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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Feb 01. 2024

[콜롬비아] 고산이 만든 나만의 보고타 라이프 스타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보고타는 해발 약 2,630m에 위치한 고산 도시이다.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볼리비아 라파스, 에콰도르 키토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이다.


백두산 최고봉의 높이가 2,750m 정도 되니 보고타에서 산다는 것은 백두산 정상 가까이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계속 살던 내가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낯선 풍경들이 아주 많았다.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계절과 날씨였다. 보고타는 적도보다 살짝 위쪽에 위치하여 원래는 더운 날씨를 보여야 하는데, 안데스 산맥의 고도가 그런 더위를 없애버렸다. 1년 내내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약간은 쌀쌀한 날씨를 보여, 춘추 정장 및 경량패딩 정도만 있으면 따로 옷을 구매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1년 내내 가을 날씨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날씨 최고네~"라며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산의 쌀쌀한 날씨는 우리나라의 추위와는 결이 다르다. 보고타 주재원들끼리 이야기하는, 소위 "뼈를 에리는" 추위였다. 이 추위는 옷을 껴입는다고 해결이 되지 않고,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지는 아주 신기한 추위였다.


이런 날씨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Bogotano(보고타 사람)들은 건기/우기를 통해 계절을 구분한다. 건기는 12월~3월 정도이며, 이때는 날씨가 정말 좋다. 뜨거운 햇살에 공기는 선선해서 야외 활동을 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내가 보고타에 대해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1년 내내 일출/일몰 시간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1년 365일 오전 6시 30분 정도가 대략적인 일출 시간이고, 일몰 시간도 12시간 뒤인 오후 6시 20~30분 사이 정도였다. 보고타는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행객뿐만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가급적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고타 학교는 7시~7시 30분에 시작하는 곳이 많아서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면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고, 관공서도 오전 7시 30분~8시에 시작하여 오후 4시 정도에 퇴근하는 곳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가 떠있는 시간이 일정하다는 것이 정말 안 좋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K-직장인으로서 6시 땡 하면 퇴근하기도 어려웠고, 퇴근할 때는 항상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리고, 주중에는 보통 사무실에만 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햇빛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점심도 강도, 소매치기를 피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도보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주로 식사하였다.)


하지만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이다. 

이런 상황을 내가 바꿀 순 없으니, 내가 변해야 하고 변하면 이런 상황이 나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고, 사무실 근처에 있는 헬스장을 연간으로 끊어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글로벌 호텔인 W호텔의 헬스장인데, 물가 탓인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그냥 동네 헬스장 연간권 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여서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 호텔에는 사우나도 있어서 추운 보고타 날씨에서 잠시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나만의 힐링 플레이스로 활용하였다.


저녁에는 약속이 없는 날은 제외하고는 독서나 스페인어 공부를 하였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퇴근 후 피곤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영화나 드라마만 보다 잠든 날도 많았다. 그러나, 저녁 7시만 돼도 밖은 한밤 중이고, 인적도 드물기 때문에 자연스레 집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공부하고 사색할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고독의 시간을 통해 3년 동안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졌던 것 같다.


또 하나의 나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로, 주말에 아주 부지런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낮잠을 자게 되면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집에만 처박혀있다가 주말을 날려버리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부러 밖에 나가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고, 보고타 내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맛집 등을 탐방하면서, 해외에서 사는 인생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렇게 점차 이 곳에 스며들게 되면서, 이제 보고타 밖의 다른 도시, 다른 국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3년의 근무 기간 동안 해외여행에 심취한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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