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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나라 싱가포르가 전 세계 인재들을 데려오는 방법

by 에리카

싱가포르는 참 독특한 나라다.

마치 잘 사는 북한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일부 사회주의적인 면과 (국가는 아버지이고 국민들을 보살펴 준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사회가 잘 양립하고 있다.


독특하기도 하지만 참 영리하기도 하다. '똑똑하다'와 '영리하다'는 비슷한 뜻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싱가포르는 영리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고, 자국을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마케팅해야 하는지 전략을 짠다. (사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나 싶지만) 마치 엘리트 경영진이 기업을 운영하듯 국가를 운영해나간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 나라가 작고 무역에 유리한 지리적 이점 이외에는 타고난 자연적 혜택은 크게 없다 보니 인재야말로 큰 자원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그 인재는 자국민에 국한되지 않고 외국인이라도 자국에 도움이 된다면 데려오는 것도 포함된다. 또한 자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외에도 선택지가 많은 세계적 기업들과 인재들이 싱가포르를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여기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1. 기업에게 활짝 열린 문 & 중립적 포지션

싱가포르는 지리적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판을 만들어주고 외국인들이 그 땅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이라도 몇 시간 안에 간단하게 이론적으로는 자본금 1달러만 있어도 회사를 등록할 수 있다. (물론 서류 상 함께 등록될 현지인 디렉터와 실제로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적 자본이 필요하지만.) 2020년 8월 현재 기준으로 법인세율도 17%로 한국의 25%에 비해서 낮다.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준 것이다.

2020년 기준 국가별 법인세율 ©https://www.businesstoday.in/

예전에 아시아 퍼시픽의 본사를 홍콩에 두었다가 싱가포르로 이전한 기업들도 많은데, 그건 바로 영어가 공용어라는 편리함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특별히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포지션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난 후, 많은 외국기업들이 중국의 입김이 강해진 환경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싱가포르는 처음부터 철저히 스스로를 '아시아의 스위스'라는 포지션으로 세팅했다.

1991년에 설립된 싱가포르 국제 중재센터 SIAC(Singapore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와 2014년에 설립된 싱가포르 국제 조정센터 SIMC(Singapore International Mediation Centre)는 그 목표를 잘 대표하고 있는 기관이다.


기업들 간의 국제적 분쟁이 생기면 각자에게 유리한 기관에서 홈그라운드에서 해결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게 공평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중재기관이 개입하게 되는데, 세계적으로 프랑스 파리의 국제 상공회의소, 스톡홀름 상업회의소 중재기관 등이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기존의 강자였던 홍콩을 제치고(1985년) 설립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의 비즈니스가 점점 더 국제적으로 다양한 관계가 얽히고설키게 되는 상황에서 그 국가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사업의 존패를 걱정해야 한다면 매력적인 비즈니스 환경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가포르는 외국 기업들이 다른 걱정하지 않고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니 외국 기업으로서는 좀 더 안심하고 장기적 플랜을 세워 운영해나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장기적 고용이 일어나고, 세수도 확보되니 싱가포르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 구조이다.

2018 국재 중재 설문 International Arbitration Survey © http://www.hk-lawyer.org/


2. 국가 자체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타트업

2014년부터는 정부 주도 하에 '스마트 네이션 Smart Nation'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핀테크, AI, 친환경 등에 집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 세계의 유능한 인재와 스타트업 기업을 싱가포르로 데려오기 위해 '창업가 비자 Entrepreneur Visa'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국가에서 자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연이어 발표했다. 또한 핀테크, 스타트업 관련 국제 콘퍼런스를 주최하면서 자신들을 '스마트 네이션'으로 포지셔닝하는 것과 동시에 업계 인재들이 싱가포르를 방문하게 하고, 매력적인 나라임을 어필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핀테크 페스티벌 ©meniga.com


나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핀테크, 그린 건축에 관련된 콘퍼런스나 행사를 많이 다니곤 했는데 네트워킹 시간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실제로 많은 유럽, 미국의 젊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싱가포르로 이주해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또한 싱가포르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지, 전 세계 투자자들을 만나러 본인들이 움직일 필요 없이 투자자들이 직접 이곳으로 찾아오는지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간혹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간에 브로커를 끼고서라도 투자자들과 미팅을 하러 온 외국의 스타트업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싱가포르 =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이 그 콘퍼런스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싱가포르는 국가 자체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타트업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일단은 시도해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환경이다. 말 그대로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니 검증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건데, 기존의 규제에 맞춰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게 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덕분에(?) 해외로 나간 스타트업에게 외국 정부 관계자가 왜 자국인 한국에서는 시도하지 못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싱가포르의 해외 스타트업이 설령 대박을 터뜨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렇게 전 세계 인재들에게 심어진 싱가포르라는 국가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3. 전 세계 부자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세금 혜택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 에드와도 새버린 Eduardo Saverin, 전설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 Jim Rogers, 영화배우 성룡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이들이 제 발로 싱가포르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에드와도 새버린은 2012년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싱가포르 시민권자가 되면서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고 포브스지에서 소개했다. 짐 로저스는 두 딸들의 교육을 위해- 딸들이 중국문화를 배우고 중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해 결정했다고. 성룡은 아예 국적도 싱가포르로 변경했다.

에드와도와 그의 부인 © ROSLAN RAHMAN/AFP/Getty Image

이들은 많은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캘리포니아도, 뉴욕도, 행복한 사람들의 도시로 알려진 코펜하겐도 아닌 왜 굳이 동남아의 이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선택했을까?


아마도 치안, 교육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 모두가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싱가포르의 세율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나의 한 스웨덴 지인은 다국적 IT 기업의 꽤 높은 관리직으로 근무하며 싱가포르의 PR을 취득하기도 했는데, 오차드의 고급 레지던스에서 살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그는 자신이 스웨덴에서 계속 일을 했더라면 아마도 이런 생활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라며,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이라 할지라도 싱글이라면 무려 56.8%에 달하는 개인소득세를 내고도 크게 혜택을 받을 일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처럼 세금을 적게 내며 그 돈으로 직접 투자를 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이다. (심지어 자본소득세도 없으니 말이다)


싱가포르 또한 소득에 따라 점진적으로 세율이 적용되지만 최대라고 해도 22%에 불과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인재들이라면 이 세금 혜택만으로도 싱가포르로 올 이유가 충분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외국인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세금 혜택에 행복해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부자들도 사람이다. 그것도 누구보다도 돈 계산에 아주 민감한. 그런 이들을 계속해서 압박한다면 결국에는 몇 퍼센트 더 받아내려고 하다가 아예 영영 싱가포르처럼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 '적절한 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누구도 콕 집어 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과연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만날 기회가 있었을까 싶은 다양한 배경의 유능하고 멋진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런 만남들을 통해 나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고, 나에게는 싱가포르는 작지만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인식은 자연스럽게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이어졌다.


물론 싱가포르인들 중에서도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아간다며 불만을 쏟아내거나, 외국인 주재원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건 전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많은 외국기업과 외국인 인재들에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국제적인 환경이 결국에는 본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만약 내가 어떤 나라에서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면 그 나라에 대한 기억도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가포르는 자국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인재들이 모이는 환경을 만듦으로써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구조를 구축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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