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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Dec 18. 2023

나 홀로 타이완 [觀] - ④

[홀로 떠난 타이완 여행기] 몰라도 너무 몰랐던 대만 - 4편


이번 대만 여행의 목적 중 가장 큰 것은 사진이었다. 화려한 도시, 유명한 유적을 담는 것도 좋지만 사실 나는 평범한 골목길을 찍는 걸 더 좋아한다. 나는 여행객이라면 스쳐 지나갈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더 이국적 정취를 느끼는 편이다. 내 여행 사진을 본 사람들이 간혹 묻는다.


그런 걸 왜 찍어요?


나는 어떤 사회의 진짜 정체성과 문화, 삶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랜드마크나 관광지의 이미지보다는 이런 사람 냄새나는 골목의 초상(肖像)에서 찾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화장을 지운 민낯이라 해야 할까. 타이베이는 현대적인 도시지만 외관 전체를 깔끔하게 정돈한 건물이 드물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에어컨 실외기, 낡은 샷시와 빨래, 금 간 벽돌, 빛바랜 간판, 찢어진 스티커와 낙서.. 이런 것들이 한데 뒤 섞여 빛과 그림자를 만나 한없이 복잡하고 대비가 큰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낡음은 시간의 흔적이자 이야기이다. 이런 것들을 부숴버리고 새로 지으면 깨끗하긴 하겠지만 그 이야기는 사라진다. 그래서 나에게 대만의 꼬질꼬질한 길을 찍는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설레는 일이었고 질리지 않는 매일의 모험이었다. 사진 찍는 재미에 정신없이 걷다 보면 하루에 몇 만 보는 보통이었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복잡한 패턴과 질감 그리고 밝음과 어둠이 대비되는 이런 장면의 그림자뒤로 보이는 빛이야 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나는 사람 눈높이의 덤덤한 화각을 재일 좋아한다. 규모가 너무 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광각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화각으로 과장되게 찍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왜곡하는 일이라 잘 찍지 않는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정교한 배치, 깔끔한 레이아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이런 수레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추운 겨울에도 노점상을 하며 군식구가 된 손주들을 키우며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하신 할머니. 늘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물건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야기'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사진에 담은 건 단지 낡은 바퀴 달린 쇳덩어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직장이고 삶이며 어떤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그날 저녁 저 수레 위에서 크림 옥수수는 맛있게 구워졌을까? 많이 팔았을까? 그래서 먹는 이도 파는 이도 행복해졌을까?


ⓒ Tony Stock


한때는 장비병에 걸려 DSLR 카메라에 어깨가 부서져라 다양한 렌즈들을 갖고 다니던 시절도 있으나, 이번 여행기의 모든 사진은 아이폰 14 Pro로 찍은 것들이다. 사실 아이폰 14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굳이 더 좋은 카메라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조금 떨어져서 보면 울퉁불퉁, 무질서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은 하나의 '결'이 된다. 그 자체로 아이덴티티가 되고 규칙이 되고 일관적인 스타일이 된다. 지우고, 잘라내고, 버리고, 무너뜨려 정돈하는 미니멀리즘의 인공미에 푹 빠진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유효한 트렌드다. 다만 거기 질려버린 테크놀로지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낡고, 덧대고, 덧칠한 옛것들의 인간미에 오히려 매료되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병원같이 허여멀건한 미니멀 인테리어 카페들은 요즘 장사가 잘되는 곳을 보기 힘들고 벽에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힙지로 카페가 뜨고 있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사진을 찍다 저 멀리 굽어 있는 도로 뒤로 차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저 너머로 하염없이 걷고 싶어,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다. 지나는 길에 스치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간식을 사러 온 사람과 주인의 정겨운 대화, 슬리퍼를 신은 채 우르르 뛰어가는 아이들.. 인스타에 나오는 핫스폿도 좋지만 이런 평범한 풍경 속에 섞여 보는 것 또한 참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닐까 한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이런 걸 왜 찍어요?라고 물어 볼만한 사진들이다. 나에겐 우연한, 의도치 않은, 그저 상존하는 평범함이 아름답게 느껴질 뿐이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여행자들은 잘 찾지 않는 곳들을 마음껏 걷고, 그 풍경을 담을 수 있어서 행복한 여행이었다.



나 홀로 타이완 [食] - ①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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