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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Feb 15. 2024

손들어 볼까요

“예쁘지만 환경 파괴적인 디자인과, 박색이지만 친환경적인 물건.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것인가요? 손들어 볼까요.” 오래전 수업에서 교수님이 던지셨던 질문이다. 우리들은 조금 웅성거리다가 절반쯤 되는 친구들은 예쁜 것, 나머지는 친환경적인 것에 표를 던졌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언가를 파괴하며 만들어진 것이라면 좋아할 자신이 없는데… 그렇다고 못생긴 물건을 내 방에 두어야만 한다면 쓸쓸한 걸…’ 둘 사이에서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다가,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동안 욕심껏 모았던 관엽식물들을 정리한 건, 교수님의 이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대가 원산지인 이 식물들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추위에 약하니 보일러를 때야 했고, 공기가 건조하면 잎이 노랗게 마르니 가습기를, 과습 피해와 곰팡이를 막으려면 서큘레이터를 돌려주어야 했다. 웃자라는 식물에는 식물 생장용 전등도 달아뒀었고. 도시가스를 때고 화석연료로 생산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쓸수록 아름답게 자라나던 식물들. 이 풍경을 좋아할 자신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 내 방 안에 온실(21년 9월호)은 없다. 남은 식물은 별다른 요구 없이 잘 자라주는 10종 남짓이다. 앞으로는 식물방에 따로 보일러를 때지 않을 생각이고, 식물 전구는 중고마켓에 팔고, 서큘레이터와 가습기는 작업실에서 쓰기로 했다. 50개쯤 되던 화분들이 쓸쓸히 사라진 자리를 보니, 즐기는 것이 미덕인 취미에 또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고 있는 건가 싶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친환경적이기는 어려운 일. 여전히 어느 쪽으로도 손을 들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2년 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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