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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리코 Oct 17. 2024

근본 있지만 가여운 아기돼지 요리, Cochinillo

(가여운 아기돼지 요리 사진이 몇 장 나옵니다. 심약자는 읽지 마시기를 권장드립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에 '세고비아(Segovia)'라는 조용한 도시가 있다. 차로 약 1시간 30분, 고속철도(AVE)를 이용하면 약 5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이곳에는 아기돼지 통구이 요리, Cochinillo Asado(꼬치니요 아사도)로 유명한 곳이다. 음식 비주얼부터 고객을 압도하는 이 아기돼지 요리에 대해서 알아보자.


★ 음식 이름: Cochinillo Asado(꼬치니요 아사도)

★ 한줄평: 아기돼지에겐 미안하지만.. 겉바속촉 돼지고기 요리의 정석

★ 조리 방식: 4~6주 된 아기돼지의 내장을 제거한 뒤, 마늘, 향신료 등을 넣고 오븐에 굽는다.

★ 가격대: 한 접시에 30유로 이상(도시, 마을 별로 가격 편차가 있음)

★ 추천 식당/주소

  1. Mesón de Cándido(세고비아) / Pl. Azoguejo, 5, 40001 Segovia

  2. Asador de Aranda(스페인 전역)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등 주요 도시에 있는 고급 체인 음식점


꼬치니요(Cochinillo)는 스페인어로 '아기 돼지'라는 뜻이며, 식당에 따라서는 레촌(Lechón)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아사도(asado)는 '구워진'이라는 뜻으로, 꼬치니요 아사도는 '아기돼지 구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스페인 전통 요리 중 하나인 아기돼지 요리 '꼬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를 먹을 때면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사실 어떤 고기든 도축 및 가공 과정을 보면, 제 아무리 강심장인 사람이라 한들 입맛이 떨어질 것이다. 꼬치니요 아사도의 재료는 아기돼지 딱 하나이다. 4주~6주 정도의 아기 돼지가 가장 좋은 맛을 보여주는데, 이 시기의 아기돼지는 어미의 젖도 떼지 못한 시기라고 한다. 이렇게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도 모자라, 화덕에서 160도 이상에서 뜨겁게 달구어진다. 그리고는 아기돼지 요리가 사람들에게 전시품처럼 보이며, 얼굴부터 꼬리까지 한 마리 통째로 최종 소비자에게 서빙이 된다. 식당 말고 동네 정육점에서도 아기돼지를 통째로 파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럴 때면 아기돼지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간 내가 먹은 고기가 몇 마리인데...라고 생각하면서 어쭙잖은 위선적인 마음을 애써 부정한다.

정육점에서 파는 아기돼지(Cochinillo) @출처: Carnicería José Rubio

이 음식은 세고비아가 특히 유명하다. 세고비아에서 꼬치니요 아사도 보다 유명한 것이, 바로 로마 시대의 수도교(Acueducto de segovia)이다. 이 건축물은 현존하는 로마 시대 건축물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 시대에 중요한 도시였던 만큼, 꼬치니요 아사도 역시 로마 시대의 영향을 받았다. 예전부터 로마인들은 돼지고기를 통째로 구워 먹었고, 연회가 있을 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고비아의 아기돼지 통구이요리도 로마식 요리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도시의 번영과 함께 코치니요 아사도 요리도 점차 유명해졌고, 16~17세기에 이르러 세고비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16세기 스페인의 황제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로스 1세가 세고비아를 방문했을 때 꼬치니요 아사도를 맛보고 감탄했다는 썰은 전 세계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스페인 세고비아에 남은 로마 시대의 유산. 로마 수도교, 꼬치니요 아사도

이 요리의 재료가 아기돼지뿐이라면, 무엇이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일까? 나는 세고비아 인근의 벽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전통 화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덕은 뜨거운 열을 은은하고 고르게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화덕 내부는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아기 돼지고기가 안까지 천천히 익어 부드럽고 촉촉하게 익힐 수 있다. 또한, 참나무, 포도나무 등의 목재를 사용하여 불을 피우는데, 이 나무들이 타면서 나는 연기가 고기에 독특한 풍미를 더해준다.


세고비아의 꼬치니요 아사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식당이 Mesón de Cándido(메손 데 깐디도)라는 곳이다. 이 식당은 세고비아 관광 시 필수로 가는 코스이다. 위치적으로 세고비아 수도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수도교를 바라보며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1895년에 개업한 이 식당은 Cándido라는 가문이 5대째 운영해 온 아주 근본 있는 식당이다. 꼬치니요 아사도의 굽는 방법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을 10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스페인 왕실, 살바로드 달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유명인들이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식당은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닌, 스페인과 세고비아 요리 문화의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전통있는 식당의 분위기와 꼬치니요 아사도 한덩이.. 내 입맛엔 영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이 식당의 맛은 어떨까? 음식 맛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먹는 것에 진심인 나로서는 솔직히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돼지 특유의 잡내가 너무 심하고 전반적으로 느끼한 돼지고기 맛이다. 그래도 돼지고기는 정말 기가 막히게 익힌 것 같았다. 돼지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속살은 전혀 질긴 부분 없이 아주 부드러웠고 고기 결대로 잘 찢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누린내가 나는 닭백숙을 먹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한국이던 스페인이던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 대부분 소스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는데,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남긴 음식이 바로 이 꼬치니요 아사도이다. 나의 먹메이트인 와이프도 나와 비슷한 평가를 내린 것을 보면, 한국인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주문 팁을 말하자면, 일반적인 소고기 스테이크나 돼지고기, 샐러드 등 익숙한 메뉴 위주로 시키고, 새끼돼지 요리는 제일 작은 걸로 시켜서 맛만 보기를 권한다. 하지만, 입맛은 상대적인 것이다. 주변 지인분들 중 레드와인과 곁들여 먹으니 아주 맛있었다는 피드백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맛없는 꼬치니요 아사도를 소개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Mesón de Cándido(메손 데 깐디도) 식당의 유명한 퍼포먼스 때문이다. 이 식당의 창업자인 깐디도 로페스(Candido Lopez)는 자신이 요리한 꼬치니요 아사도가 얼마나 잘 익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식당을 그들의 뇌리에 깊게 새기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아기 돼지고기가 얼마나 부드럽게 구워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접시로 고기를 자르는 시연을 했다. 칼이 아닌 접시로 고기를 자른다는 것은 그만큼 고기가 완벽하게 익었고 부드럽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접시로 고기를 자른 뒤, 이 접시가 날카로운 특수 물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바닥으로 접시를 던져서 깨는 퍼포먼스를 고안했다. 이런 재미있는 볼거리는 스페인의 미식 문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고, 현재는 90살이 넘은 그의 아들이자 2대 주인인 알베르토 깐디도 로페스 할아버지가 여전히 접시로 아기 돼지 통구이를 분해하고, 접시를 던져서 깨는 퍼포먼스를 이어오고 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라도 꼬치니요 아사도를 먹을 명분은 충분하다. 단, 이 퍼포먼스는 꼬치니요 아사도 1마리를 통째로 다 시켜야 볼 수 있다. 그러나 4명 이하의 사람들이 아기돼지 1마리를 다 먹기엔 양이 너무 많다. 운이 좋으면, 다른 테이블의 단체 관광객들이 주문한 꼬치니요 아사도를 분해하는 퍼포먼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당 홍보 차원에서도 이 퍼포먼스를 너무 박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이 높은 확률로 이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고비아에 갈 수 없다면, 아래 Mesón de Cándido 식당의 퍼포먼스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youtube.com/shorts/MX4ov4afeuw?si=SHjDNcAfWmseNp82

접시 퍼포먼스를 대중화시킨 Mesón de Cándido의 창업자, Candido Lopez와 세고비아에 있는 그의 동상

꼬치니요 아사도는 스페인 역사와 전통, 식문화를 반영하는 명실상부 정통 스페인 음식이다. 그래서 깐디도 가문 대대로 이어진 식당 주인들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수많은 훈장과 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스페인을 넘어 다른 국가에서도 여러 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90세가 넘는 2대 주인 알베르토 깐디도는 훈장과 메달을 주렁주렁 걸고 여전히 식당을 활보하는 것을 보면, 스페인의 근본있는 식문화 중 하나를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페인 대표 관광지인 세고비아에 방문한다면, 꼭 Mesón de Cándido(메손 데 깐디도) 식당에 방문해 보길 권한다. 단, 방문 전 구글맵이나 전화를 통해 자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이 식당은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식당이므로 연중 전 세계 방문객들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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