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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Dec 16. 2022

바삭한 부분만 먹어버린 빵

술이 문제인가 빵이 문제인가?

주사? 술버릇. 술을 마신다면 저마다 술버릇이 한두 개쯤 있을 것 같다. 딱히 좋은 주사라 할 것은 없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다면 좋다고는 못해도 나쁜 술버릇은 아닌 셈일까?


술을 많이 마시면 늘 배가 고프다. 과학적으로 알코올이 혈당의 흡수를 방해하여 탄수화물이 사정 없이 당기는 것이라는데 예전부터 술을 좀 먹었다 싶으면 무언가를 꼭 먹고 자야 했다.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것이 최선


안주를 많이 먹던 적게 먹던, 그것과는 별개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허기짐을 느꼈다. 반드시 뭐라도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니까 아주 옛날, 대학생 때. 큰 키에 몸무게가 표준에서 미달되는 마른 몸매였다. 지금이야 나잇살과 사회살로 적당히 살이 붙 운동과 다이어트가 필요하지만 그때만 해도 호리호리함을 넘어선 마른 몸을 가졌을 때였다.


그때도 친구, 동기, 각 종 모임이 많았다. 마땅히 술 자주 먹었다. 술을 주량만큼 먹고 나면 배속에 알코올에 반응하는 세포가 있는 것처럼 으레 허기짐을 참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집에 들어가면 가장 빠르고 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완전식품, 라면을 끓였다. 보통 밤 12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해 가며 먹었었다.


그런 습관이야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고, 대학생 때는 물론 군대를 다녀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스트레스와 술. 그리고 불규칙한 식사와 폭식으로 살이 조금씩 찌더니 적당한 인격도 갖추게 된 때가 있었다.


이제는 호리호리는 없어지고 배에 호리병이 있을 법한 그럼 몸으로 변화하던 그런 때. 역시나 술을 마신 후 집에 들어가 뭐라도 먹기 위해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기라도 하면, 아니 소리가 나기도 전에 안방 문을 연 엄마가 소리쳤다.


이 시간에 뭘 먹니! 술 좀 조금만 그만 먹고 다니고 어여 자!


다 커 사회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막내아들이 더 이상 살집이 불어나는 것을 참을 수 없던 어머니께서는 소머즈*보다 밝은 귀로 저녁에 와서 그릇을 꺼내는 소리만 들려도 어디선가 나타났다. 엄마는 평생 살이 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체질적으로 말랐고, 살이 찌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를 철석같이 믿고 계시는 분이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살도 조금씩 오른데도 불구하고 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머니의 감시 레이더를 피하기는 점점 더 불가능에 가까워졌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집에 가서 먹는 게 아니라 집에 들어가기 전, 집 근처 24시간 운영하는 분식점에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당시 본가 근처 지하철역에 앞에 밤늦게까지 하는 분식점이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눈치 보지 않고 맘 편하게 라면, 더 나아가 다양한 메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었다.




담배는 끊었어도, 술은 끊을 수 없다. 인생의 즐거움의 반 이상이 먹는 즐거움이고 또 그중에 술이 주는 희로애락을 어찌 단칼에 자를쏘냐.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결혼하기 전에는 어머니의 폭풍 잔소리 때문에 따뜻한 집을 놔두고 근처 분식점이나 편의점을 전전긍긍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내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 들어와 조용히 먹고 자는 내게 그리 심하게 하지 않는다. 더하여 몸 관리도 나름 하고 있어 적정 수준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있기에 술병이 나지 않는 이상 이해해 주는 편이다.


코로나19로 뜸했던 만남이 올해 12월에는 엔데믹으로 가는 길목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아졌다. 며칠 전에도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뭘 먹을지 고민하다 컵라면 2+1을 사 왔었다.


그날 저녁에 먹은 사발면 [출처: 농심 홈페이지]


집에 들어와 3개 중, 신볶게티라고 새로워 보이는 라면을 먹었다. 아내는 잔소리가 아닌 저녁에 사 왔던 빵을 나 먹으고 남겨 놓았다며 내밀었다. 사이가 좋은 부부다. 훗!


이런저런 수다와 함께 빵을 하나 해치우고 조금 모자란가 싶을 찰나. 테이블 위에 다른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좋아하는 스콘이었다. 아내는 자기 위해 양치를 하고 있었고 나도 조금 떼어먹고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오전이 되어 오후 회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사진이 하나 날라 왔다. '띠링~'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빵이다. 어제 스콘이다.


스콘의 처참한 모습


                                                                                                                    
조금 맛만 보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겉의 바삭한 맛과 술버릇의 콜라보로 겉을 다 뜯어먹은 것이다. 아내가 마침 그날 휴가여서 점심에 커피와 함께 스콘을 먹으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술을 먹으면 먹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빵도 맛있기도 했고... 하하!


* 소머즈 -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육백 만불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소머즈는 육백 만불 사나이에 이은 두 번째 바이오닉 인간이자 최초의 여자였다. 기본적인 바이오닉 인간이 갖고 있는 파워와 능력치 외에 청각 능력이 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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