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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리코 Nov 18. 2024

크리스마스에 먹는 풍성한 빵, Panettone

11월 중순이 되면 스페인 마드리드는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린다. 마드리드의 주요 도로에 크리스마스 조명을 달아두기도 하고, 여러 가게들은 아기자기한 장식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한편, 제과점이나 빵집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풍성한 빵인 빠네또네(Panettone)를 팔기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투박하고 양이 많아 인심이 넉넉해 보이는 빵이지만, 이 빵은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한다. 빠네또네는 보통 11월 중순부터 1월 말 정도까지 판매를 한다. 이 시즌 이외에는 이 빵을 먹고 싶어도 쉽사리 구할 수가 없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빠네또네가 어딜 가든 산처럼 쌓여있다. 백화점에 높이 쌓인 빠네또네들을 보면, 스페인 사람들 표정도 조금은 들떠 보이는 기분이다.


나도 빠네또네가 슬슬 보이기 시작할 때면, 어느덧 연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올 한 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이런 감성에 젖을 새도 없이, 내 머릿속에는 '올 연말에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맛의 빠네또네를 먹지?'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빠네또네를 먹기 위해 마치 1년을 보낸 것처럼 말이다.

스페인 백화점 El Corte Ingles에서 판매 중인 빠네또네

빠네또네의 기원은 이탈리아 밀라노이다. 스페인에서 크리스마스 때 빠네또네를 먹는 문화가 정착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문화적으로,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나라인데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이 빵을 스페인에서도 보편적으로 먹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수룩해 보이는 빵의 외관과 다르게 음식 문화에 매우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스페인 사람들의 입맛에 빠네또네가 당당히 통과했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페루,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대륙에서도 빠네또네의 인기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특히 페루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네또네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고, 독립기념일에도 먹는다고 한다.


빠네또네의 외관은 아주 투박하고 심심하다. 예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라기에는 소박한 외관이다. 얼핏 보면 머핀을 아주 크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 빵은 2~3인이 다 먹기에는 양이 아주 많다. 적어도 4~5인은 되어야 통으로 만들어진 빠네또네를 모두 먹을 수 있다. 빠네또네는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행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가족 혹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 이렇게 빠네또네를 크고 풍성하게 만든 것은, 사람들과 맛있는 빠네또네와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는 제빵점의 의도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상징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한 빠네또네 외관

소박하게 시작된 파네토네는 오랜 세월 동안 그 모양과 레시피에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정통 방식의 이탈리아 빠네또네는 건포도, 오렌지 껍질, 설탕에 절인 레몬과 같은 재료를 추가해서 만들었다. 스페인에서도 이런 정통적인 빠네또네와 함께 견과류, 초코 등을 넣은 종류도 소비되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할 만한 빠네또네는 초코칩을 넣은 빠네또네 일 것이다. 스페인 빵집에서는 빠네또네를 조각으로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이 빵을 받으면, 생각보다 속에 들어간 재료가 적어서 실망할 수 있다. 초코칩도 적고 견과류도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빵 자체가 생각보다 더 달달하기 때문에, 부속 재료는 그냥 향과 맛을 내는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기본적인 빠네또네의 맛은 달달한 파운드케이크 맛과 유사하고, 질감은 살짝 단단하다. 그래서 이 빵은 흰 우유 혹은 아메리카노와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빠네또네를 그냥 먹으면 목이 막힐 수 있는데, 달지 않은 음료와 같이 먹으면 빵이 입안에서 살짝 적셔지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낸다. 아내와 연말이 되면 빠네또네를 자주 사 먹는데, 흰 우유만 있으면 정말 혼자 한통을 다 먹고 싶을 정도로 중독적인 맛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빵 자체가 달달하기 때문에 칼로리가 높아 체중관리에는 좋지 않다.

다양한 빠네또네의 맛이 있지만, 나의 원픽은 초코칩이 들어간 빠네또네!

매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세계 최고의 빠네또네를 선발하는 '빠네또네 월드컵'이 열린다. 올해 11월에 열린 빠네또네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정착한 멕시코 출신 제빵사 톤 코르테스(Ton Cortés) 우승을 차지했다. 이 제빵사는 현재 바르셀로나 Suca'l이라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만약 크리스마스 시즌에 바르셀로나를 방문하게 된다면, 이 곳에 방문하여 세계 최고의 빠네또네를 먹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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