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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오사 Jul 05. 2020

고시, 그만둘 때 됐잖아?

방송 출연을 끝으로 언론고시와 작별을 고하다. 



지난 수년간 PD가 되겠다며 아등바등하던 내게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인터뷰를 계기로 나는 실패를 인정하기로 했다. 방송국은 내 인생이 뻗어나갈 곳이 아니라 되뇌며, 내 능력으로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 또한 마음에 꾹꾹 눌러 새겼다. 정말 우연히 출연하게 된 이 인터뷰 때문에 혹여라도 미련을 가질까 하여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랐다. 방송 출연의 시작은 연초에 참여한 공모전부터였다. 공모전 주제가 기본소득이었는데 시사교양의 한 회차에 주제로 선정된 모양이었다. 6월 말 방송이라 시기적으로 3차 추경을 앞두고 있기도 했고, 코로나 19 발 재난지원금을 시작으로 기본소득 논의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나는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경기도 기본소득 영화제 입상자 중 하나였다. 


참 타이밍도 야속하다. 방송 출연 제안을 받은 것은 언시를 그만두고 딱 한 달이 될 무렵이라니. 때는 코로나의 여파와 그간의 부채로 2020년 상반기 공채는 씨가 말랐고, 내 나이에, 공백기에, 모든 것이 '그만둘 시간'이라 가리키고 있던 중이었다. 결국 불안은 나를 집어삼켰다. '우린 정말 아니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나는 언론사에, PD라는 직업에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수년 전 엄마가 다니는 미용실 사장님 딸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따놓으면 평생 걱정 없다는, 몇 명 딸 수도 없다는 미래가 보장된다는 자격증이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시점. 그렇게 며칠간 내가 이 공부를 해도 될까? 할까? 말까?를 묻고 또 묻고 들들 볶다 '할 거면 지금 하자'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없이 못 살던 유튜브도 끊고 매일 독서실에 처박혀서 아침 9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밥만 먹고 인강 보고 문제만 풀었다. 

울긴 왜 울어. 걍 살자. 다 잘 될 꺼야. (드라마 <도깨비> 중)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하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이메일을 하나 도착해 있었다. 기본소득 공모전을 담당하신 경기도청 주무관님이 '방송국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해 인터뷰이를 찾는고 해서 연락드린다'며 작가님의 연락처를 남겨 두셨다. CC를 보니 나포함 상위 수상자 셋을 추려 보낸 이메일인 듯했다.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어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연락드렸어요.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까요?'라는 식의 문자를 드렸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작가님은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지, 언제 기본소득을 처음 알게 되었는지, 영상을 봤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지,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이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없었는지 등을 물으셨다. 그렇게 코베이듯 자연스럽게 사전 인터뷰를 따이고 전화를 끊으니 사전 질문지를 보내주셨다. 질문이 간단할수록 답변이 어려워서 어려운 건 어려운 대로 내가 이해하고 알고 있는 선에서 나누어 답변을 드렸다. 답변이 뽑아놓고 나니 11개 문항에 글자 수는 5000자에 육박했다. 작문보다 논술이 쉬울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무튼 출연을 확정 짓는 건 다시 확인을 받은 뒤라는 작가님 말씀을 하시며 '인터뷰해주시면 좋겠다'며 '아마 될 거 같아요.' 하셨다. 왠지 안될 수도 있단 뜻이 내포된 작가님 말씀에 나는 속으로 '이런 일이 솔직히 언제 있겠냐' 싶은 마음이 들었고 출연하고 싶단 욕심이 났다. 괜한 인정 욕구가 눈치도 없이 발동됐더랬다. 


혹여나 프로그램에 폐를 끼칠까 '시험이 코 앞이라 이 이상으로는 시간을 들이기가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건 이 정도 수준이다. 부족한 부분은 알려주시면 수정하겠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다섯 시간 정도를 들여 할 수 있는 선에서 성심성의껏 답변을 준비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 입사지원서에 '제출'을 누른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행히 작가님은 오히려 성의 없게 답변 주는 인터뷰이도 많은데 감동했다는 답변을 주셨다. 빈말이어도 감사했다. 

방송에 소개된 장면 중

순식간에 주말이 지나 촬영일이 코앞에 닥쳤고, 정확히 이틀 뒤 나는 퉁퉁부은 얼굴로 방송에 출연했다. 다행히 두 시간짜리 인터뷰는 거의 잘려나갔고 영화제 영상이 자막과 함께 소개됐다. 하필 내 생일과 겹친 방영일에 케이크에 촛불을 불며 이 인터뷰는 언론 고시가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최종 방송 경력은 '인터뷰 출연'으로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됐다. 두려움으로,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나의 언시 여정.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마음 아파했는지.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내일도 살아볼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만든 방송이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 말도 안 되는 도전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밀고 나갔다. 이 실패가 앞으로의 실패를 모두 떠안은 용기였기를 바라며 앞으로 1년 혹은 2년, 다른 곳에서 다른 도약을 꿈꾸며 나는 숨을 고른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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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링크

'경기도 기본소득 온에어' 채널에 올라간 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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