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소녀의 말안들인 길들이기 프로젝트
긴급 우주 통신: 말안들인, 또다시 사고를 치다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 전, 우리 집에 거주 중인 외계인 말안들인(코드명: ADHD-7세-초2형)에게 또 하나의 배드 뉴스가 도착했다. 이번엔 지구인들의 "방과후 로봇수업"에서 영구 퇴출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최근 몇 달간 말안들인의 뇌파 신호가 상당히 안정화되어 있었기에, 모성에서는 '드디어 이 녀석이 지구 적응에 성공하나?'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방학을 불과 며칠 앞두고 또다시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사건은 말안들인의 과거 행적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지구인 동급생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거나, 입에서 욕설을 동반한 독성 가스를 분출하지도 않았고, 그저 다른 지구인 형의 로봇을 발로 '밟으려는 시늉'을 잠깐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구인들의 평화주의적 문화에서는 이런 위협적 시뮬레이션 행동조차 교실의 우주적 평화협약을 위반하는 공격적 행위로 간주되어, 결국 우리 말안들인은 방과후 로봇수업에서 영구 추방당하고 말았다.
외계 과학자의 숨겨진 재능
사실 말안들인은 외계행성 출신답게 이과적 학문에 놀라운 재능을 보인다. 로봇 조립이나 과학적 지식 습득에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몇 시간씩 집중하여 깊게 탐구하곤 한다. 지구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복잡한 과학 용어나 까다로운 만들기 조립 설명서도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분석해 낸다.
로봇 조립은 말안들인이 지구에서 그나마 잘하는 몇 안 되는 특수 능력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한 방과후 수업만큼은 조용히 다녀주길 바랐는데... 역시 외계 전투종족의 일상은 조용한 법이 없다.
말안들인을 성공적으로 지구에 정착시키기란 정말 어렵다. 우주 육아 난이도로 치면 확실히 헬 모드라 할 만하다.
지구인들의 놀라운 관용 정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아직까지 말안들인이 지구 학교에서 왕따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반 지구인 성인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수시로 분노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외계인과는 진작에 외교 관계를 단절했을 텐데,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라 그런지 지구 아이들의 포용력은 정말 우주만큼 넓었다.
말안들인 길들이기 프로젝트
더욱 믿기지 않는 사실은, 말안들인이 요즘 같은 반 지구인 여자아이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인 여자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야무진 개체인데 (코드명: 똑순이), 이 아이와 함께 있으면 말안들인의 공격성 지수가 현저히 낮아진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다가 숟가락으로 식판을 내리쳐 소음을 발생시키려 할 때, 똑순이가 "말안들인! 숟가락은 영양 공급용 도구야"라고 한마디 하면, 놀랍게도 화를 내지 않고 순순히 영양공급 모드로 전환한다.
같이 다니는 필라테스 운동 시설에서도 똑순이가 "말안들인! 지구 선생님 지시사항을 수행해야지."라고 하면, 선생님의 말을 듣기 위해 집중 모드로 전환한다.
수십 년 경력의 지구 교육 전문가들도 실패한 “말안들인 길들이기 프로젝트"를 겨우 만 7세 또래 지구인 소녀가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건, 똑순이는 가끔 말안들인이 보이는 포악한 외계 행동에 대해 지구인 가족들에게 변호인 역할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똑순이와 같이 다니는 필라테스 학원이 끝났을 때, 똑순이를 기다리던 친언니(지구인 청소년 개체)가 "저 말안들인... 공격에 특화된 사나운 개체라는 소문인데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우려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똑순이는 마치 외계 생물학 전문가처럼 "말안들인 분노 모드로 전환 안 되면 괜찮아"라며 담백하게 전문적 소견을 제시했다.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똑순이는 단순히 말안들인을 길들이는 것을 넘어서, 그의 공식 대변인이자 지구 내 홍보대사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족 발견: 은밀한 외계인 네트워크
오늘 말안들인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의외의 첩보를 입수했다. 교실 밖에서 말안들인을 기다리는데, 같은 반 지구인 아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수줍게 "저도… **약을 복용해요"라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번역 오류인가 싶었는데, 다시금 "저도 감정 제어가 어려워서 ADHD 약물을 복용하고 있어요"라고 명확하게 재전송해 주었다.
같은 반에서 말안들인의 동족을 발견하게 되다니!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까지 지켜본 바로는 이 말안들인은 우리 집 말안들인처럼 전투종족 외계인은 아닌 듯 보였다.
내가 "ADHD 외계인인데 너는 참 차분하고 지구 선생님 지시도 잘 따르는구나"하고 칭찬했더니, 지나가던 지구인 아이가 이를 엿듣고는 "아니에요. 쟤 막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고 종종 친구들도 공격해요"라는 기밀 정보를 제공해 왔다.
역시 말안들인은 말안들인이구나. 숨길 수 없는 그들 종족 고유의 특성이 있다:
수업시간 중 자유 이동 모드 활성화
승부욕 과다 분비 및 전투모드 자동전환
집중 상태에서 다른 자극 제시 시 강력 반발 반응
갑작스러운 랜덤 토픽 전환 등등...
그 말안들인 동족은 자신을 "오남매 중 막내"라고 자기소개 프로토콜을 실행한 후, 갑자기 "기생태아에 관심 있냐"는 둥 "어떤 여자 동성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를 열 명이나 낳았다"는 둥... 다소 엉뚱한 우주 정보를 전송해 대었다. 하지만 공격형 개체로 보이지는 않았다. 말안들인 종족에는 여러 아종이 존재하는데, 아마 이 개체는 정보 수집형 외계인인 듯했다. 우리 집 전투형 말안들인과는 확실히 다른 타입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 말안들인이 너무 대놓고 공격형이고 눈에 띄어서, 저 말안들인은 대체로 스텔스 모드로 은신하며 조용히 지내는 듯 보였다.
외계인 개체수 증가 현상
작년에도 올해도 말안들인의 반에는 최소 2명의 ADHD 동족이 있다는 사실이 자못 놀라웠다. 지구에서 말안들인 개체 수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사실 내 20년 지기 친구의 딸도, 운동 시설의 필라테스 강사 아들도 모두 말안들인이다. 남편 잠잠맨(잠을 매우 좋아하는 지구인 개체)의 회사 동료 딸도 말안들인인 걸 보면, 말안들인들은 이미 전 세계에 퍼져서 지구인과 융화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긴 최초의 ADHD 외계인 말안들인에 대한 유래는 원시시대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지구에서 그들의 역사는 곧 인류 역사만큼 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부분은 콘서타나 메디키넷 같은 위장용 약물을 복용하고 지구인인 척 은신하며 지내지만, 우리 집 말안들인처럼 외계 전투종족의 유전자가 강하게 발현되어 약물로도 컨트롤이 안 되는 개체도 더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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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거친 우주 핏불테리어 한 마리를 사육한다는 마음으로 정신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