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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빛날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

by 에리카

한국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들 열심히 사는 레벨이 10이니 6만 돼도 그냥 평균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6은 충분히 평균 이상인데 말이다.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차고 넘친다. 일본어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와우 2개 국어를 하시다니 대단해요."라는 말을 듣기는 어렵다. 나 또한 일본어는 정말 순수한 덕후의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이다 보니 나름 잘하게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특별한 '재주'가 아니었다. 영어도 보통 대학생 정도였다. 내가 실제로 영어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도쿄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카타 나베 요릿집에서 알바를 했었다. 어느 날 식당에 외국인 손님 세네 명이 들어왔는데 웬걸, 점장부터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패닉 상태가 됐다. 나는 그날은 주방에서 재료 손질을 돕고 있었는데 원래도 약골체라 아슬아슬해 보이는 점장님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주방으로 나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정짱, 지금 홀에 외국인 손님들이 와있는데 혹시 주문을 받아줄 수 있어? 영어 할 수 있지?" 라며. 나는 주문 정도야 받을 수 있지라는 생각에 손질하던 샐러드를 내려놓고 홀로 나갔다.


테이블로 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미국인 여행객들로 외관이 전통 일본식 가옥이라 눈에 띄는 우리 가게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해서 들어왔다고 했다. 제대로 된 로컬 맛집을 찾아오긴 했으나 메뉴에는 영어 한자 없이 죄다 일본어로 적혀있으니 난감한 와중에 직원들도 설명을 못해주니 서로가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나타나 영어로 인사를 하고 주문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이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감동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 내내 이렇게 소통이 어려울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하소연과 함께. 나는 이들 입맛에도 맞을만한 메뉴 몇 개를 골라 추천해줬고 중간중간 그들이 식사를 잘하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마지막에 계산까지 도와줬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연신 "아뤼가토~아뤼가토~"를 외치며 나가는 그 여행객들을 보며 귀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여행객들이 나가고 나자 가게 안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점장님부터 키친의 셰프,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들까지 내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쏟아냈다. 한국인들은 다들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부터 시작해서 정짱 같은 수재가 왜 우리 가게에 있냐는 등 정말 쑥스러워서 몸이 배배 꼬이는 말들이 쏟아졌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렇게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까? 글쎄... 어쩌면 뒤에서 누군가는 발음이 어색하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때 느낀 건,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그저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한국의 평범한 대학생에서 수재 정짱이 되어 있었다.


누군들 칭찬을 좋아하지 않겠냐마는 나는 채찍보다는 당근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성향이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하고 싶어서 노력을 하지만,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하면 머리로는 받아들이더라도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그리고 한동안 쭈굴쭈굴해진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이들과 지내야만 자극을 받고 성장한다. 앞에 가는 저 사람들을 보면서 승부욕이 불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본인의 성향에 맞지 않는 자극을 계속해서 받으면 스트레스만 쌓이고 정작 발전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실히 후자였다.


돌이켜보면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일본 여성들이 워낙 왜소하다 보니 한국에선 평균인 160cm의 키도 일본에선 크게 느껴졌고, 모국어인 한국어를 하는 걸로도 욘사마 팬들에게는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거기다 영어로 기본적인 대화만 할 수 있어도 나는 엄청난 수재로 불리게 되었다. 그때 느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이지만 이렇게 내가 좀 더 인정받고,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 있구나. 앞으로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에서는 드라마와 케이팝의 영향으로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한다는 것이 큰 강점이 되어 잡마켓에서도 매력 있는 인재가 된다. (보통 피부라도 한국인 필터가 적용돼서 그런지 피부가 좋다는 말도 정말 많이 듣는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렇게 싱가포르에서 받은 우쭈쭈 효과가 최대치로 올라갔더라도 가끔 한국에 와서 지낼 때면 한국의 기준에는 내가 못 미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행복한 삶의 비결은 잘 나가는 용의 꼬리로 '왜 나는 꼬리밖에 못 돼지?'라고 우울해하는 것이 아니라 뱀의 머리, 아니 몸통이라도 좋으니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뱀과 용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둘은 전혀 다른 동물인데.


흔히 외부환경은 바꿀 수 없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옵션이 있다.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환경, 내가 더욱더 빛날 수 있는 환경으로 직접 찾아가면 된다. 옛말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지 않는가. (심지어 스님도 말이다!)

아마 그 스님도 고민하시다 더 마음에 드는 절을 찾아 떠나신 거겠지.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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