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대표 타파스 메뉴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삔초(Pincho)'이다. 삔초는 무심코 보면 바게트 빵 위에 토핑을 올린, 어떻게 보면 작고 간단한 요리이다. 그러나 삔초를 입에 넣는 것은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맛보는 것과 같다. 스페인 음식 문화의 상징과 같은 삔초에 대해서 알아보자.
★ 음식 이름: 삔초(Pincho)
★ 한줄평: 바게트 빵 위에 수놓아진 한 편의 예술 작품
★ 조리 방식: 바게트 빵 위에 다양한 재료를 올리고 꼬치(이쑤시개)로 고정한다.
★ 가격대: 개당 보통 2유로 이상(도시, 마을 별로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1. Meson Portaletas(산세바스티안) / Portu Kalea, 21, 20003 Donostia
2. Jurucha(마드리드) / Cl. de Ayala, 19, Salamanca, 28001 Madrid
삔초는 외관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정한 크기로 잘라진 바게트 위에 다양한 식재료들과 형형색색의 소스들이 재료 위로 정갈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면, 도대체 저건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당장 먹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오랜 고심 끝에 적당한 갯수의 삔초를 주문하여 하나씩 먹다 보면, 미각과 시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삔초는 1920년대부터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삔초(Pincho)는 스페인어로 '찌르다'를 뜻하는 스페인어 Pinchar 동사에서 유래했다. 이름에 걸맞게 바게트 빵에 듬뿍 올린 토핑들이 떨어지지 않게 작은 나무꼬치(이쑤시개)로 꽂아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절 때 여러 식재료를 하나씩 꽂아 전으로 부치는 '꼬지'처럼 삔초의 이름이 유래 됐다고 이해하면 된다. 토핑에 따라 이쑤시개가 안 꽂혀있는 삔초도 있지만, 통상 이런 류의 음식을 모두 삔초라고 부른다.
셰프 마음대로 삔초 토핑을 만들기 때문에, 삔초의 맛을 딱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다. 삔초 가게를 들어가면,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결정장애가 오기도 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대사 중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명대사가 있다. 삔초 가게에 가는 것도 마치 인생과 같다. 눈앞에 펼쳐진 삔초들을 직접 먹어 보기 전까진, 다양한 식재료들과 소스, 바게트 빵이 만들어 낸 맛의 조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삔초도, 초콜릿도, 인생도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 예측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핀초는 고기, 해산물, 야채, 과일 등 간단한 재료로 시작되었지만, 바스크 지역 특유의 창의적이고 세심한 요리법을 통해 다채롭고 정교한 요리로 진화했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삔초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의 조합은 무궁무진하며, 맛, 시각적 즐거움, 식감을 모두 만족 시키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삔초를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유행 중인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에 나오는 셰프들처럼, 스페인 셰프들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아주 작은 파인 다이닝 같은 삔초를 만들어낸다. 즉, 삔초는 단순한 술안주의 개념을 넘어, 이제는 '지구 대표 미식 국가'인 스페인 식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삔초는 배가 부르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맛을 보여주기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안주거리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을 여행하면서 식당마다 다양한 삔초를 구경하다 보니 저절로 눈이 돌아갔다. 삔초를 먹고 있으면서도, 내가 먹고 있는 식당 밖의 다른 식당 가판대에 놓인 삔초들의 맛이 궁금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처럼, 스페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가 보다. 바스크 지역에는 'Txikiteo'라는 술문화가 있다. Txikiteo는 친구, 가족 등 여러 명이 함께 바를 옮겨 다니며 술과 다양한 삔초, 안주들을 체험해보는 문화이다. 나처럼 다양한 삔초를 즐기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삔초를 즐기고 싶다면 삔초의 고향인 바스크 도시들(빌바오, 산세바스티안 등)에서 먹어볼 것을 권하고 싶지만, 한국 여행객들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위주로 관광을 하고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을 여행한 이후, 나는 한참 '삔초 앓이'를 겪었다. 그래서 거주하고 있는 마드리드의 다양한 삔초 가게를 방문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손꼽는 식당은 마드리드 살라망카 지역에 위치한 'Jurucha'라는 식당이다. 1961년에 오픈한 이 식당은 클래식한 인테리어를 보여준다. 길게 쭉 이어진 테이블에 서서 삔초를 골라 먹는 것이 이 식당의 포인트이다. 마치 한국에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서서 떡볶이를 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퇴근한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스페인 남성들이 집에 들어가기 전에 혼자 간단하게 삔초 1개와 아주 작은 잔의 맥주(Caña) 한잔을 걸치고 무심코 동전을 툭 놓고 계산하고 가는, 느낌 있는 유럽 감성을 목격할 수 있다. 식당 안쪽과 테라스에 앉아서 먹는 자리도 있지만, 이런 느낌 있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이 집에는 다양한 삔초가 있지만, Merluza(대구 비슷한 흰 살 생선) 삔초를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삔초를 여러 개 먹다 보면, 당연히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 걸릴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삔초의 매력이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식(食)에 소홀해지고 무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대충 한끼를 떼우고, 복잡한 인생에서 점심 메뉴까지 고민하기 싫어서 똑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먹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맛있는 삔초하나를 고르기 위해선,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시간과 정성, 머리를 굴려 잘 선택해야 한다. 낯선 국가, 언어, 음식들 사이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삔초가 정말 맛있다면, 짧은 시간에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단, 맛있는 삔초를 골랐다고 같은 것을 하나 더 시켜 먹지 말자. 방금 맛있게 먹은 삔초보다 더욱 맛있는 삔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