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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Feb 11. 2024

[콜롬비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다

콜롬비아 엘 뻬뇰에서

메데진 근교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돌(바위)이 있다. 내가 만났던 콜롬비아 사람들은 메데진을 방문하게 되면 꼭 이곳에 가보라고 추천하여, 묵고 있는 호텔 로비 직원에게 부탁하여 현지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받았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왕복 차량, 아침 식사, 엘뻬뇰 정상에서의 점심 식사와 유람선 투어 프로그램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아주 알찬 패키지 프로그램을 예약하였다.


다음 날 투어를 가기 위해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섰다. 투어 프로그램에는 독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있었다. 나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현지 여행사를 선택해서 그런지, 한국인 포함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구 반대편의 이런 작은 소도시에서 동양인이라곤 나밖에 없는 투어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했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라지만, 이런 상황들이 가끔은 버겁게 느껴지긴 했다.


간단하게 가이드 및 관광객들과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돌인 '엘 뻬뇰(El Peñol)까지는 메데진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신 엘 뻬뇰 투어 가이드

가이드분은 메데진 출신으로, 가이드 외에도 개인 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한다고 하였다. 콜롬비아에서도 특히나 메데진 사람들은 투잡, 쓰리잡을 많이 하고 있으며, 돈을 버는 것에 아주 적극적이다.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보다 스타트업, 창업 인프라가 더욱 발달해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안데스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버스에서 잠시 졸고 있던 중에, 버스가 엘 뻬뇰 마을에서 잠시 정차했다. 엘 뻬뇰은 원래 도시 이름이고, 근처에 있는 엘 뻬뇰(바위)의 원래 이름은 Piedra del Peñol(엘 뻬뇰의 돌)인데, 편의상 이 바위 이름을 그냥 엘 뻬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전날 메데진에는 비가 많이 와서 투어를 하는 날 비가 내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날씨요정이 찾아온 듯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다.

아주 작은 도시였던 엘 뻬뇰 마을

    엘 뻬뇰 마을에는 독특한 모양의 성당이 있었다. Iglesia Nuestra Señora de Chiquinquirá라는 교회인데,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바위인 엘 뻬뇰의 모양을 복제하여 만들었고, 전망대를 설치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예산을 들여 복제품을 만들 정도니, 엘 뻬뇰이 이 도시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이 많은 것 같았다. 


간단하게 이 동네에서 커피를 마시고, 엘 뻬뇰이 있는 인공호수에서 유람선 투어를 시작했다. 원래 이곳은 육지였는데, 댐을 건설하면서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댐은 전력 공급을 위해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콜롬비아는 수력 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로, 국가 전체 에너지 발전량에서 약 70%를 차지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엘니뇨 현상이 잦아지면서 전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가 여행하기 약 3달 전쯤에, 이 호수에서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150명이 탑승한 유람선이 침몰하여, 9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실종된 사건이었다. 인공호수라서 파도도 없고 아주 잔잔한 곳이어서 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구조 대응이 늦었고, 사전에 구명조끼를 탑승객에게 제공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유람선을 탈 때는 구명조끼를 모든 탑승객에게 제공하고, 안전 수칙을 안내해 주었다.

댐이 만든 인공호수의 아름다운 풍경과 환상적인 날씨

인공 호수였지만, 여기가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규모가 매우 컸다. 인공 섬에는 콜롬비아의 축구선수, 정치인, 배우 등 부자들의 별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고급별장이 한때 레알마드리드의 축구선수였던 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iguez)의 별장이다. 역시나 메데진의 대표적인 부호들이었던 마약 카르텔이 유흥을 즐겼던 별장도 있었다. 그러나, 마약상들의 별장은 누군가가 다 불태워버려 현재는 그 폐허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개인과 사회, 국가를 파멸시키는 어둠의 사업을 이끌어갔던 카르텔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이게 뒷동산이 아니고... 바위라고?

무사히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엘 뻬뇰 바위에 등반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처음 이 바위를 봤을  그 크기와 모양에 압도되었다. 200미터가 훌쩍 넘는 이 지형물이 하나의 바위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탁 트인 곳에 바위만 우뚝 솟은 풍경이 이색적이었고, 얼른 정상에 올라가서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입장료는 투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18,000페소(당시 약 6달러)를 지불하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총 740개로 되어 있어 올라가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계단 폭이 좁아서 앞사람이 늦게 가면 페이스를 조절하기 힘들었고, 반대로 뒤에서 빨리 올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길을 비켜줘야 했다. 원래 나는 고소공포증이 없는데 계단 옆에 안전막 높이가 낮다 보니 약간의 스릴감이 느껴졌다. 아마 이렇게 안전막이 낮은 이유는 방문객들에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한 배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앞만 보고 쭉쭉 올라갔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중.. 아버지는 위대하다!

그렇게 740개의 계단을 올라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니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근심과 고민들이 잊힐 정도로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조물주라도 된듯한 느낌이 들었고,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세계 곳곳의 전망대를 많이 가보았지만 시야를 가리는 고층 빌딩과 현대식 건물 없이 순수하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곳은 엘 뻬뇰 정상 말고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되었다.

엘 뻬뇰 정상의 아름다운 풍경들

정상에서 인공호수를 바라보면서 콜롬비아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콜롬비아 대표 음식인 아레빠(옥수수가루로 만든 부침개 비슷), 빠따 꼰(Platano이라는 바나나 종을 으깨 튀긴 요리), 프리홀레스(콩을 죽처럼 만든 요리), 돼지고기 등이었다. 풍경을 반찬 삼아 밥을 먹으니,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이 좋은 풍경을 나 혼자만 본다는 게 너무 아까워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가족, 친구들, 당시 여자친구(현재의 와이프)에게 보내주었다.

엘 뻬뇰 정상에서의 점심 식사!

정상에서 내려와서 다시 버스에 탑승을 하니, 처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인생의 리프레쉬가 된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을 방문하기 전이나 후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문제들은 아직 산적해 있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재충전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멋진 경험을 통해 현재의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고, 재충전 해주는 것이 여행의 매력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다음 여행을 구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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