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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생산기지에서 전략 파트너로
다시 보는 베트남

생산기지에서 전략 파트너로, 다시 보는 베트남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는 BRICs로 불리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주목했다. 이후 MAVIN, CIVET, MIKTA, NEXT11, VIP 등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흥개발국가들의 수많은 조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글로벌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높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정치적 안정성, 제조 인프라, 젊은 인구 등 세 가지 요인을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ㅎㅎㅎ.jpg 그간 BRICs를 이을 전도유망한 신흥국으로 거론되던 수 많은 국가들 상당수는 정치, 경제적 불안한 상태


필자는 지난 5년간 『가깝고도 먼 아세안』,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 연재를 통해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 각국의 변화와 가능성을 발 빠르게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주요 이슈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와 기업이 주목해야 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노력해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국의 미래 전략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동반자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제 협력국을 넘어선 외교 파트너 베트남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는 베트남을 주로 저렴한 노동력을 갖춘 생산기지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의존형 공급망의 분산 필요성이 커지면서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베트남을 ‘아세안의 중국’으로 오해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특히 공산국가라는 점에서 베트남이 중국과 밀접하다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베트남 민족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반중’ 정서라는 사실이다. 베트남은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의 지배와 독립을 네 차례나 반복한 역사가 각인된 나라이다.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적 판단을 이어온 베트남은 오늘날에도 철저히 실리 외교를 추구한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외교적으로는 거리를 유지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운명공동체’를 제안할 때마다 베트남은 ‘미래공유체’라 되받아치며 절묘하게 중국을 피해간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자극하는 선은 넘지 않는다. 베트남은 잘 휘고 본래의 위치로 금세 돌아오는 대나무처럼 탄력적인 외교를 한다. 이처럼 전략적 자율성과 외교적 유연성을 겸비한 베트남은 한국에게 단순한 경제 협력국을 넘어선 매우 중요한 외교 파트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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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이상적인 경제, 안보 파트너 한국

베트남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로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 경제적으로 베트남은 2045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디지털 경제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자정부, 스마트시티, 정보보안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국가적 역량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한국은 개발도상국형 디지털 전환 모델을 구축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한때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IT 강국으로 도약한 경험은 디지털 도약을 시도하는 베트남에 가장 현실적인 롤모델이 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인구 1억의 신기술 수용력이 뛰어난 젊은 베트남은 향후 20년간 디지털 전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시장이다. 베트남은 디지털 플랫폼, 클라우드 인프라, 인공지능 응용 기술 등등 한국이 제시하는 신기술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출산율 저하로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한국에게 베트남은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이기도 하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은 긴밀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간 베트남의 무기 체계 근간이었던 러시아산 무기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게다가 성능 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내 베트남 무기 체계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미국산 무기를 도입할 경우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우려한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베트남은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산 무기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한국은 중국과 군사적 갈등 관계가 아니기에 베트남이 한국 무기를 구매하더라도 중국이 강하게 반발할 명분이 없다. 동시에 한국산 무기는 미국 무기와 호환성이 높아 베트남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베트남이 안보 자율성과 전략적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다.


한반도의 평화 파트너, 베트남

최근 3 년간 냉각된 남북한 관계의 돌파구로도 베트남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이유는 미국이 북한에게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을 제시하며 설득했기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베트남의 기적이 북한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 또한 2018년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모델로 가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진작부터 엘리트 집단인 김일성대와 김책공대 학생들에게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을 배우게 했다. 베트남 고위 공무원이 북한으로 가서 강의도 하고 북한 고위관계자와 대학생들이 베트남으로 직접 가서 배우기도 했다. 베트남은 체제 붕괴를 우려해 개혁개방을 주저하는 북한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존재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치른 뒤에도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히 미국과 수교했다.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혁과 개방을 추진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한 베트남이기에 북한의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ㅜㅇㅈㅈ.jpg 폼페이오 “북한, 베트남의 길 따르면 기적 일어날 것”_가디언의 보도_사진은 로이터통신


이처럼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이자 상생하는 관계이다. 베트남을 ‘값싼 생산 하청 국가’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재인식해야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 안보 협력, 한반도 평화까지 연결되는 베트남의 다면적 가치는 한국의 미래 전략과 깊이 맞닿아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잘 모르는 베트남과의 진정한 동행이 필요하다.


* 이번 호를 끝으로 [가깝고도 먼 아세안] 연재를 마칩니다.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주간경향의 <가깝고도 먼 아세안>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4년 8개월 동안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을 시작을 베트남을 중심으로 아세안에 대한 칼럼을 써왔는데 이제 그만 쓰려니 많이 아쉽습니다.


칼럼을 준비할 때 마다 머리를 쥐뜯으며 스트레스 받아 했는데 막상 연재를 끝내려니 많이 아쉽습니다.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새로운 일을 맡게 되어서 고민스러운 선택을 했거든요.


그간 부족한 글을 살펴 봐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5년여동안 지면을 내어주신 <주간경향>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특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슬램덩크의 안 감독님처럼 "자네 칼럼 한 번 써보지 않겠나"라며 필자로 끌어 주신 박병률 부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3년 넘게 담당기자로 칼럼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함께 고민해주고 응원해주었던 김찬호 기자님꼐도 고마운 마음 고스란히 간직 할게요.


하지만 브런치에는 계속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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