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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Sep 27. 2022

궁색하게 살지마!

요즘 우리 부부의 키워드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자라, 꼭 그래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 있다. 일종의 집안 분위기랄까?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지도 말라했고, 가족끼리 돈을 빌려줄 때도 우리는 차용증을 썼었다.


 그랬다. 아버지는 빚이라는 단어를 그 무엇보다 싫어했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가훈에는 절약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훈에 당당히 등재된 단어의 순서는 건강, 명량, 절약이었지만 아버지가 최우선으로 늘 강조했던 것은 마지막 단어였다. 친척간에 돈거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귀가 닳도록 들었었다.


 딱히, 할아버지가 보증을 잘 못 서서 망하거나 했던 것도 아닌데, 옛 시대를 관통하며 가난하게 살았던 탓에 아끼는 것이 미덕이자 올바른 삶이라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영향으로 절약하는 좋은 습관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빚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로 인해,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돈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40대 중반, 집을 분양받으면서 처음 빚을 졌다. 그전까지는 마이너스 통장은 고사하고 현금서비스도 받아 본적 없이 살았다.


오래된 아버지의 가훈


  부창부수*라 했던가? 나와 같이 아내도 돈 씀씀이에 있어 필요한 것에 있어서는 아낌없이 쓰지만 절약할 방법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 신중한 편이다. 인터넷 쇼핑 할 때도 최저가나 쿠폰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니 그렇게 신중할 수가 없다. 아내는 상품 리뷰나 영수증 리뷰로 현금과 같은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는다. 포인트에 집착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역시, 그 아내에 그 남편이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상품에 먼저 손이 가는 날 보며 언제쯤 세일 안 하는 거 팍팍 사냐며 볼멘소리하곤 하지만 평소보다 비싸게 파는 물건들은 사지 않는 것을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궁색하게 살지 마!


 처음 시작은 살까 말까 망설일 때, 농담 삼아 했던 말인데 요즘 부쩍 자주 하게 된 말이다. 아껴 쓴다고 타박하는 것은 아니고, 아내가 무언가를 짠 내 나게 아껴 쓰는 걸 보면 종종 툭 던지는 말이 되었다.


 얼마 전 와이프 화장대에서 허리가 잘린 화장품을 발견했다. 다시 한번 아내에게 '자기야, 궁색하게 살지 마~' 그러자 아내는 똑같이 농담으로 '못 살아서 그래~!'라며 답한다. 서로 웃으며 참 아껴 쓴다며 웃고 말았는데 그렇게 둘이 닮았다.


끝까지 알뜰하게 잘라서... 쓴 모습

 

 사람마다 아끼는 방법이 다른 걸까? 아내는 화장품이나 샴푸 등을 정말 끝까지 써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반대로 나는 마트에서 비싼 것보다는 가격이 싼 것에 손이 먼저 가는 것은 기본이고, 오래 입어서 버려도 될 만한 옷인데 아직 편하다며 또 입고, 보푸라기가 많이 난 옷인데 버리겠다고 했는데 빨았으니 한 번 더 입을까 하며 한 번 더 입는다.


 딩크족. 맞벌이에 아이가 없는 우리집 경제력을 따져보면그렇게까지 궁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또 굳이 아낄 수 있는 것을 아끼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 서로가 똑같은 마음으로 웃는 얼굴로 핀잔 아닌 핀잔을 주곤 한다. 더하여, 내가 할 때는 괜찮은데 상대의 그런 모습을 보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 괜스레 짠한 마음이 훨씬 더 많으리라.


 때로는 단돈 100원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와 반대로 몇십만 원의 한 끼 식사가 특별한 만족을 주는 법이니 돈의 적고 많음이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 또 어떤 가치를 소중히 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족함이 절로 따라오리라 믿는다.


 아끼되, 궁색하지는 말자. 그런데, 저게 궁색한가 싶기는 하다. 역시나 어릴 적 듣고 배운 절약은 어쩔 수 없다.



* 부창부수(夫唱婦隨), 글자 그대로의 뜻은 남편이 노래를 부르면 아내가 따라 부른다 인데 사실 굉장히 남성 권위주의적인 사자성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그 뜻을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또는 부부 사이 그런 도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따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남성주의적 사자성어다. 다만, 이 글에서는 남편이 노래를 부르면 아내도 같이부른다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차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가 내 아내를 아줌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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