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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클랑 Oct 07. 2022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독일 현지 교수님이 내게 남긴 단어 'lebendig'






독일에서 2년 동안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수 십 번의 레슨을 받았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도 분명 많다.

독일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녹음해 둔 레슨 내용을 여러 번 듣기도 했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딱히 없지만,

교수님이 나에게 남긴 단어가 있다.

바로 'lebendig'라는 단어이다.





 

살다 라는 뜻의 leben 동사에서 온 형용사 형태로

lebendig는 살아있는, 생동하는, 활기 있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lebendig라는 말은

졸업할 무렵, 교수님께서 내게 몇 번 언급하신 단어이다.

그때의 난 이미 lebendig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난 교수님이 왜 lebendig라는 단어를 언급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때의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 중인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lebendig 한 연주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das Leben) 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함 투성이 이지만,

타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삶은 비자라는 또 하나의 불확실함을 끌어안고 가야 하기에

더욱 불안한 마음이 깊이 깔려 었던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은 마치 낭떠러지 앞에  있는 마음 같은 것이었다.

한 발자국만 떼면 떨어질 것 같고,

뒤로 물러서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그런 낭떠러지.



음대를 졸업하고 악기를 잠시 내려놓는 동안

독일에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삶이라는 것이 (das Leben) 정해진 하나의 모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


피아노가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 나의 인생 안에는 피아노 말고도 무수한 많은 것들이 있다는 .  




원래 진로는 늘 생각해도 답이 는 것이고,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내가 가게  길은 어떤 길일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어떤 길로 가게 돼도 괜찮다.


 일이 나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짓밟는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때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피아노 놓으면 인생이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삶은 정해진 모습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깨달은 지금은

여전히 불안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lebendig 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lebendig 한 연주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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