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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한량 Sep 06. 2023

팔월

2023.08.XX

언젠가부터 시간의 흐름을 감당 못하게 된 것 같다. 나의 손아귀에는 아직 채 소화시키지 못한 것들이 한 움큼 가득 남아 있는데 달력은 이미 구월을 가리켜고 있었다. '그나마 유지해 오던 월말일기도 놓쳐버렸구나'라며 자책하며 이제 막 여름이 떠나가고 있다는 걸 불현듯이 느끼고 있을 무렵, 구월에 쓰는 팔월의 일기.


이 대책 없이 뜨겁기만 하던 계절이 지나가길 이 계절의 시작부터 바라왔다. 이토록 뜨겁고 숨차도록 버겁던, 생명력 충만한 시간, '때'를 말이다. '시기'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쓰고 보니 여름은 청춘과도 닮아있는 것만 같다. 대책 없이 뜨겁기만 하던 시절, 난 잠 못 드는 새벽 내내 그 뜨겁던 마음을 혼자서 힘들게 식혀냈어야 했다. 누구에게나 찾아왔을 숨차도록 버겁던 모든 날들.


그래도 가는 길에 잘 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길법한데, 가려다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있는 것만 같아 쓸데없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더웠다) 팔월 내내 웬만하면 나가는 것을 최소화하고 방 안에서 에어컨만 켠 채 지낸 것 같다.(라고 여름 내내 말했지만 올 겨울에도 내내 추워서라는 단어를 추가해서 다시 쓰고 있을 것만 같다.)


칠월의 예능이 환승연애였다면 팔월의 예능은 하트시그널 4였다. 잠든 연애세포를 깨우는 매력적인 선남선녀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봤다. 이 프로그램의 흐름이 어떻게 흐르고 그들의 행동들에 크게 의미를 두고 보지 않았다. 세상엔 많은 결의 사람이 있고 그만큼 많은 선택이 있는 거니까. 끝나갈 무렵, 한 출연자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보고 괜스레 나도 어딘가 맞은듯한 기분이 들어서 공유해보자 한다.


'난 오랫동안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었어. 그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그리웠는데

오랜만에 그런 감정을 느끼고 행복했어. 내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줘서 고마워'


난 저 말이 왜 이렇게 뜨겁게 느껴졌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었다는 말이 너무 멋진 말 같았다. 정확한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모호한 객체를 설정했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 대상은 결국 당신으로 향해 갔다는 점까지 너무 완벽했다. 이 출연자도 잠 못 들던 그 밤, 자신의 뜨거움을 이렇게 잘 식혀내셨구나. 뜨거웠던 것은 아무리 식히고 식혀도 이렇게 뜨겁게 전해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계절이 끝나간다. 하트시그널 4의 메인테마곡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들으면서 이렇게 나의 뜨겁던 팔월도 식혀보려 한다.




                                                                                                                          ...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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