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며칠 앞둔 날을 기억한다. 3년간 공부에 매달렸지만, 성적은 목표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잠들며 수능 시간에 맞추어 모의고사를 풀었다. 점수를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점수라도 받기 위해서 이제껏 쌓아온 리듬을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능 시간표에 맞추어 하루 종일 모의고사를 풀었고, 늘 틀리던 것을 틀렸고 늘 맞는 것을 맞췄다. 채점한 시험지를 추슬러 가방에 넣고 저녁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은 운동장 건너편에 있어서 조금 걸어야 했다. 항상 같은 시간에 똑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는, 늘 같았던 익숙한 길. 11월이 되자 해가 무척 짧아졌고 아직 이른 저녁인데 벌써 한밤중처럼 새카맸다. 문득 그 어둠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11월을 처음 겪는 것처럼.
올해도 11월이 돌아왔다.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고, 다만 앞선 계절에 벌여 놓은 일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묵묵히 일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해가 짧아졌고 아직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한 시간에 이른 밤이 찾아온다. 이제 이 어둠이 더 이상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너무 빨리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태양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계절이 벌써 그립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3년 1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