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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Feb 29. 2024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냥 풀을 그린 그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죠?” 북페어에서 받은 질문이다. 식물세밀화는 풀을 그린 그림이 맞고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각자의 감상법이 있기 마련. ‘보이는 그대로니 천천히 감상해보시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다른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을, 그 잎사귀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은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 사이를 물길 같은 잎맥이 가로지른다. 울퉁불퉁한 산맥 사이로 하얀 협곡이 구불거리거나, 평행한 녹색 이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물세밀화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작은 식물의 세계가 작아만 보이지 않도록,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고 확대 비율을 높인다. 털, 턱잎, 수술과 암술, 꽃받침, 줄기의 단면… 전체 모습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작은 디테일도 따로 담는다. 이 작은 풍경들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2년 10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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