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베리코 Sep 26. 2024

노른자에 한가득 담긴 정(情), Huevos Rotos

스페인으로 여행이나 출장 온 지인들이 '스페인에 왔는데 무엇을 먹어야 하냐'라고 물어보면 꼭 추천해 주는 몇 가지 메뉴가 있다. 오늘 소개할 우에보스 로또스(Huevos Rotos)도 그중 하나다. 저녁에 시원한 맥주 한잔과 술안주로써 제격인 이 음식에 대해 알아보자.


★ 음식 이름: 우에보스 로또스(Huevos Rotos)

★ 한줄평:  계란 반숙과 감자를 섞어 섞어!

★ 조리 방식: 감자튀김에 반숙 계란 노른자를 깨뜨려서 비벼 먹음. 하몽, 새우, 빠드론 고추 등 첨가 가능

★ 가격대: 보통 12유로~16유로 사이(도시, 마을 별로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1. Casa Julián(마드리드) / Calle de Don Ramón de la Cruz, 12, Salamanca, 28001 Madrid

  2. El Jamón y El Churrasco(마드리드) / C. de la Infanta Mercedes, 64 Madrid


우에보스 로또스(Huevos Rotos)는 '깨진 달걀들'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잘 튀겨진 감자튀김 위에 반숙 계란을 올리고, 노른자를 터뜨려서 흰자와 감자튀김을 섞어 먹는 음식이다. 간이 심심할 수도 있어 짭조름한 하몽(Jamón), 스페인 소세지 치스또라(Txistorra), 초리소(Chorizo), 빠드론 고추 등을 같이 비벼 먹기도 한다.

(좌) 스페인 소세지 치스또라를 곁들인 우에보스 로또스 / (우) 가끔 감자를 튀긴 과자와 계란을 섞기도 하는 우에보스 로또스

이처럼 레시피 자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음식이다. 하지만, 먹는 것에 진심인 스페인 사람들은 우에보스 로또스를 만들 때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단 계란이 메인인 요리인만큼, 계란을 잘 튀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품질의 계란을 선택하여 올리브 오일에 노른자를 반숙으로 유지하되 계란 가장자리는 바삭하게 튀기듯이 굽는 게 포인트다. 간단해 보이는 요리에도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간단한 음식의 맛은 어떨까? 우리에게도 친숙한 식재료들이라 아마 대강의 맛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삭한 감자튀김과 크리미 한 노른자가 만나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낸다. 고소한 노른자의 맛과 단짠 감자튀김이 어우러져 저절로 맥주를 찾게 되는 맛을 뽐낸다. 짭조름한 하몽이나 소세지의 육즙과 기름이 더해지면 최고의 술안주로 탄생한다.

나처럼 술을 잘 못하는 사람도 무알콜 맥주와 먹으면 찰떡궁합!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식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친구들과 겨울 캠핑장에서 뜨끈한 오뎅탕 한 대접을 각자 먹던 숟가락으로 퍼먹은 적이 있다. 비록 서로의 침은 섞이겠지만, 일종의 우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개의치 않고 먹었다. 반면, 스페인은 다른 유럽처럼 1인 1 메뉴를 시켜 각자의 요리를 먹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값싼 로컬 식당에서 우에보스 로또스를 주문하면, 달걀노른자를 터뜨릴 깨끗한 포크와 나이프를 별도로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음식 특성상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한 포크로 계란 노른자를 터뜨리고 함께 비벼야 한다. 나도 스페인 친구들과 편하게 맥주 한 잔을 할 때,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라 그런지 그들도 편한 자리에서는 까탈스럽게 위생을 운운하지 않는다. 이렇게 비위생적인(?) 식사를 하고 나면, 한국에서 사람들과 된장찌개를 나눠 먹는 것과 같은 정(情)을 느끼고, 스페인 사람에게 내가 친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든다.


우에보스 로또스는 맛도 좋지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고루 들어 있어 영양적으로도 좋은 음식이다. 영양소가 풍부해 포만감을 주면서도 요리하기 간편한 이 음식을 누가 즐겨 먹었을까? 아마도 하루종일 바깥에서 일을 해야 하는 농부들이었을 것이다. 이 음식은 곡물 재배와 축산업이 발달한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라만차' 지역에서 특히 즐겨 먹었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카스티야 라만차 지역은 톨레도가 있는 마드리드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스페인의 대표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이 음식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농촌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꽤 오래전부터 내려져 온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몇몇 스페인 예술 작품에 우에보스 로또스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등장한다. 스페인의 자랑인 '돈키호테' 소설 속에도 우에보스 로또스와 비슷한 요리가 언급되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알론소 끼하노(돈키호테)는 토요일마다 계란과 부속고기를 섞은, 현재의 우에보스 로또스와 유사한 'duelos y quebrantos'라는 음식을 먹는다고 묘사되어 있다. 돈키호테가 1605년에 쓰인 것을 감안하면, 스페인은 오래전부터 계란에 다양한 재료를 섞은 요리를 즐겨 먹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3대 화가 중 한 명인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초기 작품 '달걀을 튀기는 노파(1618년)'에 등장하는 달걀 프라이도 우에보스 로또스를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을 그린 그림이라는 썰이 있다. 정확한 의도야 화가 자신만 알 수 있겠지만, 싱싱한 노른자가 살아있는 달걀 프라이가 작품의 주인공인 점을 고려하면 400년 전부터 반숙 달걀 프라이와 다양한 재료를 섞어 먹는 소박한 요리가 서민 가정 식탁에 자주 오르내렸던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달걀을 튀기는 노파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

우에보스 로또스는 스페인 전역의 바(bar)와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음식이다. 그러나 경험상 유독 마드리드 사람들이 이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고급 식당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마드리드 Salamanca 지구에 'Casa Julian'이라는 식당이 있다. 여기는 감자 대신 작은 새우튀김을 곁들인 우에보스 로또스 메뉴를 선보인다. 구운 피망을 곁들여 단맛을 극대화하고, 고소한 노른자, 아기새우의 바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서민 음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고급진 맛을 선사한다. 메뉴판에 있어도 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주문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희귀 메뉴이다.

아내가 픽한 스페인 최고의 우에보스 로또스, Casa Julian

스페인 타파스 문화는 다품종 안주를 소량으로 주문하여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식문화이다. 나는 우에보스 로또스가 타파스 식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테이블 중앙에 우에보스 로또스를 시켜놓고 가족, 친구들이 둘러앉아 노른자를 깨고, 비비고, 나눠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현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하고, 유대감을 쌓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타파스 문화일 것이다. 스페인에 같이 여행온 사람과 꼭 우에보스 로또스를 먹어보기를 바란다.

이전 06화 귀여운 고추 튀김, Pimiento de Padró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