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나에게 지독하게 아팠던 시기였다. 나는 연초 부터 나에게 에너지가 없다는 걸 인지했다. 연초에 친척 결혼식으로 뉴욕에 가족들과 함께 갔는데, 자유롭게 시간이 있다 해도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이 정말 없었다. 5년 전에 여행을 와봤다고 하지만 직접 살아본 곳도 아니고, 그렇게 흥미가 없을 만한 여행지가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뉴욕에서 급하게 이틀 정도 짧게 칸쿤에 가게 되었는데, 물론 올 익스클루시브 호텔이지만, 호텔에서만 하루 있고, 하루는 꽤나 아파서 식은땀으로 뒤덥힌 채 방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바로 한국으로 들어왔으나 나는 여행의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일반적인 나 였다면, 뉴욕이나 칸쿤에서도 혼자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거나 공연 등도 찾아보고 걸으러 다니는 등 자유 시간을 만들어 썼을텐데 그럴 의지가 전혀 없었달까. 그렇게 나는 올해 시작 부터 어느 정도 소진된 상태였다. 봄과 여름 동안 그나마 있는 에너지를 끌어 모아서 쓰고 나니 불에 타버린 상태로 완전히 소진되어 한동안 힘들어했었다.
그렇게 올해 여름 나는 소진되어서 한동안 '왜' 움직이고, 운동하고, 일하고, 사는지를 잃어버린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도 거짓말 처럼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는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기복 없이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나란 사람은 에너지가 있었다면, 원하는 바를 해보려고 고군분투 했을 것 같은데 확실히 어쩌지 못하게 완전히 에너지가 빠지다 보니 멈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정말 낯설고, 묘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나의 상태가 슬프다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기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라보고 있을뿐이다.
소진되었다고 해서 만사가 귀찮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살아가는데 '의미'가 중요한 나에게 그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은 꽤나 낯설기 그지 없다.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서, 뜻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서 좌절해서 멘탈이 나가거나 슬퍼하고 괴로워한 적은 많았다. 다음이 보이지 않아서 깜깜하기도 했다. 이전에 그런 감정과 상황 들은 내가 '원하는 바'가 분명이 있었고, 그와 반대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던 상황이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아예 '원하는 바'를 상실한 느낌이랄까. 사는 '재미',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라서 정말 낯설다.
여름에 브런치에 적었던 여러 글에서도, 회고글에서도 언급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위에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 응원과 조언을 들었고, 현실적으로 '그럴 때가 있다. 지나간다.', '운동이나 투자를 해라','여행을 가라', '주의를 돌리기 위해 취미를 만들어라' 등의 이야기도 있고, '사주나 타로를 보라', '삼재가 아니냐','신점도 괜찮을 것 같다.'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아침에 크로스핏 하고 출근하는 루틴과 주말에 교육 일정으로 머리는 멍하지만 몸을 움직여서 가기로 했거나, 가야할 곳을 향하고 있어서, 운동을 하라거나, 취미를 즐기거나, 쉬라는 말이 나에게 크게 유효하진 않았다. 멘탈을 잡으라는 말 또한 나의 귀에 스쳐흘러갈 뿐, 정신이 들게 하진 않았다.
한편 '사주','타로','신점'의 단어가 나를 사로 잡았다. 나는 무교지만, 본디 종교나 사주, 타로, 신점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이 있는 편은 아니다. 엄마가 절에 가자고 하면, 아주 가끔 1년에 한 번 정도 동행하기도 하고, 제제사 대신 추모 예배를 드려야 할 때도 추모하는 자리니까, 잘 참여한다. 어릴 때는 나는 수녀님들이 선생님으로 계셨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했다. (돌아보니 나의 종교 경험이 매우 다양한 것 같다.) 그리고 '신점'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신병'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내가 저항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으로써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을 마주 했을 때는, '인간이 아닌 신'이나 '자연'을 찾고, '믿음'으로 상황을 이겨내는 흐름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희망이 없어지고 미래가 불안하고 부정적일 수록 '종교'의 파워가 강해지는게 일반적이지만, 요즘 세대는 종교를 믿을 때 들어가는 인풋이 많고, 부담스러워서, 대안으로 사주와 타로를 찾게되어 성행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때 답답해서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앞 날이 깜깜한 느낌이라서 좀 답을 찾고싶었는데, 지금은 기력이 쇠해서 답이 있다해도 별로 흥미, 관심이 없달까. 그래서 조금 더 있다가 생각이 계속 나면 가봐야지 싶었는데,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고 추천 해주신 어떤 곳은 너무 용해서(?), 내년 여름 까지 예약이 꽉 차있었다고 들었다.(아 예약도 정말 쉽지 않은 요즘 현대 사회다 정말.ㅋㅋ) 그래서 가격 부담도 없고 아주 접근성이 쉬운 타로를 보았다. 가격 부담이 적으니까 원하는 말이 아니면 다시 가서 보면 된다는 지인의 말에 넘어갔다... 그런 정도라면 무슨 신빙성이 있다는 거냐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멘탈을 잡기 위한 상태에서는 신빙성이랄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미래는 가봐야 아는 것이고 그 가는 길이 불안하다면 조금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근거를 획득 하는 것으로 그 역할은 충분하지 않나 싶었다. 오프더레코드로 원하는 말은 들었지만, 여기에 기대를 더하면 안 될 것이고, 기대를 할 힘도 없으니, 기분 전환은 잘 할 수 있었다.
내가 방전된 상태라고 하지만, 신체는 멀쩡하고(감기로 힘들었던 것 빼면), 가족들도 건강하고, 회사가 아직 건사하고 나의 밥그릇은 아직 유지되고 있고, 먹고 잘 곳도 있고, 운 좋게 신경써주는 친구 또는 지인이 있다. 이미 나는 가진 것도 많고 충분히 주어진 것과 삶에서 얻은 것에 감사하기도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소모나 스트레스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리니까, 정말 모든 것에 놓거나,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아무리 보이기에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들, 마음과 멘탈이 사는데 전부라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정말 어떤 것을 먹고 입고 쓰는지 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사는지가 훨씬 중요하고 근본인데,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과 멘탈이 어떻게 흐르고, 구르고 있는지 경시했던 것을 반성했다.
지금 방전된 상태라서 믿기지 어렵지만, 시간을 가지다 보면, 에너지도 충전되고, 나의 마음과 멘탈도 천천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 글을 쓰다보니 생각하는 것으로 부족한 것 같다. 진짜 믿어보면, 생각하는 것 보단 좀 더 나아지는 속도가 붙을 것 같다. 과거 부터 인간의 힘이 부족하면 마음을 믿었던 것 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방법에 기대봐야겠다. (원하는게 생긴다면 분명 이루어 질꺼라고 간절히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