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05
진정한 사랑은, 그 대상에게 기대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정말 어렵다. 어려운 것은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인도에서 배워온 것을 이제는 연습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2023년 6월 1일,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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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늘 “사랑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습관이자 둘 만의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 이 말에는 어떤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퉜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했다. 어김없이 찾아온 철학시간에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뭘까요.”
나는 늘 그의 무언가를 고쳤다. 말투를 바꾸길 바라고, 행동을 수정하길 요청했다. 내 멋대로 기대하고 바란 후에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결국 마음이 떠나가고 이별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애착이었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사랑관계와 애착관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꽃이 있다. 그 꽃을 꺾어서 집에 가져온다면 그건 애착이다. 그 꽃이 소중해서 꺾이지 않게 보호해 주고 물도 주면 사랑이다. 나는 사랑인 줄 알았지만 애착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애착했던 거였다.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나를 바꾸려고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자식한테도 하기 힘든 게 사랑이었구나.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신 만이 할 수 있다.’라는 선생님의 부연설명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사랑을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와 연인의 공통점은, 아주 많은 기억과 감정이 새겨져 있는 관계라는 점이다. 나는 소위 발작버튼이 엄마로부터 자주 눌려졌다. 엄마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 발작하듯이 화가 났다. 어떤 말은 과거의 기억까지 줄줄이 소환한다. 맨 앞 줄의 작은 도미노를 툭 치면 점점 커지는 도미노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듯.
때로는 연인의 작은 행동이 아주 큰 서운함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의 비슷한 기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기억들은 나의 까르마다. 나에게 쌓인 업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들이다. ‘나’라는 결과의 원인이다.
어떤 기대와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행위하는 것을 까르마요가라고 한다. 기억에 묶이지 않을 때만이 까르마요가를 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의 30년이 넘게 쌓은 이 까르마를 지워보고자 한다. 연인과 쌓았던 기억들을 지워보고자 한다. 진정으로 사랑해보고자 한다.
어떤 자극에 곧바로 반응하는 동물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듯이 엄마도, 연인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므로 경솔하게 말을 할 수도 있고 과거의 기억에 과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몸을 꺾고 뒤집고 늘리는 것만이 요가인 줄 알았던 나는,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요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