. 귀여운 고추를 한입에 넣으면, 구워진 고추 껍질의 살짝 탄 맛과 고추 안의 촉촉한 과육이 어우러져 독특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빠드론 고추의 킥은 뭐니 뭐니 해도 고추 씨앗이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자잘한 빠드론 고추 씨앗이 입에 가득 차면, 부드러우면서도 사각거리는 식감을 보여 씹는 재미를 제공해 준다. 씨앗에서 어떤 맛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톡톡 씹어 먹을 수 있어 감칠맛을 돋궈준다.


빠드론 고추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보여 그 자체로 주인공 음식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러 타파스를 시키면서 중요한 조연 급으로 먹어주는 게 좋다. 보기 드문 야채 타파스인 만큼, 육류 타파스와 같이 조합하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스페인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사이드 메뉴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스테이크와 빠드론 고추를 같이 먹으면 찰떡궁합!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빠드론 고추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5월~10월이다. 이 고추는 겉보기에 귀엽고 하찮아 보이지만, EU 농식품 생산지 노하우를 사용해 특정 지역에서 생산, 가공, 포장된 농식품에만 적용되는 '원산지 명칭 보호(PDO)'에 등록되어 있는 제품이다. 이 PDO 라벨이 붙은 빠드론 고추의 수확은 10월 31일에 공식적으로 종료되므로, 이 시기의 고추가 더욱 신선하고 맛있다고 할 수 있다.


고추를 즐겨 먹는 한국인은 빠드론 고추 튀김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매운맛이 빠진 고소한 맛의 고추와 고추 씨앗의 식감은 이국적인 맛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장모님도 빠드론 고추를 좋아하셔서, 식당에 가면 2그릇을 주문해서 드시곤 한다. 스페인 여행 중에 기름지고 무거운 타파스에 지쳤다면, 담백한 빠드론 고추 튀김을 꼭 먹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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