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쏭이 Sep 02. 2016

괜찮아, 처음이잖아.

꽤나 다이나믹한 시작


눈물 한 바가지를 쏟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선택과 내려놓기

올해 초, 사표를 제출했다. 거의 6년간 몸담았던 회사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애사심이 깊었고,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해왔기에 퇴사 결심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해외로 이주 하기 전에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내가 과연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낼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는데, 작년 먼저 해외로 간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무기력하게 지냈던 내가 생각났다. 돈을 벌어도 무의미했고, 맛있는 걸 먹어도 타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남편이 걱정되었다. 올해로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 되었으니 그동안 의리가 쌓였나 보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일과 돈보다 더 소중했다. 그래서 내 생활의 8할 이상을 차지했던 일을, 잠시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머리로는 결심했지만, 마음은 잘 받아들이질 못했다. 자유는 좋았지만, 매일 출근할 회사가 없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고, 함께할 친구도 없다는 게 힘들었다. 새로 적응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원래의 나는 밝은 아이였지만, 퇴사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조울증 환자마냥 좋았다가 우울했다를 반복했다. 특히 집에서 맨날 날씨만 체크하는 집순이가 되고 보니 내가 정말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서류상으로 퇴사하는 날,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간의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신기하게도 마음 한편에 시원섭섭했던 것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남편은 나를 위로하며 그동안 수고했다며 격려해주었다. 나는 새로운 시작만 생각했지, 이별은 크게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가지려고만 했지 놓을 줄을 몰랐다. 게다가 어쩜 이리도 욕심과 미련이 많은지.. 나는 버리는 연습이 필요했다.


해외이사가 시작되면서 애물단지가 된 내 주방살림들.



바쁜 백수 - feat. 당분간 외노자의 아내

친구들은 넌 그곳에서도 금방 잘 적응할 거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며, 내가 잡초 같은 생존력과 친화력을 가졌다했다. 아마도 내가 낯가림이 잘 없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이 쉬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똑같은 인간인지라, 처음 이 낯선 땅에 떨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일단 오긴 왔는데.. 그다음엔 뭘 해야 되지? 막막했다. 타지에서 남편만 바라보는 아내가 아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동반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할 일들을 나열해보았다.

- 이사 갈 일반 아파트 구하기 (홍콩 부동산 시세 파악, 지역 환경 비교, 가계와 예산 맞추기)

- 해외 이사 준비 (한국 가구와 가전 처분, 이삿짐 꾸리기, 해외 이사업체 비교, 필요한 물건 먼저 가져오기.. 등)

- 인맥 네트워크 넓히기 (현지인 또는 외국인 친구 만들기, 업계 인맥 넓히기)

- 영어 실력 향상하기 (업무 가능 수준으로, 영어 프레젠테이션)

- 일 시작하기 (포폴, 이력서 작성, 프리랜서 혹은 현지 취업)

- 취미활동 이어가기 (페인팅, 뜨개질, 홍콩 지역 여행, 하이킹 등)


그리고 가계부 정리를 하며, 월세를 체크했을 때 정신이 번뜩였다. 우리가 3개월간 지냈던 곳은 9평 남짓한 스튜디오였는데 거의 월 400만 원에 육박했고, 따져보면 매일 호텔에서 숙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적응 후에 지역 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계획했지만, 홍콩은 투룸 기준 기본 월세가 최소 250만 원 이상이니 이건뭐 헬조선을 탈출했더니 날강도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하나 만만한게 없었다. 월세가 통장잔고를 퍼갈때마다 내가 진짜 외국에 나와 도전이라는 걸 하고 있고, 그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큰 지출이 있다는 걸 계속 되새겼다. 시간은 곧 돈이었고, 멍이나 때리고 조울증 따위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잉여는 이제 그만,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보자


하찮지만 작은 시작

위에 적어둔 리스트 중에 반 이상은 실행했고, 나머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중에 요즘 진행 중인 것이 '일 시작하기'이다. 지난달에 포폴을 조금 정리해서 behance에 올려두었더니 신기하게 잡 오퍼가 몇 군데서 들어왔다. 아직은 포트폴리오가 완성이 아니라서 영어 인터뷰를 바로 할꺼라곤 예상치 못했고 시간과 준비가 부족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친구들이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편하게 도전해볼 것을 적극 권장했다.


그렇게 처음엔 앱 UX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두 번째는 스타트업 디자이너로, 총 두 번의 인터뷰를 최근 2주 사이에 경험했다. 프리랜서 일은 40여분의 전화 인터뷰였고, 스타트업은 1시간여의 직접 인터뷰였는데 면접관 둘 다 미주권 유학파인데다 현지인 수준급의 영어실력이어서 말이 어찌나 빠른지... 그들은 쉴새없이 말을 쏟아냈다. 100퍼센트 자신있게 다 알아들었다고는 말못하겠지만, 대화는 원활하게 진행된 편이었다. 나는 원래 면접 볼 때 극도로 긴장하는 편인데, 이 또한 경험이다 생각하니 영어였지만 쫄지 않을수 있었고 내 의견을 나름 잘 전달할수있었다. 그들 서비스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 던지는 것도 몇번 성공했다. 인터뷰 준비로 영문 UX, UI 관련 글들을 많이 읽고 공부하게 되었으니 시작은 미약했지만, 점차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아참, 면접 결과는 긍정적으로 흘러갔는데, 업무량과 급여에 있어 약간의 이견이 있었기에 더 이상 진행하지는 않을것 같다. 해외에서 취업 가능성을 확인할수있었던 좋은 기회로 여기고, 이제는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에서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