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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Apr 09. 2020

사회적 트라우마의 적막함 속에서

COVID19을 비롯한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자세

안녕하세요

이제 왠지 모르게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삶의 환경이 급격히 바뀌어 있고,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은 상황이 되다 보니 그 불확실함과 위험성이 우리를 이제 점차 지치게 하기 때문이겠죠. 인류 역사상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동시에 같은 문제로 심각하게 악영향을 받은 적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공동 위기를 겪으며 그 낯섬과 위험성, 그리고 더불어 찾아오는 지속적 고립감과 불확실성 안에서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힘겨워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되다 보니 이제 "코로나우울증 (Corona-Blue)"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도덕적 해이의 현상과 정치적 혼란의 모습들이 많은 분들을 더 우울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할 것 같던 2020년이라는 숫자가 주던 새로움과 설렘도 온데간데 없어져서 다양한 형태의 준트라우마적 영향요소들이 일상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온전한 기분과 분명한 의지를 유지하려면 어떤 생각과 자세가 필요할까요?


수녀로서 근 30년을 수녀원에서 생활해온 Mary Perry수녀님은 3월 15일 NJ.com에 투고한 기사를 통해 자신은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해 왔다고 하면서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집에서 생활하게 된 현대인들에게 이런 위기상황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조언했습니다. 


Mary Perry수녀님 (사진 출처 NJ.com)


첫째, 매일 계획을 짜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그다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계획대로만 하면 그 효과가 기대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생체리듬 (Circadian regulation)이 활성화되고 유지되며, 매일 "이제 뭐하지?"같은 고민을 매시간마다 할 필요가 없어져서 매 순간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피로감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결정과 판단의 피로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이미 개인사업을 하면서 최고책임자의 의자에 앉아서 매 순간 결정과 판단을 해보셨던 분들은 너무 잘 알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업가 분은 그래서 가끔 진지한 말투로 "나도 가끔은 누가 내게 시키는 것만 하고 싶어요"라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도 이런 이유로 본인의 판단과 결정에 대한 피로감을 줄이려고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생활하고 있죠. 그리고 이런 규칙적이고 계획된 생활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자아정체력 (Agency)"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입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런 일정들을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그런 순간마다 작은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기고, 이것은 결국 자신의 자아정체력을 세워주게 됩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남자분들이 몇 주만에 "군기"라는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보면 매일 규칙적이고 계획된 일정을 완수하면서 그 힘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에 관련된 서적인 "몸은 기억한다"의 저자인 코크 박사는 트라우마적인 상황은 사람의 "예측가능성"을 파손해서 그 사람을 더욱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한다고 하며, 규칙적이고 계획된 일상은 매 순간을 "예측 가능"하게 느끼게 해서 그 사람을 보다 자신감 있고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쉽게 우울하고 불안해질 수 있는 요즘, 자아정체력이 위축되신 분들이 많을 텐데, 이런 식으로 루틴을 짜서 생활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두 번째, Mary 수녀님은 집에서 가족 간에 서로 "의도적으로라도 사랑할 것/사랑할 의지를 보일 것"을 강조합니다. 이제 집은 아침에 회사와 학교로 각자 떠났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TV를 보던 그런 휴식공간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 가족이 머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각자의 공간과 영역도 쉽게 침해받아서 별 것도 아닌 일로 충돌이 생길 수 있고, 서로가 이런 불필요한 마찰과 충돌 속에 쉽게 예민해지고 지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나 회사에서  캠프나 수련회를 가본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런 분위기와 흡사합니다. 재미도 있지만, 뭔가 피곤하고, 예민해져서 옆 사람에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빨리 상황이 바뀌어 집에 가고 싶어 지는 분위기죠.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남을 탓"하거나 "자기를 탓"하게 되는 경향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탓을 하거나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하고 질문하는 것은 지금 의미가 없습니다. "왜(Why)"라는 질문을 지금 해봐야 그 답을 찾기도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없기에, 서로 적정한 거리와 공간을 유지하며 배려와 존중속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무척 필요한 상황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코크 박사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안전과 이완을 위해 상호 연계되고 조화 (in tune) 되며 동질화된 조건 속에서 (In sync) 공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포유동물은 이렇게 동질화된 조건 속에서 서로 공명하며 좋은 리듬을 유지할 때 안전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코크 박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합창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학교나 교회 등의 기관, 또는 회사 모임이나 친목회에서 여럿이 합창을 해보신 분들은 그 힘을 이미 아실 겁니다. 기회가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합창하고 노래를 하면서 서로 같이 공명하며 그 울림을 느껴보면 가슴을 채우고 있던 우울함과 불안이 그 울림으로 인해 조금은 대체되지 않을까요?



셋째, Mary수녀님은 이런 시간이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자신을 더 배울 수 있는 "자기 탐구 (Self Reflection)"의 시간이 된다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다 보면 자신 안에 있던 우울함과 분노 같은 어두운 면(Dark side)이 떠올라서 그런 감정과 기억을 직면하게 되는데, 그런 것을 대부분 불편해하고 기피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자기 안에 있던 그런 어두운 면을 직면하고 배우며, 자신과 대화하고, 더 나아가서 가족이나 친구와 그런 주제에 대해 대화하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나아가 옆 사람의 이야기와 기억을 단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은 훗날 돌이켜보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듣는 것이 어렵다면 그냥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엇이 나를 지금 이토록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는지만 생각해 봐도 자신의 생각과 철학, 또는 가치관을 점검하고 더 건강한 것으로 세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바쁘게만 살면서 그런 거미줄 같은 사회관계 속에서 정의해온 자신을 순전한 개인의 자아로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회사 김 과장, 누군가의 엄마, 누구의 사업 파트너로서의 내가 아닌 순전한 나로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런 자신을 위해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조금씩 개인 시간을 갖고 자기를 위한 예식(예를 들어 특정 장소에서 혼자 커피를 마신다던가, 그림을 그린다던가, 기도를 한다던가)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관념만 조금 완화한다면 이 시간은 일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귀한 휴식시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머물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러분 안에 있던 불필요한 불순물을 정화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여러분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기꺼이 존중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원합니다.



꽃피는 계절, 야구하는 계절, 그리고 화사한 계절이 되었지만 현실은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심각한 경우에 어떤 분들은 죽음을 직면하거나 죽음에 아주 가까이 있다고 느끼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절박한 분위기의 사회적 트라우마 앞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가장 반대되는 힘은 "사랑"이고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연결됨"입니다. 비록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서로 어떤 형태로든지 연결되려고 노력한다면, 이런 상황도 조금은 덜 무거운 마음으로 견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흐름으로 담담하게 지내다 보면 우리들을 둘러싼 우울하고 불안한 기운도 서서히 새로운 생명의 기운으로 전환되어 갈 것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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