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직장인으로서 총 40일이 걸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코스를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스페인 사리아(Sarria)라는 작은 마을에서부터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약 113km의 코스를 5일 동안 꼬박 걸으면서 '순례길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맛만 살짝 봤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도보로 100km 이상 걸으면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주일 정도 소요되는 이 코스는 직장인 맞춤형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산티아고 케이크(Tarta de Santiago)를 먹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산티아고 케이크는 순례길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마드리드의 빵집에서도 종종 볼 수 있고, 식당 디저트(postres) 메뉴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이 케이크는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하면서 먹어 보고 싶었다. 마드리드에서 이 케이크를 먹어보고 싶은 욕망을 꾹 참고 순례길 출발일만 기다렸다.
산티아고 케이크의 주요 재료는 아몬드이다. 오래전에는 '아몬드 케이크'라고 불리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 스페인 제과제빵 책자의 저자가 갈리시아 지역의 명물인 이 케이크를 마케팅하기 위해 '산티아고 케이크'라고 이름을 붙였다. 산티아고(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1924년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작은 제과점에서는 다소 거칠고 투박해 보였던 케이크에 슈가파우더를 활용하여 십자가 문양을 빵에 새겼다. 케이크 이름과 신성해 보이는 케이크 디자인은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데 성공하였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성 야고보(Santiago)의 은총을 기리며 이 케이크를 즐겼다고 한다. 순례길을 완주한 이들에게 '단맛'이라는 자극을 주어 약간의 일탈을 선물하고, 순례자의 지갑을 열게 하여 지역 경제도 활성화한 것이다.
산티아고 케이크의 맛은 어떨까? 사실 맛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아몬드와 계란의 고소한 향과 설탕의 단맛이 조화를 이룬 맛이다.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으면, 아몬드의 풍미가 먼저 입안에 가득 차고, 설탕과 곱게 뿌려진 슈가파우더의 단맛이 뒤따라온다. 케이크의 질감은 촉촉하면서도 살짝 단단하다. 파운드케이크보다 조금 더 단단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가게에 따라 레몬 껍질, 오렌지 등을 추가하기도 하는데, 과일에서 나오는 은은한 상큼함과 시나몬 향이 케이크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산티아고 케이크는 카페 라테, 차, 우유와 같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 된다.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5일 동안 걸으면서 이 케이크를 거의 매일 먹은 것 같다. 비바람을 맞으며 6시간 넘게 걸은 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먹는 갈리시아 지역의 해산물 요리와 산티아고 케이크는 그날의 피로를 싹 날려준다. 순례길을 걷게 되면, 산티아고 케이크를 꼭 먹어 보기 바란다. 십자가 문양의 외관, 고소하고 달달한 케이크의 풍미는 지친 순례길에서 달콤한 휴식을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