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내에서도 다양한 업무가 존재합니다. 먼저 사업 단위로 은행, 증권, 보험, 벤처캐피탈, 자산운용사, 카드사 등으로 나눠지고 각각의 회사는 영위하는 사업이 모두 다릅니다. 개별 회사 내에서도 많은 업무가 존재하죠. 제목에서 쓴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증권사 리서치 부서에 재직하는 전문 연구원에 한정하겠습니다. 각 회사 내 투자 의사 결정 혹은 경영 전략 결정을 위한 연구원이야 어디든 존재하지만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업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애널리스트 리포트 중 매도 의견이 없다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이슈가 아닙니다. 실제로 매도 의견임에도 '매도'라 못 쓰고 '중립' 혹은 '보유', 심지어 '매수'의견의 리포트를 내고, 이런 실상을 모르는 많은 투자자들이 잘못 오도되어 잘못된 투자 판단을 하는 일에 대해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15년 국정감사에서도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매도 의견 리포트가 전체의 0.1%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최근 5년 간 국내 10대 증권사의 리포트 4만 9580건 중 매도의견은 23건, 10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총 1만 8707건 중 매도 1835건으로 9.8% 수준입니다(출처 : 더팩트 기사 참조)
금융투자협회에서 매도 의견을 내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밝히고, 또는 증권사 자체적으로 매도 리포트를 내도록 하는 자정의 노력이 있으나 매수 의견의 관습을 깨는 정도의 강한 변화는 아닐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애널리스트는 왜 '매도'리포트를 내지 않는 것일까요?
[1] 업무 구조
첫 번째 원인은 리서치 부서가 담당하는 업무에 기인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증권사 리서치 부서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리서치 부서는 투자 대상 기업을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자본 시장을 효율적이게 하고, 투자자에게 올바른 투자 판단을 위한 정보와 투자 의견을 제시하는 부서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리서치 부서는 이러한 역할 보단 주식 세일즈를 지원하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증권사의 여러 비즈니스 중 '브로커리지(Brockerage)' 비즈니스가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로부터 주식(또는 그 외 증권사 전산 시스템을 통해 거래되는 모든 것들) 주문을 받아 주문 입력 및 매매를 체결시키고, 그 대가로 매매 금액의 일정률을 수수료로 수취하는 형태의 비즈니스입니다. 투자자가 거래소 시장에서 매매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매매업 및 투자중개업 인가를 받은 증권회사(또는 금융투자회사)에 매매거래계좌를 개설해야 하며, 동 계좌를 개설한 증권회사를 통하여 주문을 제출하여야 합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일반 개인 투자자는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이용하거나 지점 직원에게 직접 주문을 위탁하고, 기관 투자자는 증권사의 법인 영업부서를 통해 주문을 위탁, 매매를 실행합니다. 리서치 부서의 기업 분석 리포트는 회사에게 수수료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자에게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특히 거래 금액이 큰 기관 투자자의 경우 회사에게 안겨주는 수수료 수익이 크기 때문에 애널리스트가 직접 방문하여 세미나도 많이 진행하고 전화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법인영업부서 직원들과 함께 할발할 영업 활동을 하게 됩니다.
증권사의 수수료 수입은 매매가 많을수록 증가합니다. 그러므로 증권사의 입장에서는 빈번한 거래를 일으킬 유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투자자에게 유익한 거래인지, 불리한 거래인지는 사실 증권회사 입장에서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수수료 수익을 많이 올리는 것이 증권회사의 목적이니까요. 거래의 시작은 '매수'입니다. 매수 거래로부터 매매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식 영업을 위해 매수 의견이 대다수인 기업 분석 리포트가 발간되는 것입니다. 매수를 말하기 위해선 해당 종목이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실적 추정치는 장밋빛 전망으로 쓰여집니다. 물론 이것은 애널리스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특정 산업/특정 기업에 대해 담당 애널리스트만큼 깊이 알 수는 없죠. 환경 자체가 세일즈를 위한 분석이고, 또 기업 가치에 대해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할 입장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포커스가 '매매 거래가 일어날 만한 주식' 또는 '매매를 일으킬 만한 이벤트'에 맞춰져 있다 보니 하나의 관례로 굳어졌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표 기업에 대해서는 미래 실적 추정치가 과거에 비해 굉장히 정교해졌으나 다른 대다수의 종목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매도 의견도 거래를 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매도 리포트가 나오면 해당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므로 주식 세일즈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매다 시장이 커졌다 하더라도 아직 국내 시장은 제약이 많고 숏(Short) 보다는 롱(Long) 거래가 훨씬 많기 떄문에, 공매도 거래를 위한 매도 리포트는 아직 나올 환경이 되지 못합니다. 애널리스트의 매도 의견은 대면, 또는 전화를 통해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2] 기업과의 관계
16년 초 하나투어는 교보증권 애널리스트에게 기업 탐방을 금지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해당 애널리스트가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애널리스트와 분석 대상 회사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입니다. 물론 회사 측이 갑의 위치에 있죠. 애널리스트는 본인이 담당하는 기업을 분석하는 데 있어 그 회사의 IR(Investor Relations) 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정보를 얻음으로써 분석 리포트를 작성합니다. 그런데 해당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쓰면 기업 측에서는 불쾌할 수 있겠죠? 게다가 IR 부서의 업무 목표 중 하나가 안정적인 주가 관리라면 더더욱 곤란할 것이고, 주가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가 곱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3] 투자자의 반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매도 리포트, 주가에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리포트를 발간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반발이 상당합니다. 부정적인 리포트를 낸 애널리스트가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전화를 받고 많이 시달렸다는 기사도 있었죠. 협박 전화까지... 이런 성숙지 못한 투자 문화 또한 리서치 분서의 매도 리포트를 가로막는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