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를 꿈꾸다 Dec 25. 2021

2021년 영화를 통해 재조명받길 바랐던 인물들

노회찬, 최동원, 김종분, 송해, 전태일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연기된 영화들인지 4분기 들어 작은 영화들이 스크린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올해를 넘길 순 없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10월 이후, 가을과 겨울 사이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실제 인물을 다룬 한국 영화들이 꽤 있었다. 특정 인물을 다룬 영화들이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 이 시대를 향하는 어떠한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어떠한 시절을 살았던가? 


그 인물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이 많고, 그래서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더 있기 마련이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없는 투수 <1984 최동원> 


<1984 최동원>(2020)은 무쇠팔 최동원 투수를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이다. 그의 선수생활 중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가 벌인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열흘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7경기 중 5번 등판하여 610개의 공을 던졌고, 4승 1패를 기록하며 롯데 우승을 이끌었다. 1패조차 완투패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미 3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영화 속 최동원은 아직 20대 앳된 얼굴로 등장한다. 체구가 크진 않지만, 역동적 투구폼과, 넘치는 자신감, 특유의 카리스마로 상대팀 타자들을 압도한다. 그에 비해 경기장 밖 모습은 개구지고 순수하고 겸손했다. 만화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의 삶 자체가 만화 캐릭터였던 사람이라 하겠다. 


그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레전드 선수들도 많이 등장한다. 이들의 현재 모습과 당시 경기하던 모습을 번갈아 볼 수 있었다. 롯데의 김용희, 김용철, 임호균, 한문연, 삼성의 김시진, 이만수, 김일륭 선수 등이 인터뷰를 해주었다. 특히 라이벌로 등장한 김시진 선수가 인상적이다. 그는 국가대표 시절 최동원과 4년간 한 방을 쓴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했다. 영화를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를 만드는데 자료 수집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방송사 자료실에도 중계 원본이 없었다. 하이라이트 클립만 남았던 것. 그러던 중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최동원 선수의 아버지가 한국시리즈 중계를 녹화해둔 VHS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었다. 이를 디지털로 복원하면서 영화가 가능해졌다. 



출처: 영화 <1984 최동원>



다시 돌아보는 가족의 의미 <송해 1927> 


<전국노래자랑>(kbs1)의 최장수 mc이자 최고령 현역 연예인으로 활동 중인 희극인 송해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625 전쟁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을 겪었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대한민국을 다룰 것이라 예상도 되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가 연예계에 처음 발을 들이고자 할 때, 아버지의 반대가 컸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가 부모님으로부터 강한 반대를 받았으리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흘러 그의 아들이 음악을 전공하고, 활동을 원한다. 그 역시 반대에 나선다. 본인이 겪으며 이 바닥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3번 반복하여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아들이 남긴 곡이다. 막내딸이 지금껏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아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 아버지는 뒤늦게야 음악을 향한 아들의 진심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이 노래는 손주에 의해 다시 불려진다. 


그는 100년 가까이 살아왔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다. 아내가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다. 아들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해 이른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굴곡진 가정사를 통해,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잘 모르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출처: 영화 <송해 1927>



어머니의 삶은 계속된다 <왕십리 김종분> 


팔순이 넘은 김종분 씨는 왕십리 11번 출구, 행당시장 앞에서 30년 넘게 노점상을 운영하고 있다. 채소를 팔고, 옥수수를 삶고, 가래떡을 굽는다. 자식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아직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노점을 접어도 될 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먼저 떠나보낸 딸이 있다. 1991년 5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중, 충무로 대한극장 인근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어머니의 삶을 바뀌었다. 다른 노동자와 학생들의 장례식에 참여하며 딸의 뒤를 이었다. 왕십리의 노점상은 생계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 딸과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자 집과 같은 곳이다. 딸로 인해 인연을 얻게 된 이들이 지금도 찾아온다. 


영화의 중반이 되면 김귀정 열사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가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남겨진 일기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엿보게 된다. 가난한 판잣집 동네에서 자라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다. 학비를 모으기 위해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과외를 했다.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순수한 열정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했다. 


김귀정 열사가 어머니의 곁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방법은 다양하겠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결이 다른 작품이 만들어진다. 딸은 잃었어도 어머니의 삶은 계속되었다. 아픈 역사, 무거운 현실이 남아있는 한 사람의 삶과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남은 자들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   


출처: 영화  <왕십리 김종분>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 <태일이>


<태일이>(2021)는 전태일 열사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인간적이었던 전태일의 모습이 주로 부각된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퇴근 후 찾아와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창동의 집까지 걸어서 간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법전을 공부하고, 바보회를 조직해 노동운동을 시작하지만 곧 해고당한다. 22살의 젊은 재단사였던 그는 1970년 11월 평화시장에서 스스로 불꽃이 되었다. 


전태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홍경인이 주연을 맡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은 경찰의 수배를 피해 숨어 다니는 법대생 출신 김영수(문성근)를 통해 진행된다. 그는 전태일의 삶을 따라가며 마침내 그의 전기를 집필한다. 조영래 변호사와 그의 저서 <전태일 평전>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으로 되살아난 <태일이>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요즘 세대에 어필하기 위해 따뜻한 색감을 주로 활용했고, 배경과 화면 전환,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동선 등 곳곳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나 어린 태일이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찾아오는 초반의 약 6분간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의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그가 우리 곁은 떠난 지 어느덧 50주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나라도 노동계도 많이 변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전태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의 집 대청마루 아래서 거적을 깔고 어머니와 잠을 청하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각종 산업재해 현장에서 청년들의 어이없는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달라진 듯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출처: 영화 <태일이>



투명인간에게 손 내밀어준 <노회찬 6411>


<노회찬 6411>(2021)은 노회찬 의원의 3주기를 맞이하여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다. 노회찬 주변의 인물 43명과 총 200여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만들어졌다. 흔히 ‘노회찬’은 서민의 언어로 촌철살인을 남긴 진보정치인으로 기억된다. 이 영화에서는 노회찬 의원의 영웅담이나 미담을 모아 보여주려기보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진솔한 모습을 알리려 노력했다. 


영화는 그의 정치여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고, 2년여의 복역 후, 1992년부터 진보정당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0년 당당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당시 노회찬은 1인 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을 주장했다. 이 시기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을 대표하여 tv 방송토론에 자주 출연했고,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4년 후 민주노동당은 분당했다. 진보신당 후보로 노원병에서 패배한다. 1020년 서울시장 선거를 완주한 후에는 비난도 받았다. 통합진보당도 분당 사태가 이어진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보듯,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인간 노회찬이었을 텐데, 영화는 상당히 무거운 기조를 유지한다. 그의 마지막을 알기에, 영화의 마지막은 정해져 있었다. 거기까지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명필름과 감독은 에둘러 피해 가지 않은 느낌이다. 


그는 용접공에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삶을 살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6411’은 2012년에 했던 그의 연설에 언급되었던 버스 번호이다. 그는 구로에서 출발하여 대림, 영등포, 강남을 지나는 새벽 6411 첫 버스를 탔다. 강남으로 청소하러 떠나는 여성 노동자들로 만원이었던, 우리 사회 투명인간들로 가득한 버스였다. 월 85만 원을 받는 아주머니들의 손 닿는 곳에서 정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그는 이제 없지만, 그를 이어 손잡아줄 그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출처: 영화 <노회찬 6411>


매거진의 이전글 20년 전 영화들을 꺼내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