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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리코 Oct 14. 2024

피카소보다 사랑받는 스페인 멸치, Boquerones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말라가(Málaga)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온화한 기후, 지중해를 담고 있는 해변, 중세시대 지어진 성곽 등 다양한 즐길거리로 전 세계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또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내가 말라가에 방문할 때마다 설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말라가의 명물인 멸치, 'Boqueron'때문이다. 현지에서 피카소보다 더 사랑받는 멸치인 Boqueron을 활용한 요리에 대해 알아보자.


★ 음식 이름: 보께로네스 프리토스(Boquerones fritos)

  * 보께로네스(Boquerones)는 보께론(Boquerón)의 복수 명사

★ 한줄평: 멸치 한 마리에 담긴 지중해 바다의 맛

★ 조리 방식: 신선한 보케로네스를 깨끗이 씻고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후, 밀가루를 묻혀 올리브유에 튀긴다.

★ 가격대: 한 접시에 보통 10유로 이상(도시, 마을 별로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1. 스페인 말라가의 Malagueta 해변 근처의 술집(Chiringuito)의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맛있다.

  2. Bar Día(마요르카) / Carrer dels Apuntadors, 18, Centre, 07012 Palma, Illes Balears


보께로네스를 처음 보면, 한국의 일반적인 멸치보다는 훨씬 길고 살도 통통하여 멸치가 아니고 오히려 정어리 쪽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로 '멸치'는 영어의 앤초비(anchovy)와 유사한 안초아(anchoa)라고 부르는데, RAE(스페인 왕립 아카데미)에 따르면 "보께론(boquerón)"은 "정어리와 비슷하지만 더 작은 생선을 뜻하며, 이를 이용해 앤초비를 만든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즉, 멸치를 잡아서 바로 먹는 것은 보께로네스라고 부르고, 소금에 절이면 앤초비가 된다는 것이다. 이 생선은 최대 20cm까지 자랄 수 있으며, 어종 보호를 위해 9cm 이상 되는 놈들만을 잡는다고 한다.

스페인 현지 시장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싱싱한 보께로네스

보께로네스를 활용한 요리로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요리는 '식초에 절인 보께로네스(Boquerones en vinagre)'로, 멸치를 화이트와인으로 만든 식초와 물을 섞은 액체에 절여 낸 뒤, 올리브유, 다진 마늘, 파슬리를 뿌려 먹는 음식이다. 생선 가시를 발라서 제공하는 음식이라 먹기에도 편하고, 양이 적어 보이지만 보께로네스에 오메가 3, 비타민B 등 많은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어 적당한 포만감이 든다. 나는 이 음식의 시큼한 향과 약간의 바다향이 나는 비린내를 좋아하지 않아 즐겨 먹지는 않는다. 그러나 와인을 좋아하는 주변 한국분들은 술안주로 즐겨드신다고 한다. 양이 많지 않아 가볍게 먹을 수 있고, 바다의 향이 와인 맛을 더욱 깊게 해준다고 한다. 식초에 절인 보께로네스는 통조림 제품으로도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꼭 식당이 아니어도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화이트 와인 식초에 절인 멸치, Boquerones en vinagre

두 번째 보께로네스 요리는 보께로네스 프리토스(boquerones fritos)라고 불리는 멸치 튀김이다. 싱싱한 보께로네스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밀가루에 묻혀 올리브유에 튀기는 음식이다. 이 음식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고 모두 튀겨서 먹는 음식이다. 뜨거운 기름에 튀겨 가시가 부드러워져 식감이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가시에서 나오는 고소한 맛이 음식의 풍미를 살린다. 하지만, 생선 자체가 작기 때문에 올리브유의 온도를 잘 맞춰야 한다. 기름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으면 멸치가 눅눅해져 좋지 않은 식감을 만들어 내고, 반대로 너무 높은 온도에서는 금세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음식을 먹으면 한국에서 추어탕과 함께 곁들여 먹었던 미꾸라지튀김이 생각난다. 하지만, 맛은 보께로네스 프리토스가 더 맛있다. 미꾸라지 튀김과 달리 느끼하지 않고, 생선 살도 통통하게 올라와 있어 고소하고 부드러운 튀김 맛을 보여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스페인에서 정말 좋아하고, 즐겨 먹는 요리 중 하나이다.

바닷가 근처에서 먹는 Boquerones fritos는 밀가루 옷을 얇게 입히는 것이 특징이다.

보께로네스 요리는 스페인 내륙 지역인 마드리드를 포함하여,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그러나 해산물 요리는 싱싱함이 맛을 좌우하므로, 아무래도 바닷가 근처에 있는 도시들에서 먹으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보께로네스는 지중해, 대서양 인근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므로, 두 바다를 모두 끼고 있는 스페인은 보께로네스의 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수많은 바닷가 근처 도시들 중, 보께로네스로 가장 유명한 곳은 말라가(Malaga)이다. 말라가는 스페인을 넘어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로 유명한 곳이며, 특히나 영국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말라가에 놀러 가보면, 말라가의 뜨거운 햇빛에 타서 빨갛게 달아오른 외모로, 맥주와 보께로네스를 즐기고 있는 금발의 백인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영국인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이들을 "Guiri"라고 놀리기도 한다. 


말라가의 보께로네스는 피카소만큼이나 지역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피카소에 대해 관심이 없을 테니, 말라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보께로네스가 더 사랑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말라게뇨(Malagueños)들은 스스로는 '보께로네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라가의 축구팀 '말라가CF'의 별칭과 공식 마스코트도 보께로네스다. 단, 귀엽고 작은 멸치로는 상대방 팀에게 두려움을 줄 수 없으므로, 'Super Boke'라는 이름으로 슈퍼 히어로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 정도면 말라가 사람들에게 보께로네스 멸치는 단순 생선을 넘어 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말라가 축구팀 말라가CF의 공식 마스코트 보께론 멸치맨, Super Boke

이처럼 보께로네스는 말라가 지역의 별미 of 별미라고 할 수 있다. 음식 요리가 생선 튀김인 만큼 꼭 고급 식당에 가서 먹지 않아도 된다. 말라가에는 말라게타(Malagueta)라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데, 이 해변 인근에는 Chiringuito(치링기또)라는 '해변가 식당'들이 있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적당히 경치 좋은 치링기또에서 아름다운 해변과 석양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와 곁들여 먹는 보께로네스 프리토스는 맛과 더불어 낭만을 더해준다. 


만약 일정이 안되어 말라가를 가기 어려운 상황이어도, 스페인 북부(산탄데르, 빌바오, 산세바스티안 등), 스페인 남부(그라나다, 세비야, 코르도바 등), 마요르카, 마드리드 등 전국 어디서든 보께로네스 프리토스를 맛볼 수 있다. 스페인에 방문하면 1)식초에 절인 보께로네스와 화이트 와인 조합 or 2)보께로네스 프리토스와 맥주 조합을 꼭 먹어보길 권한다. 통통한 스페인산 멸치를 한 입에 넣는 순간, 싱싱한 바다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먹은 보께로네스 프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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