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진담-쇠도둑2

by 글도둑

“이보게, 주모. 오늘 박가네 댁에 들렸는데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을 하던데. 여기는 안전한가? 내가 여기서 며칠 묵고 싶은데 마을에 괴물이 있으면..."


주모는 슬쩍 웃더니 헛소문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 그러면서 숙박할 거면 하루에 국밥 한 그릇은 덤이라며 말했지. 나는 일단 3일 정도 있을 거라고 하고 값을 치렀어. 박가네에서 곰 가죽을 주고 은 조금과 곡식, 그리고 면포를 넉넉히 받아왔거든. 그때는 아직 화폐란 게 제대로 도입되지 않아서 물물 교환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 참 먹고살기 힘든 시기였어. 물물 교환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물건을 잘 파악해야 했거든. 물론 통용되는 물건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야. 나처럼 떠돌이는 부피가 큰 물건을 들고 다니기 힘들었지. 그래서 나는 주로 짚신을 비롯한 신발 종류나 동물 가죽 따위를 취급했지. 그걸로 곡식이나 귀금속 등으로 바꾸곤 했어. 그렇게 얻은 곡식은 주로 주막에서 숙박비로, 귀금속은 사고 쳤을 때 무마하는 뇌물로 쓰곤 했지.


한 번은 호랑이 잡고 얻은 가죽을 금과 은으로 바꿨는데 너무 무거워서 거대한 바위 밑에 묻어놨어. 시간이 흐른 뒤, 그 바위를 찾아가려는데 어딘지 모르겠더라고. 그 근처에 가긴 했는데 바위는 쪼개졌는지 어디로 굴러갔는지 보이질 않았어. 산 입구 쪽에 있던 바위였는데 그 옆에는 마을이 생겨버렸더라고. 그 뒤로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지. 대신 소비를 즐기기 시작했어. 돈이 있으면 다 쓰는 나쁜 버릇이 생겨버린 거야. 벌어서 쓰고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벌기 시작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지. 화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재화를 축적하기 어려웠어. 집과 가문이 있다면 축적이 가능했겠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했으니까.


어쨌든 국밥 한 그릇 든든히 먹고 한숨 자려고 방에 들어갔어. 주막은 보통 두 개의 방을 손님에게 내줬는데 한 방은 나처럼 보부상이나 상인에게 내어주고 한 방은 양반 나으리처럼 높으신 분들이 이용했지. 차이는 별로 없었어. 그저 덜 붐비고 더 깨끗한 방을 양반들이 쓰는 정도? 물론 손님이 많으면 그런 차이가 무의미했지. 내가 들어갔던 방은 보부상들이 먼저 묶고 있었어. 내일 아침부터 산을 넘어가려는지 일찍 자려고 하더군. 나는 슬그머니 들어가서 구석에 누웠어. 그때 옆에서 누가 슬쩍 말을 걸더군.


누렇게 변색된 도복에 허름하다 못해 구멍 송송 뚫린 갓을 쓴 사람이었어. 어둑한 방을 호롱불 하나가 밝히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초롱초롱한 두 눈만 빛났지.


“이보게, 혹시 자네도 괴물에 대한 소문을 들었나?”


나는 그를 살짝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어. 행색은 거지 같은데 옷은 도인처럼 보였고 눈은 맑았으니 도통 어떤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간 거지.


“그렇소만? 혹시 그쪽도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끌고 나갔어. 주막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로 가더니 그는 주변을 살피고 말을 꺼냈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나는 저 윗 지방에서 소문이 자자한 도사라네. 혹시 전우치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군. 이곳에 탐욕스러운 돼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쇠를 먹는다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요. 돼지인지는 모르겠소만. 댁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는 사냥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오. 저기 박가네 첫째 아들에게 괴물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았소이다.”

자칭 도사 전우치라는 사람은 내 말을 듣고 실망스러운 기색이었지. 이름을 떨치려고 도사 수행을 하는 사람 같았어. 종종 그런 도사를 만나긴 했지. 산속에서 수련하다 지쳐서 내려온 도망자들. 진정한 도사라고 하기엔 부족한 애매한 사람들이었지. 기껏해야 부적 한 장 쓰고서 액운을 막아준다며 돈을 달라고 떼쓰는 부류라고 생각했어. 말이 퉁명스럽게 튀어나가더군.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어.


“그래서 대체 원하는 게 뭐요?”


그는 갓을 왼손으로 살짝 추켜올렸어. 살짝 그늘졌던 얼굴이 드러났지. 그는 훤칠하게 생긴 청년이었어. 훤하게 뻗은 콧대가 유난히 높아 보였지. 그는 웃고 있었어.


“댁이 생각하는 그런 도사 흉내 내는 사기꾼이 아니라네. 자, 그럼 진정한 도사는 무엇이냐! 도사는 바람을 다스리고, 마른하늘에 비를 내린다네. 그리곤 땅을 접어 달기도 하고 꽃을 검처럼 휘뒤를수 있지!"

그가 손바닥을 휘두르자 살랑거리는 바람이 살짝 불었어. 하늘에서는 비가 몇 방울 떨어지는 듯 했어. 그러더니 먼 거리를 한 번에 펄쩍 뛰더니 바닥에 한 바퀴 굴러서 착지했어. 벌떡 일어섰는데 어느새 바닥에서 뽑은 꽃이 한송이 들려있었어. 강하게 휘두른 꽃은 살벌하게 공기를 찢는 소리를 냈지만 꽃잎이 나풀거리며 다 떨어졌어. 그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꽃대만 남은 꽃으로 툭툭 털었어. 그러더니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지.


"가련한 사람을 돕는 게 도사의 일이라! 무릇, 생선은 대가리부터 썩는 법, 이곳에 다른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거머리가 있다고 하기에 이 도사 전우치가 친히 왕래했다네. 자, 이제 알고 있는 걸 털어놓을 준비가 되었는가? 너무 놀라진 말게나. 허울뿐인 말만하던 도사를 보다 진짜를 본건 이번이 처음이겠지. 그러나 결코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걸세."

나는 그가 더 못 미더웠어. 저런 놈이 도사라니. 참 말세다 싶었어. 내가 본 그는 허영심이 넘처서 나대고 싶은 어린아이와도 같았거든. 힘을 처음 얻은 사람처럼 말이야. 나는 그에게 말을 툭 던지고 돌아섰어.


“내가 말한 게 전부요. 나도 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 하나도 못 들었으니 말이오. 나는 이만 자러 가겠소이다.”


주막의 작은 방에서 보부상들의 코골이를 들으며 내가 겪은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떠올렸어. 내가 만났던 괴물들과 도사들, 사람들과 짐승들, 악인과 선인들. 그들이 교차하며 머릿속을 간지럽혔지. 그들은 지금도 살아있을까.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이미 이승에서 사라진건 아닐까. 오늘 밤에 만난 도사 놈 덕분에 심란해서 잠을 설친 거지.


툭!


나는 누군가 나를 건드는 감촉에 번뜩 눈을 뜨고서 일어났어. 눈앞에는 전우치라는 도사가 빙그레 웃고 있었지.


“자네가 말한 박가네 첫째가 찾는다던데? 가봐야 하지 않겠나?”


주변을 둘러보니 보부상들은 이미 떠난 것 같았고 문 앞 서 서 웃고 있는 도사 밖에 보이질 않더군. 나는 풀어헤쳤던 겉 옷을 대충 꿰어 입고서 박가네로 가기 시작했어. 옆에서 도사도 따라왔지. 옆에서 조잘거리는데 얼마나 귀찮던지.


“이보게. 정말 내 소문 못 들었나? 왕을 꾸짖고, 탐관오리를 벌했으며 그림 속을 거닐었다는 도사에 대해서? 여기가 도성에서 아무리 거리가 좀 있다고 해도 그렇지,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던데..”


“아니, 도사 양반. 가련한 사람을 돕고 싶은 거요, 아니면 그저 이름을 떨치고 싶은 거요? 둘 중에 하나만 하시오, 하나만.”


그러던 중 박가네 첫째가 보였어. 그는 나에게 부리나케 뛰어오더니 엉엉 울며 말했지.


“지난밤에 쇠 도둑이 나타났소이다! 쇠 도둑이! 키는 사람의 두배만 하고 눈과 입에서는 불을 뿜는데 입이 어찌나 큰지 철을 한 무더기나 삼키고는 달아났소! 지난번에 안 줬던 선금을 즐테니 얼른 잡아주시오!”


그는 묵직한 은자를 내 손에 쥐어줬지만 차마 놓지 못하고 부들거렸어. 나는 살짝 힘주어 주머니를 뺏고서 말했지.


“내 노력하리다.”


그때 옆에서 도사는 코를 막고 몸을 살짝 돌리더군. 미간이 찌푸려진 게 이상한 냄새를 맡은 것 같았어. 나는 그를 무시하고 박가네에게 물어봤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시오. 아! 철을 먹고 달아났다는 곳도 볼 수 있소?”


나는 박가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장간 창고로 향했어. 창고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이 가득했는데 불이 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어. 뜨거운 무언가가 지진 것 같달까? 창고에는 쇠 냄새가 가득했는데 쇠뿐만 아니라 기름 냄새와 탄 내도 가득했어. 가득 찼던 것처럼 보이던 창고의 한편이 비어있었어. 박가네 말로는 철괴가 창고 가득 쌓여있었다고 했지. 사람 혼자서는 옮기기 힘든 분량의 철이 사라진 거야. 박가네 머슴 하나가 밤 중에 그 괴물을 봤다더군. 쇠 도둑 말이야.


“제가 봤슈!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슈!”


콧잔등에 큼지막한 점이 있어서 점박이라고 불리는 머슴이었지.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어. 눈동자가 살짝 풀려있는 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


“소피를 보러 잠깐 나오는데, 세상이 너무 밝았어. 그래서 눈을 비비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갔는데 창고에 이상하게 큰 뭔가가 아른아른거리는 거요! 무서워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불이 번지면 나도 타 죽으니까 일단 가 봤죠. 아니 근데 나보다 두배는 커보기는 검은 소처럼 생긴 괴물이 두발로 서있었다는 거 아뇨! 눈과 입에서는 불을 뿜고 철을 한 무더기나 집어삼키고 있지 뭐요. 나는 기절해서 다음 날 아랫도리가 축축한 채로 일어났지만....."


혼자 중얼거리는 점박이와 그를 다그치는 박가네를 뒤로하고 나는 창고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어. 사냥꾼으로 살면서 주변 흔적을 분석하는 능력을 키웠던 게 도움이 됐지. 창고는 생각보다 많이 타지 않았어. 제대로 불을 질렀다면 이 창고가 다 타고 옆에 있는 대장간이나 집도 태워 먹었겠지.


바닥에는 무거운 무언가를 질질 끌었던 흔적이 있었어. 두 개의 줄로 된 흔적이 한번 들어왔다가 더 무겁게 끌려갔지. 바퀴? 두 개의 바퀴로 철괴를 옮긴 걸까. 나는 흔적을 따라가 보려고 했는데 옆에서 전우치가 말을 걸었어.


“이보게, 그 은자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시궁창 냄새가 너무 심한데?”


나는 당연히 무슨 헛소리하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쳐다봤지. 혹시 자기에게 버리라는 개소리면 한 대 때려주려 그랬어.


“아니, 나에게 버리라는 헛소리가 아닐세!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건가! 나는 바람을 일으키고, 땅을 접어달리는 도사, 전우..”


“거 헛소리 그만하시고 왜 은자를 버려야 하는지 말이나 좀 해보죠. 헛소리면 입에 화살촉을 물려줄까 고민 좀 해봐야 되니까.”


살벌한 위협에 그는 은자를 버려야 하는 이유를 털어놨어. 이유는 간단했지. 은자에서 시궁창 냄새가 난대. 다르게 표현하자면 더러운 일로 모은 재산이라 그렇다더군. 누군가의 한이 담기거나 피가 뭍은 재산은 귀신이 붙기도 한다는데 이번에 받은 은자가 그런 환경 속에 있었나 봐.


“그래서? 이걸 버려야 한다? 버리지 않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아까웠지. 그 수전노에게 어렵게 받아낸 건데 말이야. 그랬더니 전우치는 은자에 깃든 원한을 풀어주지 못하면 언젠가는 귀신이 붙거나 불행이 닥칠 거라고 하더군.


“업에 대해서 알고 있소? 업이란 그런 것이오. 설령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닐지라도 업이 담긴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 업을 짊어져야 하는 법! 지금의 왕이 어설프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까닭 또한 익선관이나 곤룡포의 업 때문이지. 때문에 현재 자네가 받은 그 은자는 위험한 물건이나 다름없네.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여간 더러운 일에 엮인 게 아니야.”


나는 잠시 고민했어. 업는 나도 호랑이 사냥꾼 덕분에 대충 들어보았는 데 있긴 한 것 같단 말이지? 실제로 요괴를 만나보기도 했고 나는 신기한 복숭아를 먹고 늙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야. 업이라는 게 충분히 있을 법했어.


“일단은 갖고 있겠소. 쇠 도둑을 쫓다 보면 이 은자에 묵은 원한도 풀 기회가 생길지 모르지. 이 일을 끝내고서도 똑같다면 그때 버리겠소.”


전우치는 한번 씩 웃더니 말했어.


“내 용건은 끝났소이다. 탐욕스러운 돼지를 발견했으니 더 뚱뚱해지기 전에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 먹을 예정이오. 더 지체했다가는 이 마을 전체가 돼지우리가 될 판이니 이만 먼저 가겠소. 연이 된다면 또 보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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